생일에

언젠가부터 어머니는 잊혀질때쯤 되면 저를 가지게 되었던 날, 대체 얼마나 날씨며 분위기가 좋았는지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하셨습니다. 낯 뜨겁게… 뭐 모든 부모님들에게 자식이 가장 귀한 존재일테니 폭풍우가 미친 듯 몰아쳤던 밤이었다 할지라도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떠 있던 아름다운 밤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겠죠. 이렇게 반박해봐야 정말로 그랬노라고 하실테지만.

하여간, 그렇게 만들어져서 아홉 달 만에 태어났다는 사람이 오늘 생일을 맞았습니다. 뭐 떠들썩하게 보낼 건덕지도 없고, 그러고 싶은 욕망도 없었으므로 미역국을 끓여서 아침 저녁에 먹고, 브라우니를 구워서 사무실 사람들에게 돌리는 것으로 조용하게 보냈습니다. 예년에는 그런 말도 못 꺼냈었는데, 낯짝 두껍게 메일까지 돌려서 ‘Today is my birthday, so please help yourself with brownies and share the joy of my birthday.’ 라고 떠벌려 대면서…

제 기억에, 3월 말은 생일을 가지기에 그렇게 바람직한 시기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언제나 날씨는 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추웠지만, 겨울옷을 걸치기에는 애매했기에 얇고 그래도 비교적 화사한 봄 옷을 입고는 오들오들 떨어야만 했습니다. 거기에 새학년이 되면서 반이라도 갈리면 적어도 4월 중순이 될 때까지는 낯설음을 가셔내기가 쉽지 않았구요. 그렇게 모든 쌀쌀함과 낯설음이 범벅이 되어 척 달라 붙어 감기라도 걸리면 이 시기에는 영낙없이 기침을 달고 살았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보낸 생일만 몇 번이었는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벌써 여름에 가까운 기온으로 향하고 있어서 그럴 걱정은 없지만, 언제나 이맘때쯤만 되면 머리 속은 쌀쌀한 바람과 밭은 기침의 기억만 가득합니다.

하여간, 좋은 일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나쁜 일만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조마조마함에 화답이라도 하듯, 오늘 하루는 아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아무 약속도 없었지만 비교적 정시에 회사를 빠져 나와 매년 습관처럼 저지르는 생일 쇼핑을 위해 막히는 교통도 개의치 않고 쇼핑몰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요즘 들어 부쩍 심각해진 만성적 쇼핑 허무주의는 족쇄처럼 저의 발목을 붙잡아 저는 넓디 넓은 쇼핑몰을 반도 채 탐사하기 전에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기는 우리나라의 그것처럼 서늘해서 저는 눈처럼 날리는 꽃가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창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과속으로 집에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또 일 년에 단 한 번 밖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그 날이 지나갔습니다, 아무일 없이.

 by bluexmas | 2007/03/30 22:23 | Lif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Katherine at 2007/03/30 23:34 

Happy Birthday, YJ.

 Commented by 가하 at 2007/03/31 01:14 

날짜계산이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생일축하드립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3/31 14:04 

Katherine: thank you so much^^ By the way, how have you been?

가하: 이미 지났지만 목요일이었답니다. 29일이죠. 그래도 올해는 미역국이 맛있게 끓여져서 괜찮았어요. 역시 국거리로는 아롱사태보다 양지머리가 더 낫다는 어머니의 조언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지요.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at 2007/04/03 13:2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4/03 14:22 

감사합니다 비공개님^^

 Commented by 카렌 at 2007/06/03 10:04 

앗! 양자리신 건가요@ㅅ@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6/03 10:28 

네 그렇습니당… 그러나 양을 싫어하고(제가 지구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인 누군가가 양띠이면서 양을 좋아해서…) 냄새도 장난 아닌데다가 양고기는 더더욱 싫어요.

 Commented by 카렌 at 2007/06/03 11:02 

저도 양자리인데; 양은 귀엽지만 양고기는 싫어요;; 양모이불은 못덮어봐서 모르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