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mium Vodka 열전
토요일 저녁인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냉동실에서 동면중인 Hanger 1을 꺼내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나, 요즘 절주 중이라서 그냥 지금까지 먹어본 보드카들에 대한 기억이나 정리해볼까 합니다. 사실 보드카라는 술이 워낙 싸구려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요즘 나오는 상대적으로 비싼 것들이 Premium이라는 딱지를 달게 된 것이지, 아직도 보드카는 양주 가운데에서도 그리 비싼 술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 더 비싼 것들도 찾으면 있겠지만, 주로 제가 사서 마시는 것들은 비싸봐야 750ml 짜리 병이 $30불 안팎입니다. 비싸다구요? 작년에 서울을 찾았을때 정말 싼 술집에서도 375ml Absolut이 10만원이더군요. 물론 집에서 마시는 것과 가게에서 마시는 것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뭐 보드카를 마시게 된 동기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가끔 술을 마시고 싶지만 맥주는 배가 불러서 싫고, 와인도 (이미 여러 번 이전 글들에서 얘기했듯이) 배가 부를 뿐더러 과실주 자체의 맛을 싫어하고… 그래서 여유가 있을때마다 위스키며 진 등등을 사서 마셔 봤는데 각각의 술들이 가지고 있는 향들이 저에게는 그다지 매력을 주지 못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뭐 그래서 향도 없고 맛도 없는, 어찌 보면 그저 순 알콜과 같은 느낌의 보드카를 마시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뭐 대부분의 술이 곡물로 빚어지는 것 처럼, 보드카도 전분을 가진 곡물(옥수수, 밀, 호밀)이나 감자, 고구마를 원료로 만들어지는 데, 프랑스의 Ciroc처럼 포도로, 아니면 미국의 3 Vodka처럼 콩으로 빚어지는 것도 있습니다.
그럼 기본적인 얘기는 여기에서 접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뭐 무슨 설명이 필요 있겠습니까? 그냥 보드카의 물이라고나 할까… Costco에 가면 병에 손잡이가 달린 1.75L를 $30에 팔아서, 기본으로 이걸 갖춰 놓고 반쯤 마시면 마셔 보고 싶었던 다른 보드카를 사다 번갈아 가면서 마시곤 했습니다. 인상적인 광고를 굉장히 많이 발표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소위 말하는 Premium Vodka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일조한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보드카의 Hype를 조장하는데 한 몫하지 않았나, 라는 부정적인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저 역시 거기에서 그렇게 자유롭지는 못한 것 같지만… 맛은, 사실 마셔본지가 오래 되어서 기억도 잘 안 납니다. 한 등급 위라는 Level도 나왔는데, 비행기에서 몇 번 마셔봤지만 솔직히 인상에 남을만한 느낌은 없었습니다.
앱솔룻이 질릴 무렵, 동네 술가게 여주인의 추천으로 시도해본 캘리포니아 산 보드카 입니다. 그 무렵 슬슬 다른 보드카를 시도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Velvedere나 Gray Goose를 양 손에 하나씩 들고 갈등하고 있는데 이걸 권하더군. 뭐 땅 좋고 기후 좋은 캘리포니아에서 나는 것이라면 개똥도 약으로 쓰기 딱 좋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끔 할 때가 있어서 덥석 집어왔는데, 그 이후로는 냉동실의 붙박이가 되었습니다. 이 보드카의 이름이 Hanger 1인 이유는, 양조장이 옛날 격납고(Hanger)에 있어서 그렇다고 하구요, 맛은… 술술 넘어갈 만큼 부드럽지만 Grey Goose처럼 밍밍하지는 않고 또 특유의 단내가 끝에 남지만 거부감을 느낄 만큼은 아닙니다. 하여간 누군가 보드카를 마시겠다면 꼭 추천하는 개인 애호주이긴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동네 술가게의 한국인 점원은 얘조차도 ‘Hype가 심해서 한 2년 전에 잘 나갔지만 요즘은 안 나간다’ 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대체 Hype없는 보드카란 없는 것일까요?
작년말, 한참 개인사가 절정으로 꼬여 있을 때 늘 장보러 가는 한국 수퍼마켓 옆에 붙은 술집에서 미친척하고 Grey Goose를 한 병 지른 불행한 기억이 있습니다. 너무 웃겼던게 한 달 이상은 보관해주지 않는다고 해서, 매주 가서 안 즐겁게 마시다가 결국 얼마 남은 건 내동댕이치고 다시는 들르지 않았다고… 맛은, 한마디로 그냥 밍밍합니다. 좋게 말하면 부드럽다고 하겠지만, 보드카 마시는 기분이 별로 안 나는 보드카라서 앞으로 다시 마실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잘 가는 술가게 점원은 솔직히 재료가 고급이거나 맛이 좋은 보드카도 아닌데 브랜드 이미지를 잘 만들어 놓아서 팔리는, 한마디로 Hype가 심한 놈이라고 깎아 내리더군요. 어쨌거나 저의 취향은 아닙니다. 레이블이랑 포장은 예쁘긴 합니다만.
Hanger 1을 입에 대기 시작한 이후로 시도해 볼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몇 주전에 친구들과 모인 바에서 온더락스로 마셔봤습니다. 뭐 얼마 안 마셔봐서 평가는 유보하기로…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세계 유일의 콩으로 빚은 보드카라서 뭐 탄수화물도 없고 어쩌구저쩌구… 점원이 권해서 한 병 사 봤는데, 끝에 남는 단맛이 너무 강해서 정을 붙이기 힘들었고, 결국 다시 집에 들여 놓지 않았습니다. 전체적인 맛이 좀 인공스러웠습니다. 억지로 비교하자면 일반 코카콜라와 다이어트 코카콜라 맛의 차이랄까… 좀 비릿합니다. 처음 마셔보고 1년도 더 지나서 Food & Wine 지에서 만점을 받았네 어쩌네 난리가 났더군요. 그저 또 다른 Hype의 탄생이겠죠.
6.Ciroc
포도로 빚었다는 프랑스산 보드카. 작년 3월에 휴가랍시고 뉴욕에 가서 도착한 날 밤에 얘를 열심히 마시고 고생한 기억이 있어서, 예쁜 마티니 잔 두 개가 딸린 선물셋트를 정말 무뇌아처럼 충동구매하기 전까지는 다시 시도하지 않은 녀석입니다. 요즘 뜬다던데, 얘는 그 과일향을 융합시킨 보드카들처럼 보통 보드카에서 안 느껴지는 특유의 향이 있습니다. 보드카 특유의 단 뒷맛이 너무 강해서 그런 느낌이 나는 것 같은데, 살때 점원이 향 때문에 자기 취향은 아니라고 말한데 200% 공감했습니다.
Premium 딱지를 붙이기는 좀 헐한 프랑스산. 그러나 맛은 깨끗하고 뒷끝도 없는게, Absolut보다도 저렴하지만 그래도 온더락스로 마실만한 녀석을 찾는다면 제격입니다. 1L에 $17이니까 미국에서는 소주보다도 쌉니다. 마티니 베이스로는 최고일 듯.
그 밖에 뭐 Ketel 1, SKYY, Stolichnaya 등등은 몇 번씩 입에는 대 봤지만 별 느낌도 없었고 앞으로 마실 생각도 없으니 넘어가겠습니다.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 보드카는 냉동실에 넣어두어서 끈적해진 놈을 온더락스로 마시는게 최고인 것 같습니다. 유리잔에 얼음 넣고 잠길 듯 보드카를 따라 놓고 잠시 기다리면 잔에 햐얗게 성에가 끼는데, 그 때쯤이면 얼음도 녹기 시작하니까 조금씩 마시면 됩니다. 네, 글 쓰다가 동해서 지금 열심히 마시고 있습니다. 비는 여전히 주룩주룩 내리는군요.
# by bluexmas | 2007/04/15 13:38 | Tast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