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ways (2004)- 오, 중년의 우울함이여
지난 화요일, 이를 뽑고 집에 돌아와 소파에 누워 낑낑거리며 보았던 ‘Sideways’는 지난 몇 년간 주섬주섬 주워들었던 호평들이 공치사가 아니었음을 구석구석 느끼게 해준, 아주 재미있는 한 편의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그 재미라는 것이 저의 관점에서 보아 지나치게 적나라한 현실의 묘사에 바탕을 두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영화의 뒷맛은 그럭저럭 우울했습니다. 다른 것 다 제껴두더라도, 주인공인 마일스가 중년의 나이에 가정도 말아먹고, 직장에서도 별 만족을 못 느끼는 데다가 오랜동안 시도했던 소설쓰기에서까지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낙담하는 것을 보면서(거기에다가 전처가 자기보다 더 나아 보이는 남자와 재혼해서 아이까지 가진 설정은 정말 인생의 치명타겠죠-_-;;;), 그것이 곧 10년 쯤 후 저 본인의 모습이 될 수도 있다는 쓸데없는 불안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물론 제가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고 삶이 그렇게 비슷한 궤적을 달리고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만… 물론 와인 매니아는 더더더욱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식을 채 일주일도 안 남겨 두었으면서도 이 여자 저 여자 찝적대는 잭에게서 부러움을 느꼈냐하면,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저의 관점에서 그런 남자는 인간으로써 최악의 종류라고 생각하니까요. 하여간 마일스가 그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순간에 마시겠다고 아껴 두었단 빈티지 와인을 결국 햄버거 가게에서 몰래 자작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것이 그저 웃기기 위해 설정한 코미디의 한 장면이라고는 도저히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또한 말로도 형언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그 장면이 왠지, 제 가슴 한 구석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두려움, 언제나 살면서 더 좋은 날에 대한 기대를 품고 하루하루 지날 수록 더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결국 그건 자체제조의, 정신적 자위를 위한 환상에 불과할 뿐 그런 날은 결국 오지 않는 것이 삶의 진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두려움을 투영한 것과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그저 즐거운 코미디 영화 한 편을 보면서 쓸데없이 너무 많은 생각을 한 것일까요? 이제 이 뽑은 자리도 거의 다 아물은 것 같은데, 주말 저녁에는 와인이라도 한 병 사다가 마셔야겠습니다. 물론 Pinot Noir여야만 하겠죠?
*덧글 1: 이 영화를 보기 전에 위키피디아에서 읽었던 Pinot Noir 품종에 대한 묘사가 영화 주인공 마일스의 대사에서 그대로 나오는 것을 보고, 어쩌면 누군가 그 대사를 그대로 인용해서 올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덧글 2: 언제나 이런 부류의 영화를 보다보면 읽다가 읽다가 징해서 도저히 다 읽지 못하는 성석제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듭니다. 그, 조금의 미화도 없이 보통 사람의 징한 삶 그대로를 삽으로 푹 떠다가 지면에 옮긴 것과 같은 기분이랄까요…
# by bluexmas | 2007/07/18 11:50 | Movie | 트랙백 | 덧글(10)
그래서! 와인은 생기는 족족 마신다가 제 신조가 되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