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축하 카드

언젠가 블로그에 초대장 받았다고 올렸던 친구 커플의 결혼식이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와서, 어제 카드를 샀습니다. 회사 근처에 있는, 늘 점심 먹고 운동 삼아 걸어가는 수퍼마켓에 갔는데 요즘이 결혼철인가… 마음에 드는 카드가 별로 없더군요. 원래 제 취향이 요란스런 꽃 문양 등등이 있는 전형적인 결혼 축하카드 쪽도 아니고, 친구들에게 종교가 있는지도 몰라서 가급적이면 종교적인 색색채가 담긴 카드는 피하려 했지만 정말 너무 선택의 여지가 없더군요. 그 몇 안되는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랐습니다.

처음의 계획은 둘 다 친구니까, 그냥 카드를 따로따로 보내려 했는데, 뭐 그것도 좀 낭비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카드는 하나를 쓰는 대신, 원래 계획대로 축의금 수표를 따로 썼습니다. 요즘은 웬만하면 이런 경우에 선물을 안사려고 하는게, 수표를 주면 근거가 남아서 세금 환급 받을때 유용하게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몇몇 온라인 쇼핑몰에 선물 등록을 해 놓기도 하는데, 사실 그거 들여다 보기도 은근히 귀찮더군요.

가끔 집에서 저녁때 뭔가 영어에 관련된 일을 하면 귀찮아집니다. 별 일 아닌 것 같지만 격식을 차려야만 하는 이런 카드 쓰기도 예외는 아니겠죠. 텔레비젼까지 틀어놓고 써서 대체 뭘 말하고 싶었는지 기억도 안 나고…

수표는…우리나라 기준으로 해서 친한 친구들에게 부조금 내는 만큼으로 신랑, 신부에게 각각 준비했습니다. 결혼식에 가는 건, 오 년, 하고도 사 개월만인가 그래요. 너무 오랜만이라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을 것만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드네요. 하여간, 친구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뭐 이미 잘 살고 있기는 하지만…

아, 친구들에 대해 한 마디 더 덧붙이자면, 둘다 제가 다니던 대학원에서 만났으니 건축을 공부했고 각각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죠. 글쎄… 이 쪽 분야는 뭐 워낙 끼리끼리 뭉치는 성향이 강해서 알아서 해결들 하는 경우가 참 많기는 한데, 저는 뭐 별로… 저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일과 개인 생활을 분리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고 서로 너무 잘 아는 일들을 하면 일을 마치고 집에 와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에 관련된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뭐 그만큼 서로 잘 아니까 이해도도 높아진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뭐 생각해보면 무슨 일 하는가가 얼마나 중요하겠어요. 서로 인간적으로 잘 맞으면 그만이지… 저는 뭐랄까, 인간성의 매치라는 것은 ‘이상적이고 궁극적인 경우에’ 그런 사소한 것들은 초월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문제는 그게 이상적이고 궁극적인 경우라서 잘 안 벌어지니까 좀 그렇죠.

오랜만에 결혼식에 간다니까 또 말이 많아지고 있군요.

 by bluexmas | 2007/08/30 12:54 | Life | 트랙백 | 덧글(13)

 Commented by erasehead at 2007/08/30 13:00 

그래도.. 이곳에선 ‘결혼’에 관한 스트레스가 한국보단 덜 한 것 같아요.

꼭 배우자를 ‘한국인’으로 제한을 두는 경우가 많아서 인연을 만나기가 좀 어려운 것도 있고…

제 주위에 있는 서른 중반의 싱글들은 아직도… 매우 느긋하더라구요.^^

아직 어린데,,,, 뭘…. 그런말을 쑥스러움도 없이 뱉어가면서…^^

 Commented by intermezzo at 2007/08/30 13:04 

와~ 글씨 너무 예쁘게 쓰시네요 ^^

보더스나 반스앤노블에 가셨으면 더 많은 카드가 있었을 것 같지만 골라오신 카드도 너무 예쁘네요. 우아해요 ^^

저도 내일 송별파티(제 송별파티 -_-;;)가 있어서 브라우니 구웠는데 thank you카드 쓰려고 꺼내놓은 참이예요. 모두에게 한장 쓰고 보스에게 한장 쓰려는데 영어로 카드쓰는거 은근히 스트레스…-_-;;

그나저나 오늘 휴가떠난 모 부서 director가 thank you카드 주고갔는데 필기체라서 아직도 30%쯤 해독불가…OTZ

 Commented at 2007/08/30 14: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asic at 2007/08/30 19:46  

재작년만 해도 결혼축하카드를 그 때마다 한 장씩 사도 되겠다 싶었는데. 이제는 집단으로 결혼들을 해 대는 통에. 오늘 들른 웨딩관련소품가게에서 아예 몇 개를 미리 사 버렸답니다. 한국에서 제 나이는 씁쓸하게도 이제 X값에 치달으니 작년부터 불이 붙은 판국이군요.

 Commented by 소냐 at 2007/08/31 01:43 

어제 디자인을 전공하는 아는 동생이 그러더라구요. 자기는 비슷하게 디자인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과 만나고 싶다고요. 그래서 너 지금 다니는 학교 여학생 백프로가 이 조건에 부합하지 않냐고 했더니, 그 방면의 여자들은 또 다른 직업을 가진 남자들을 선호한다고 하면서 한숨을 쉬더라구요.. 저는 친동생(여)과 친오빠가 다 디자인하는 사람들이거든요. 그런데 동생은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 만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고 정작 오빠는 미술의 ‘미’와도 관련이 전혀 없는 새언니와 잘 살고 있으니… 결국은 개인차로 귀착이 되는 걸까요.. ^^;

여튼 제 형제들 얘기가 그녀석에게 쪼금은 기운을 내게 해 줬다죠.. ^^

 Commented by Eiren at 2007/08/31 08:03 

Corinthians 라는 글자가 깨알같이 보이는군요. 그래도 저 정도면 종교적인 색채가 그렇게 진한 편은 아닌것 같은데요? 저는 디자인도 그렇지만 이 동네 카드 가격에 언제나 경악을 했습니다. 조금만 괜찮다 싶으면 바로 $4로 넘어가는;;

 Commented at 2007/08/31 12:3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8/31 19:28 

erasehead님: 전 뭐 요즘은 아무 생각이 없어서요… 30대 중반인 저는 어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

intermezzo님: 글씨는 정말 요즘 얘기를 부쩍 들어서 민망해 몸둘바를 모르고 있답니다. 사실 이 직업군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대문자를 쓰는게 생활화 되어 있어서 소문자는 엉망이 되곤 하죠. 보시면 좀 들쭉날쭉… 사실 필기체는 초등학교 때는 쓸 줄 알았는데 지금은 거의 못 쓰겠어요. 올해 연말 카드는 필기체로 써 보내고 싶은데 어려운 목표일까요?

비공개님: 그 레시피, 새로 가는 곳에서 한 번 써 보세요. 대박날꺼에요. 사실 저도 제가 만들고 안 먹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리고 블로그는,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그 전문 지식만 해도…

basic님: 전 이미 제 자신에 가격을 매기는 걸 포기한지 오래죠. 저는 그냥…

소냐님: 혹시 아는 동생분이 남자신가요? 그렇다면 경제적인 것들도 영향을 미치기 쉬워요. 일의 성취감과 혹시 발생할지도 모르는 경제적인 만족도의 맞교환을 동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사실 그 모든 경우에 사람들의 만남은 인간에 대한 이해도의 성패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더라구요. 그걸 따지는게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도 들지만요.

Eiren님: 저도 뭐 별 생각 없이 샀어요. 더 이상 고르기 좀 힘들더라구요. 저 카드가 3.69였나 그랬는데, 저는 보통 $2 넘는 건 잘 안 사는데 이번에만 특별한 거랍니다.

비공개 1님: ‘결혼이 너의 시니컬함에 따뜻한 양지를 제공해줄테니 마음 좀 녹이고 살아라’ 는 어떨까요?^^ 제가 갈 결혼식은 다음주랍니다.

비공개 2님: 너무 무지해서 자신이 뭘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오히려 사람인 것이 부끄러운 사실이죠. 기분이 상하셨겠어요. 저라면 정말…

 Commented by 소냐 at 2007/09/01 04:57 

그렇군요..

현실감각이 좀 떨어지는 저는 그쪽은 생각 못해봤어요.. 오늘 동생과 채팅하다 물어보니 당연히 그런 면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저 역시 경제적인 만족도가 일 자체보다 떨어지는 쪽에 있는 사람이라서 그런지 개인적으로 그런게 그다지 문제가 되진 않는데… 오오 그럼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건가요?? ㅋ

 Commented by 네쉬 at 2007/09/01 09:29 

카드도 이쁘고 글씨체도 이뻐요 🙂 친구분들이 좋아하실 것 같네요~ ㅎ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9/01 14:03 

소냐님: 그 일반 디자인계통은 제가 잘 모르겠지만, 건축 분야는 솔직히 받는 돈이 하는 일의 강도에 비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가끔 있어요. 저는 사실 일단 미국에서 일한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또 혼자 사니까 어떻게든 꾸려나가지만 남자 혼자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주변 선배들을 보면 이 힘든 일을 하고 뻔한 벌이에 다들 어떻게 꾸려나가실까…하는 생각도 있죠. 이러한 상황을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서로 다 알기 때문에 여자들이 꺼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여자들의 경우도 다른 업종의 남자를 만났는데 이 분야의 직업 생리를 잘 모른다면 아마 어려운 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돼요. 이건 뭐 파고 들어가면 좀 골치 아픈 얘기가 되어 놔서(저는 남자이면서도 남자 혼자 모든 걸 짊어져야만 하는 형태의 가족을 회피하는 편이라서요…)…

사실은 저도 아직까지는 돈을 덜 중요하게 생각하려고 노력은 해요. 어쩌면 그것이 제가 비교적 안정된 상황에서 길러졌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저는 가급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답니다^^ 그래서 선택의 폭이 어떻게 넓어지는지는 저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냥 좋은 사람이면 다 좋지 않을까요? 뭐 돈 많이 못 벌어도 좋고…하하.

네쉬님: 그러나 영어가 엉망이에요-_-;; 친구들은 당연히 좋아할꺼에요. 현찰 박치기니까~

 Commented by SvaraDeva at 2007/09/01 21:16 

오 글씨 이뿌세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7/09/03 13:48 

SvaraDeva님: 글씨 얘기는 들을때마다 민망하네요. 흐흐…

비공개님: 저도 그런 경우에는 마찬가지로 대응을 하게 되더라구요. 다른 점이라면, 뭐 친척이고 뭐고 그럴땐 물불 못 가리는게 저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