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도해 본 추억의 칠리 새우
저의 가족은 원체 외식을 자주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어쩌다 나가서 끼니를 때우게 될때면 거의 90%는 중국음식을 먹곤 했죠. 보통 한 음식점을 2-3년 정도 다니다가 맛이 변했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패턴을 반복했는데, 마지막으로 가게된 곳은 ‘고등반점’이라는, 동네의 이름을 딴 음식점이었어요. 이 집은 10년도 넘게 단골이었는데, 건물을 새로 짓고 나서는 주방장이 바뀌었는지 맛이 완전히 바뀌어서 같은 이름의 식당이라고도 하기 민망한 지경에 이르렀고, 저희 가족은 뭐 배신감까지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실망감이라고 할 수 있는 감정으로 발을 끊었답니다. 화교가족이 운영하고 아드님이 주방에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맛이 변했는지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더라구요.
어쨌든, 뭐 서울도 아니고 대부분 거기에서 거기였던 다른 중국집들에 비해서, 이 집은 동네 내지는 지방의 중국집의 그것이라고 할 수 없는 음식을 내놓았었죠. 지금까지 가장 기억나는 건, 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었던 탕수육의 아주 투명한 소스와 바로 오늘 흉내라도 내보려 했던 칠리새우에요. 레시피는 ‘여경옥의 중국요리’를 참조했습니다.
재료
대하(U-15) 열마리(책에서는 중간 크기로 25마리라고 되어있네요)
녹말가루 3-4큰술
식용유 2컵
대파 1/3대
마늘 1개
생강 1/2개
양파, 피망, 당근 약간(원래 레시피에는 없지만 제가 첨가했습니다. 색과 맛을 위해서…)
고추기름 1/2큰술
청주 1큰술 반
물(육수) 150cc
청주(맛술) 1큰술 반
설탕 3큰술
케첩 3큰술
소금 약간
두반장 1작은술
물녹말 2큰술
1. 미리 손질된 새우를 마늘과 미림에 재워둔 뒤, 물기를 제거하고 녹말가루를 살짝 묻혀 튀깁니다. 저는 찹쌀가루로 대체할 생각이었는데, 분명히 어제 장볼때 산 찹쌀가루가 실종되어서 대신 밀가루를 썼습니다. 중국음식은 보통 Deep Fry겠지만, 저는 그냥 무쇠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새우가 1/3정도 잠길 만큼) 튀겼습니다.
2. 아주 뜨겁게 달군 팬에 고추기름 1큰술을 두르고 다진 마늘, 생강, 파를 5초간 볶습니다.
3. 맛술을 넣고 잘게 깍둑썰기한 양파,피망, 당근을 넣어 살짝 볶습니다.
4. 물 또는 육수를 붓고 소금, 설탕, 두반장, 케첩을 넣어 끓입니다.
5. 물녹말(저는 그냥 밀가루에 물을 섞어서 대체했습니다)을 넣어 소스를 걸쭉하게 만든 다음, 1에서 튀겨준 새우를 넣어 버무립니다.
6. 남은 고추기름 1큰술을 넣고 섞은 다음 접시에 담아 먹습니다.
일단 제가 목표로 삼았던 건 바삭하게 튀겨진 새우에 매콤달콤, 그리고 새콤하기까지한 소스를 곁들이는 것이었는데 새우는 보통의 밀가루를 써서 그런지 그렇게 바삭하지 않았습니다. 계획대로 찹쌀가루를 썼으면 어땠을까 궁금해지더군요. 그리고 소스는 집에 있던 High Fructose Corn Syrup이 든 케첩을 버리고 멀쩡한 설탕으로 만든 유기농 케첩을 새로 사서 쓰면서까지 정성을 들여봤는데, 역시 미국 케첩이 달아서 그런지 설탕 3큰술이 들어간 소스는 제 입맛에는 좀 단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습관적으로 마늘, 생강 따위의 양념류를 많이 써서, 달고 시면서도 아주 화끈한 칠리 소스가 만들어져서 그럭저럭 만족할만한 수준은 되었습니다. 여기에 꽃빵을 곁들여주면 정말 금상첨화였을텐데, 냉동해둔 반죽들을 다 써버려서 아쉬운대로 통밀 Totilla에 썬 파채(흰 부분만을 가늘게 채썰어 얼음물에 담궜다가 물기를 빼주면 매운맛도 가시고 바삭바삭해서 곁들여 먹는데 좋습니다. 물론 원래 이 음식에 곁들여 먹는건 약간 규칙위반이지만…)를 곁들여 싸 먹었습니다. 중국음식은 워낙 조리 방법이 복잡(전 튀긴 음식을 거의 먹지 않습니다. 두 달에 한 번?)해서 저같이 게으른 사람은 시도를 잘 안하게 되는데, 이만하면 그렇게 복잡하지 않고 실패할 확률도 적어서 집에서 해 먹기 괜찮은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정말 부모님 한 번 해 드리면 좋을 것 같기도 한데… 뭐 ‘예전에 이거 많이 먹었었죠’ 하면서요.
그리고 사족처럼 곁들이는 두반장에 관한 경험담.
보시면 알겠지만, 이 레시피에는 두반장이 들어가기 때문에 어제 장을 보면서 그 유명한 이금기표 소스들이 가득찬 진열대를 한참이나 두리번거렸는데, 미국에는 영어 아니면 한자라서 제가 생각하는 그 ‘두반장’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궁리끝에 그냥 Black Bean Sauce를 집어들고 왔는데, 집에와서 보니 이게 아니더군요(이금기표 두반장에 써 있는 한자는 참으로 복잡하던데요?)-_-;;; 그래서 오늘 아침에 다른 한국 식품점을 열심히 뒤진 끝에 일본에서 만든 두반장을 찾았는데, 이건 이금기표보다 좀 비싼 대신 첨가물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더라구요(그리고 한자도 제가 아는 수준으로 쓰여있었구요^^;;;). 아무래도 중국에서 만든건 내키지 않는 구석이 많아서요. 그래서 굴소스를 거의 사지 않는데, 이젠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굴로 만드는 국산 굴소스가 나왔더군요.
# by bluexmas | 2007/10/21 13:19 | Taste | 트랙백 | 덧글(12)
bluexmas님 뉴욕으로 이사오시는건 어떠세요 +.+
비공개 덧글입니다.
접시에 담은 모양새도 너무 보기가 좋은걸요. 칠리새우 뒤에 출연한 저 흰색 사각접시들은 세트로 장만하신건요?
저는 무슨 음식을 하나 할라치면, 소금, 설탕부터 사야하니까 도무지 엄두가 안나요. 존경스럽습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저두 요리는 즐겁게 잘 하는 편인데, 뒷 마무리에 약해요. 여튼 칠리소스까지 만드시고 존경스럽습니다. ^^
비공개 1님: 이제 소원 풀으셨죠?^^
굇수한아님: 뭐든지 중국에서 온 건 좀 두려워하는 편이거든요 제가…
motr: 아뇨, 사실 맛 정말 없었;;; 접시는 세트는 아니고 같은 가게에서 제일 싼 걸로 골라 산 것이랍니다. 벌써 이가 나간 것도 있어요. 소금, 설탕을 많이 쓰시나봐요. 그래서 늘 새로 사셔야 되는건가;;;
잔야님: 새우 좋아하신다고 소문 여기까지 다 났어요… 언제 새우 대접해드려야 겠네요.
비공개 2님: 저에게도 제약이 많답니다 사실은…아무도 몰라서 그렇지.
basic님: 완전 드세요^^
windwish님: 전 설겆이를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죠. 칠리소스는 짧은 시간에 센 불로 만드는게 어렵지 뭐 그럭저럭 할 만 하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