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칼국수, 아니 손 파스타 개시

이젠 이름만 걸고 있지 실제로는 Food Network를 떠난 것으로 보이는 Mario Batail를 유명하게 만든 프로그램 Malto Mario에서 제가 가장 즐겁게 보던 내용은 언제나 파스타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밀가루를 수북히 쌓아 놓고 가운데를 화산처럼 파 계란을 깨어 넣고, 포크로 조금씩 분화구를 넓혀가며 만드는 생 파스타(Pasta Fresca)는 우리가 가게에서 쉽게 살 수 있는 말린 파스타의 주재료인 세몰리나 밀가루로 만들어도 되지만, 그러면 너무 뻣뻣해질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일반 다목적 밀가루로 만들어도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사실 좀 두꺼운 파스타라면 손으로 반죽해서 옛날 할머니들이 칼국수를 만들어 주시듯이 밀대로 밀어 만들어도 되지만 이젠 그것조차도 너무 버거운 노동이 된 현대사회라서 저는 가지고 있는 믹서에 장착할 수 있는 롤러를 샀습니다. 가장 기본이 되는 롤러 말고도 링귀니, 페투치니와 같이 원하는 두께로 잘라주는 부속들이 따로 있지만, 저는 가는 면발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냥 롤러만 샀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일반 밀가루라면 파스타의 주원료로써 아무런 부족함이 없고, 여기에 계란을 섞는 것만으로 반죽을 만듭니다. 밀가루와 계란의 배합비가 어느 정도 되어야 되는지 인터넷을 한참 뒤져봤는데, 보통 계란 네 개에 밀가루 세 컵 반이 정석인 것 같습니다(참고로 이 배합비로 만들 수 있는 파스타는 4인분입니다). 경우에 따라 물이나 소금을 약간씩 넣는데, 마리오 바탈리의 레시피에는 오로지 밀가루와 계란 뿐입니다. 참고로 예전에 읽었던 Jeffrey Steingarten의 ‘It must’ve been something I ate’에서 그는 어느 이탈리아 시골 마을에서 파스타를 먹었는데, 밀가루와 계란 노른자만을 써서 만들었다고 기술하고 있으니 뭐 반죽이 뭉쳐지게끔만 섞어주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거의 모든 레시피에 일반 밀가루와 통밀가루를 섞기 때문에, 계란 두 개와 밀가루 1 3/4 컵의 비율로 파스타를 만들고, 일반 밀가루를 한 컵, 통밀가루를 3/4컵 섞었습니다. 배합비를 지켰음에도 반죽이 뭉쳐지지 않아서 결국 계란을 하나 더 넣어야만 했습니다. 보통 통밀가루가 뻑뻑하지는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닌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당황했습니다.

손으로 반죽하면 좋겠지만 귀찮아서 믹서로 반죽을 하고, 마지막에 손으로 2-3분 정도 반죽을 한 뒤 플라스틱 랩에 싸서 30분-1시간 정도 휴식시켰습니다. 파스타 롤러는 생각보다 간단한 원리로, 두 롤러가 모터에 의해 돌아가는데 롤러와 롤러 사이의 틈새를 조절할 수 있어서 넓게 시작해서 좁혀가는 식으로 자기가 원하는 두께가 될 때까지 반복해서 늘려주는 방식입니다. 제가 동네 생 파스타집에 가서 늘 시켜 먹는, Tagliatelle과 Pappardelle의 중간 어딘가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는 듯한 파스타를 만들 생각이었으므로 롤러를 그렇게 많이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가장 두꺼운게 1, 얇은게 8인데 2나 3정도에서 더 얇게 밀어줄 필요가 없어지더군요. 워낙 텔레비젼에서 이 롤러로 파스타 만드는 걸 많이 봐 왔기 때문에 실행에 옮기는 데에는 그리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얇게 펴진 반죽 켜켜에 붙지 않도록 밀가루를 뿌려주고 적당히 접어서 칼로 썰어줍니다. 여기에선 어릴때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시던 손 칼국수의 추억을 되살려 실행에 옮겼습니다. 이렇게 파스타를 만드는 사이에 물을 팔팔 끓여둡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파스타의 물은 생각보다 많아야 되고, 또 생각보다 짜야만 됩니다. 반죽을 만들 때 묻었던 밀가루를 최대한 털어내고 끓는 물에 넣는데, 일반 마른 파스타와 달리 2분이면 삶아지므로 소스를 미리 준비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두꺼운 면에는 Bolognese sauce가 제 짝이라는데, 저는 예전에 만들어서 피자와 파스타 모두에 쓰는 토마토 소스(토마토, 바질, 타임, 샬럿, 마늘, 표고버섯…)를 준비했습니다. 소스를 팬에서 데우고 물을 뺀 파스타를 섞은 뒤, 너무 뻑뻑하다 싶으면 파스타 삶은 물을 조금 남겨 두었다가 섞어줍니다. 마리오 바탈리가 파스타를 만들때마다 강조하던 게, ‘소스가 파스타보다 많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는데, 남은 걸 다 썼더니 생각보다 소스가 넘쳐나는 파스타가 되었습니다. 뜨거울 때 Parmagiano Reggiano를 갈아서 뿌려줍니다. 와인을 따고 싶었으나 점심이라 참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든 파스타가 쫄깃쫄깃해야 되는지 그냥 부드러워야 되는지 밖에서 먹어본 적이 별로 없어 모르겠지만, 제가 만든 면은 한참을 치대서 생각보다 굉장히 쫄깃거렸습니다. 알고 보면 파스타가 칼국수나 거기서 거긴데 다음에는 바지락을 사다가 국수를 밀어서 칼국수를 만들어 먹어야 될 것 같습니다. 

 by bluexmas | 2008/04/07 13:14 | Tast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by 笑兒 at 2008/04/07 13:35 

와아~ 정말 칼국수면 하면 맛있겠어요 🙂

 Commented by blackout at 2008/04/07 13:38 

저는 듀럼 세몰리나랑 그냥 밀가루랑 반반 섞어서 만들었어요~ 바질다져서 넣어줘도 예쁘더라구요~

 Commented by hotcha at 2008/04/07 14:25 

아~ 저 롤러가 있으니 편리하군요.

전 여전히 키친 벤치탑에 서서 나무 밀대로 열심히 밀고 있다는..^^;;

두께가 일정하지 않아 썰어놓으면 늘 오톨도톨…

 Commented by Eiren at 2008/04/07 14:31 

마트에서 살 수 있는 생파스타 면은 굉장히 부들부들 매끄럽고 부드러워요. 아무래도 통밀이 아니고, bluexmas님처럼 오래 치대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요? 생파스타면에 생크림과 파르메산 레기아노[레지아노?] 치즈를 듬뿍 넣어서 만든 크림 소스 파스타가 참 맛있는데 [물론 칼로리는 생각하고 먹으면 안 됩니다-_-;;], 자급자족 손파스타라니 너무 부럽군요;

 Commented by 카렌 at 2008/04/07 14:40 

이런 걸 집에 갖추고 사시다니 역시 진정한 식도락가 ㅠ.ㅠ!

 Commented by 글씨요 at 2008/04/07 15:08 

우와…대단하네요

통밀가루가 들어가면 나중에 물넣고 삶을때… 잘 풀어지는 경향이 있는것같던데요

..

세몰리나가 아닌).그냥 통밀+백밀가루로만 한다면

찰지진않고

적당히 부드러운 칼국수같이 될것같은데요…

저녁식사는 항상 통밀스파게티 해먹는데.

물에 삶으면서 잘 안풀어지게끔 하는게 어렵습니다

 Commented by Josée at 2008/04/08 20:18 

요리의 세계와 언제 가까워지려는지 ㅜ_ㅜ 언젠간 걸음마를 해야 할텐데-

두렵기 그지 없어요.

손 파스타를 만드시다니!!! 부럽기 그지 없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4/10 13:03 

笑兒님: 그렇죠? 뭐 파스타나 칼국수나 거기에서 거기라니까요… 요즘 조개가 안 나오는 철이라서 좀 그렇기는 하지만, 바지락이 나오면 칼국수도 해 먹어야죠^^

blackout님: 저는 다음에 시금치 파스타를 해보려구요.

hotcha님: 그래도 손으로 미는 건 나름 맛이 있잖아요. 전 밀대가 없고 식초병에다 물을 담아서 써왔답니다…

Eiren님: 덧글을 보고 어제 수퍼마켓에 가서 파는 생면 성분 확인을 해 봤는데, 물론 기계로 잘 밀기도 하겠지만, Soy Lecithin과 같은 성분도 들어가니까 아무래도 더 부드럽겠죠?

카렌님: 그냥 혼자 먹고 살려고 발버둥치다보니 그렇죠 뭐…그래도 우렁각시가 없어서 이런 걸 가지고 있는 것이랍니다.T_T

글씨요님: 전 딱 2분 삶았는데, 그것보다 오래 삶으시면 풀어질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애초에 세몰리나를 쓸 생각이 없었어요. 그럼 뻣뻣할 것 같아서요.

Josée님: 첫걸음에 궁금한게 있다면 언제라도 물어보세요. 좋은 보행기 제조업체를 소개해드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