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ted (2008) – 아주 잘 만든 액션 쓰레기

예고편을 보면 모든 영화가 다 재미있어 보인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더 이상 예고편에 취해서 영화를 보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예고편을 보고서는 꼭 봐야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뭐 그건 정말 신나보이는 액션 때문이기도 했지만 James McAvoy가 나오는 액션 영화는 과연 어떨까, 라는 궁금증을 잠재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왜 하필 James McAvoy? Atonement 때문이냐고 누군가 물어보겠지만, 그것보다는 단연 Mr. Tumnus때문이었다. 세상에 어느 액션 영화의, 총으로 다 쏴죽이면서도 자신은 절대 죽지 않는 남자주인공이 ‘Oh, I am a terrible Faun’을 연발하는 띨띨한 요정으로 출연했겠냐고… 영화를 보러가면서 머릿속으로 열심히 각종 액션영화의 주인공들에게 Faun의 옷을 입혀가며 시각적인 상상력을 동원해봤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런 그림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지 않았다? 스티븐 시갈? 척 노리스? 브루스 윌리스? 캘리포니아 주지사(물론 그는 맷돌을 돌렸지…유치원 선생도 해봤고)? 조금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서 션 코널리? 음… 극장까지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거리라 거기까지 옷을 입혀보고 나니 나는 표를 사고 있었다. 코널리 선생 옆에는 실베스타 스탤론이 대기하고 있었다. ‘내가 60이 넘은 이 마당에도 액션영화를 찍는 철인인데 이런 털옷을 입어봐야만 되는거냐, 체면 구겨지게’ 라고 연신 투덜대면서.

보는 동안에는 ‘얼씨구, 정말 재미나구나’ 라고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면서 보았던 이 영화는 집에 와서 하나하나 뜯어가며 되새김질을 해 본 결과 얼씨구, 정말 쓰레기같은 영화였다. 일단 가공된 원작은 아무리 액션영화라는 것을 감안해도 정말 개연성이 없다. 특히 절정에서 모건 프리먼 선생님이 Fraternity 구성원 모두의 이름이 다 나왔었기 때문에 자기가 바꿔야만 했다고 말하는 설정은 그냥 순수한 억지다. 100% 순수한 억지… 게다가 그렇게 암살될 이름이 선택되는 것이 정말 순수한 운명이라고 영화 내내 강조되어서 눈먼 살인을 저지르도록 총알마저도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게 쏘는 훈련을 받아야만 하는 얘기를 다루는 영화에서 그 운명이 자기의 목숨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부정한다는 건, 영화가 자기를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중심개념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졸리누나가 자기 머리에 총알을 박는 것과 마찬가지.

하지만 그러한 말도 안되는 이야기 구조를 감안하고서라도 이 영화는 아주 재미있다. 작년에 보았던 Shoot’em up! 같은 영화도 내용이 없지만 죽여주는 것만으로 죽여주게 재미있는 뭐 그런 영화였지만, 이 영화는 어떤 영화평론가의 표현을 살짝 빌려서 쓰자면 그런 영화에다가 카페인이 가득찬 에너지 드링크를 쏟아부어 폭주시킨 듯한 느낌을 준다. 거기에다가 보드카까지 섞는다면 금상첨화고… 아직도 이 영화가 쓰레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 정도의 쓰레기라면 냄새가 좀 나더라도 계속 봐줄 용의가 있다. 

 by bluexmas | 2008/07/02 11:07 | Movie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로오나 at 2008/07/02 16:26 

하하하. 뭔가 완성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즐거움을 가진 영화죠. 상식적인 시각으로 보면 전혀 재미있게 볼 수 없는. 하지만 또 무작정 그렇게 만든다고 해서 재미있을 수 없는걸 감안하면 잘 만들어진 괴작인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blackout at 2008/07/03 13:14 

꼭 봐야겠네요! 어짜피 내용없으려면 끝날때까지 손에 땀을쥐면서 보게 해주면 좋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7/04 11:48 

로오나님: 완성도를 무시한 완성도가 높은, 그런 한없이 자가당착적인 그런 영화죠. 컴퓨터 그래픽의 발달로 만화는 실사처럼, 영화는 만화처럼 만들어지는 그런 세상이라 이런 영화도 나오나봐요^^

blackout님: 손에 땀도 안 쥐어지던데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