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유혹

오랫동안 꿈꿔왔던 사람의 이미지가 있다. 말로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그냥 이렇다, 라고 직업훈련으로 동원된 시각적 상상력을 이용해 머릿속에서만 그려보는 것이 훨씬 편하다. 그렇게 그리면서 아무도 모르게 웃음짓는다. 내 삶에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거라는 기대는 이제 슬슬 접고 있으니, 그 이미지는 환상에 반 발짝 더 가까이 다가서 있을 것이다.

복수는 바로 그 사람을 닮은 모습으로 내 집 문 앞에 서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옷은 흠뻑 젖어 있었고 그는 오랫동안 헤매다가 찾아왔으니 자기를 받아달라고 했다. 아직 애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조금만 튕기는 척을 하면 금새 애원이라도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내가 튕길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눈치였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이런 기회는 또 다시 찾아오지 않을텐데… 사실은 아무런 고민도 망설임도 없이 정말 낼름 그를 들어오라고 해야되는 것 아닌가? 누구라도 그렇게 할 텐데… 고민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습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생각해보니 나에겐 지켜야 될 것들이 있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다시 문을 닫았다(그러니까 튕기지는 않은 것이었다, 자존심은 살려줘야지…). 그가 닫은 문 앞에서 기다리는지의 여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소파에 앉아 음악을 크게 틀었다.

 by bluexmas | 2008/08/16 22:21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