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깊이

, 내 블로그에서조차 낯 두꺼워질 수 없는 내가 과연 진정한 ‘블로거’가 될 수는 있는지 잘 모르겠다. 원래의 계획은 600번째 글을 기념해서 다른 글 안 올리고 어제 오늘 올린 ‘연재물’을 며칠동안 올릴 생각이었는데, 어째 마음이…

하여간, 옛말에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했는데, 살면서 겪어보거나 또 다른 사람들이 겪는 것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과연 슬픔이라는 것을 나누는게 그리 쉬운일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슬픔을 나누는 방법엔 무엇이 있을까? 누군가 그러한 감정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그런 슬픔을 겪고 너무 힘들겠다, 내가 위로해줄께’ 라고 말하면  뭔가 좀 나아지는 걸까? 솔직히 확신이 가지 않는다. 요즘 계속해서 생각하기를 슬픔에는 깊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러나 사람들은, 슬픔과 그 슬픔이 낳는 고통으로 인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삶마저 포기하는 것을 종종 보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슬픔이 쉽게 기쁨과 짝이 될 수 있는 감정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바로 위에서 언급한 저 옛말처럼… 그러나 슬픔을 겪는 사람들이 시간이 지난 뒤 멀쩡한 듯 숨쉬고 산다고 해서 그 슬픔이 밖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삶에 덜 힘든 요소로 작용한다는 보장은, 겪어본 사람들은 동의할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없다. 말하자면 슬픔의 깊이라는 건 그 슬픔을 겪은 이후에 벌어지는, 밖에서 보고 판단내릴 수 있는 삶의 형태와 질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얼마전에 처음 입사해서 ‘모시던’ 소장의 부친이 돌아가셨다고 메일이 돌았는데, 알게 모르게 이 사람에게 미안한 구석이 있어서 연말이나 중요한 때 꼭 인사를 해 왔던 나니까 이런 일에는 더더욱 인사를 해야될 것 같아서 애도 카드를 한 장 사왔는데, 정말 뭐라고 쓸 말이 없었다. 물론, 이런 카드도 여러번 써봤었기 때문에 이렇게 조사가 났을 때 뭔가 쓰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봐도 되고… 그렇지만 그렇게 형식적인 몇 줄을 쓰면 마치 내가 그 사람이 겪고 있는 슬픔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그렇게 쓸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모르니까. 그래서 그냥 ‘Honestly, I don’t know what can I say-‘ 로 시작하는 몇 줄을 써서는 그렇게 개운하지 않은 마음으로 카드를 건넸다.

며칠 전, 누군가 슬픔과 고통을 말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사실 나에게도 뒤져보면 그런 기억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이 가진 슬픔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뭐라고 꼭 얘기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너무 답답했다. 아니, 사실 그건 꼭 말로만 국한되어야 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언젠가 기회가 꼭 주어지기를, 이라는 생각으로 침묵을 지키려니 그것도 슬픔이 되어 다가왔다. 사는 건 이렇다.

 by bluexmas | 2008/08/18 12:57 | Life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at 2008/08/18 13:21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산만 at 2008/08/19 03:33 

예전에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에서, “그냥 실감도 안 나고 멀쩡하게 있었는데, 니가 와서 내 표정을 살피고 슬퍼하는 걸 보니까 정말 슬프긴 하다. 와줘서 고맙다.” 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땐 무슨 말인지 좀 헷갈렸었는데..살면서 보니 슬픔이라는 건 본인도 겉으로 내색하기도, 표현하기도, 스스로 그게 뭔지 깨닫기도 쉽지 않고, 그래서 심지어는 명확하게 느껴지지 않거나 시간이 갈수록 다른 형태를 띄어가는 슬픔에 대해 묘한 안도, 불안, 죄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도 같아요. 그리고 남의 슬픔에 대해 완전 아전인수격인 다른 감정을 가지게 되기도 하고.. 결국은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마음 쓰거나 마음 아파하는 걸 보고 비로소 내가 슬프다는 걸 (혹은 슬퍼야한다는 것, 슬퍼도 된다는 것, 혹은 상대방과 나는 다른 종류의 슬픔을 느낀다는 것) 자각하게 되기도 하고. 글 읽다보니 정말 슬픔을 나누는 의의는 결국은 실제 나누거나 덜기는 커녕 서로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슬픔에 실체를 부여하는 가운데 다른 결을 가진 슬픔을 증폭시키는데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8/19 13:05 

산만님: 어떤 분 블로그에서 어떤 글을 보고, “비슷하지는 않지만 이런 일이 있어서 어쩌면 그 고통을 이해할지도 모르겠어요” 말하고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슬픔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죠. 말보다 더 나은 방법도 있는데, 이 곳에는 언제나 그냥 말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