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사진

=기억의 기억?

글쎄.

사진 속의 사진은 누군가의 생일선물이다. 지난주엔가 내일이 누군가의 생일이라서 점심을 같이 먹는데 오라는 얘기를 들었다. 회사메일 시스템으로 약속을 만들어서 보낸다고 했는데 그 뒤로 별 소식이 없어서 끼게 될지 안 끼게 될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이젠 그런 자리에 먼저 나서서 나도 끼면 안 되냐고 잘 묻지 않기 때문에 오라는 말이 없으면 안 갈 생각이다. 그래서 도시락도 싸 놓았다.

그러나 만약을 대비해서 선물은 준비해놓았다. 생일이라고 얘기도 들었고 또 밥을 같이 먹으러 가게 된다면 생일 선물은 주고 싶으니까. 만약 못 주게 되면 내 방에 그냥 걸어 놓으면 되니까 걱정할 필요도 없고. 이래저래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꽤 많이 찍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진은 좀 찍으니까 선물로는 내가 찍은 사진을 주마-‘ 라고 할 수 있는 사진은 거의 없기 때문에 막상 사진을 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고민을 한참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 사진은 굉장히 고마운 녀석이다. 예전에 누구한테 선물해야 될 일이 있어서 저런 액자에 꼭 저렇게 넣어서 선물을 했는데 만들어 놓고 나니 뭔가 있어보였으니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래서 어차피 선물 받는 사람들은 서로 모르니까 똑같은 녀석을 하나 더 준비했다. 전부 든 돈은 사진 한 장에 20센트, 액자가 13불, 해서 뭐 만 우리 돈으로 만 몇 천원? 그러나 그 만 몇 천원짜리 선물을 하나 만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일단 뽑아놓은 사진이 없었다. 집에 칼라프린터가 두 개나 있으니 그걸로 뽑으면 좋으련만 컴퓨터를 바꾸고 나서 아직까지도 프린터를 설치 안 한 데다가 엡슨 프린터가 언제가 그러하듯 오래 안 쓰면 노즐이 막혀서 청소만 저녁 내내 해도 뚫릴까 말까… 그래서 집에서 뽑는 건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저렇게 생긴 액자는 어디에서나 사실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데 예전에 타겟에서 산게 가격도 그렇고 여러모로 괜찮았음으로 다시 타겟을 가기로 했는데, 문제는 타켓에 딸린 사진관은 온라인으로 사진을 올려서 뽑도록 주문을 한 뒤 가게에서 찾을 수 있는 체계를 갖추지 않아서, 사진은 또 월마트에 따로 맡겨야만 했다. 그래서 집 근처의 타겟과 월마트를 효율적으로 들를 수 있는 동선을 생각해서 평소에 잘 안 가는, 집에서 보다 먼 월마트에 사진을 맡겼는데, 오전에 전화가 와서는 자기네 기계가 고장이 나서 오늘은 사진을 뽑을 수가 없다고 했다. 결국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 있는 월마트에 사진을 다시 주문하고 전혀 다른 곳에 있는 타겟에 들러 액자를 샀다. 차만 타고 돌아다니는 동네에선 뭔가 한 번에 되는 일이 없다.

하여간 동선이 쓸데없이 길어져서 칼퇴근을 했음에도 생각보다 집에 늦게 들어오는데 내일 이걸 생일 맞은 사람에게 주게 될지 안 주게 될지도 모르지만, 준다고 한들 그렇게 생각보다 번거로운 과정은 혹시 알까, 라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하다보니 엉뚱하게도 아직도 사람들에게 내가 한 무엇인가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기대를 품고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솔직히 잘 모르겠다. 기대를 가진다는 건 나쁜 습관과 같다는 생각을 참으로 오랫동안 하고 살았다. 살면서 들었던 얘기들 가운데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종류는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내가 해 줄 수 없는 건 남에게도 바랬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글쎄.

 by bluexmas | 2008/09/24 12:10 | Life | 트랙백 | 덧글(3)

 Commented by turtle at 2008/09/24 13:24 

타겟에서도 저렇게 멋진 액자를 파는군요!

저한테 누가 저런 사진 선물을 주면 정말 감동할 것 같은데요? 누가 받든 드러내놓고 좋아하지 않더라도 속으로는 흐뭇해 할 거에요~

기대가 많은 사람이라는 말은 저한테는 희망이 많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들리네요. 🙂 어지러운 세상에 희망을 계속 안고 살아간다니 좋은 일 아닙니까!

 Commented by 모조 at 2008/09/24 16:08  

(주셨어요?)

사람들이 종종, 알아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베풀라,는 식으로 말하는데 전 이 말 참 싫어해요… 내가 누군가를 위해 이렇게 마음을 썼다, 라는 걸 상대가 알아봐줄때 그 사람과의 관계가 조금이나 특별해진 기분이 들어요. 한쪽 방향이 아닌 양쪽 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느낌.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09/25 12:29 

turtle님: 그렇죠! 전 타겟 굉장히 좋아해요. 특히 수퍼타겟에서 파는 식료품 종류는 질이 굉장히 좋더라구요. 특히 소꼬리… 기대가 많다는 말은 사실 demanding한 사람이라는 얘기였죠, 하하… 그러나 어지러운 세상에도 희망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삶에 속가 살던가요…^^ 치통은 좀 나아지셨기를 바래요. 전 치통의 개인사가 장난 아니거든요.

모조님: (아뇨. 잘못 주면 회사에서 말 나올 상황이라 생각하다가 밥도 안 먹으러 가고 안 줬어요. 일도 바빠서 밥 먹으러 갈 시간도 없었어요)

말씀하신 것에 대해선 전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요. 겪은게 너무 많아서요. 그러나 지금은 다 지나간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