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표정
참으로 웃기는 얘기지만 사진을 찍히든지 찍어놓고서는 이게 정말 나라는 사람이 생겨먹은 모습이구나, 라고 쉽게 동의하는 경우가 없다. 때때로 거울을 보았을 때 내가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얼굴이 찍혀있다는 생각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아무래도 내 얼굴은, 아니 나라는 사람은 순간에 어울리지 않는 종류일 확률이 높다. 그래서 그런지 나에게는 사진을 위한 표정이라는게 없다. 비록 순간이라도 할지라도 남기기 위해 같은 표정을 계속해서 지어야 하는 건 때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 렌즈 너머로 누군가가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기 시작한다면 더더욱. 그래서 찍히기 위해 웃는 표정을 짓는 건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사실은 입가의 주름을 무시할 수 없는 나이가 되어서 웃기 싫은 것도 있지만.
때로 사진을 위한 표정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는 사람들과 마주쳤던 경우도 있었다. 나처럼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여행을 다녀서 서로 찍어줄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 많았던 것 같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향기나는 꽃밭 앞에서든 냄새나는 유료화장실 앞에서든 그 어떤 표정을 짓고 있다가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주머니에서 아주 빠르게 사진 표정을 끄집어 내어 뒤집어 쓰는 사람들이었다. 뭐랄까, 나는 정말 그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웃는 것이었는데 언젠가는 그런 똑같은 표정을 지은 사진을 한 10여년 치 모아놓은 앨범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찍은 사진들이었는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똑같이 웃는 얼굴로 찍은 사진이 앨범 수십 권에 가득했었고 나는 웃는 얼굴 뒤의 시간과 공간이 어딘지조차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 웃는 얼굴들의 광채에 넋을 잃어서… 세상엔 보여주기 위한 행복함이라는 감정도 존재하는 것일까? 나를 봐요, 아니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봐줘요. 나는 당신을 약올리기 위한, 당신에게 상대적인 불행함을 느끼도록 하기 위한 행복함을 가지고 있다니까요.
만약 그렇다면.
# by bluexmas | 2008/10/13 01:52 | Life | 트랙백 | 덧글(16)








그래도 자주 웃어 생기는 입가의 주름은 아름다우니, 자주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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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c님: 앗, 예전에도 사진 올린 적 있는데 안 보시고 상상만 하셨나봐요^^;;;
zizi님: 뭐가 궁상맞고 처량한 분위기인 걸까요? 하하…^^;;;
Amelie님: 웃으면서 찍은 몇 장의 사진이 완전 아저씨 분위기라는 걸 알고 나서는 웃음이 입가에서 사라졌다는 슬픈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지요…
비공개 1님: 밖에 나가면 스스로 가식적이라고 생각될 만큼 잘 웃고 다니지만 사실 저런 얼굴이 저의 얼굴이 아닌가, 생각하죠. 백 장 찍으면 한 장 나오는 뭐 그런 거라고나 할까요. 오죽하면 블로그에 올렸겠습니까…하하.
비공개 2님: 실제로는 잘 웃고 다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매일매일 행복한 삶, 웃기만 해도 모자란 하루… 뭐 이런거라고나 할까요-_-;;;
1984님: 기린을 연상하기엔 목은 너무 짧고 머리는 너무 큰 사람이 전데요?-_-;;;
shin님: 아스테릭스요? 아니면 그의 친구 오벨릭스가 저의 비만 시절과 잘 어울리는군요-_-;;; 참고로 예전엔 제이 레노를 닮았다는 사람도 많았고, http://en.wikipedia.org/wiki/Droopy 얘를 닮았다는 사람도 있었죠. 모 연예인을 닮았다고 누군가 그랬는데 제가 싫어하는 인간이므로 통과.
그나저나 메탈리카 새 앨범 들어보셨어요?
보리님: 전 그것도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완전 포기했어요. 그냥 운명에 맡기고 카메라 앞에 얼굴을 내밀죠-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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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리카 새 앨범요? 저는 그보다는 오아시스 쪽인데;;;; 그나마 오아시스도 아직 못 샀어요 입에 풀칠하느라 바빠서요;;; 그러고보니 심지어 시구르 로스도 아직;;; 아 십대때 한창 음악 들을 땐 뭔가 돈도 시간도 어디서 곧잘 튀어나왔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비공개 3님: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찾아보면 사진 한 두 장 더 있어요. 일년에 한 장씩 올리는 듯. 가족분들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고 계시죠? 맛난 것 많이 드시고 오세요. 특히 아버님께서 끓여주시는 떡국…^^
shin님: 으하하 드루피는 여기에서도 빠지지 않는군요. 저는 지난 앨범을 끝으로 오아시스를 버렸답니다. 지난 앨범 너무 구리더군요. 물론 모닝 글로리 이후로 거의 듣지 않기는 했지만… 십대땐 정말 시간도 돈도 있었던 것 같아요. 일주일마다 테이프 하나씩 사는 낙으로 버텼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