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내렸던 밤

의식이 벌건 대낮의 백사장을 맨발로 걷고 있다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으니 곧 밤이 내렸다. 어둠이 깔려 나를 둘러쌌고 달과 별이 단골손님처럼 찾아들었다. 마지막으로 자리를 잡는가 싶더니 이내 떨어져버리는 혜성의 꼬리에는 오래된 기억이 달려있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둡고 좁은 공간속에 이백 육십 며칠간을 머물러 있다가 세상에 나와 숨쉬기 시작한지 구천 삼백 하고도 며칠이 더 지난 초겨울의 밤이었다. 이렇게 이런 노래를 듣고 있으면 낮에도 무작정 내리는 그것과 비슷한 밤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간, 그는 뜬금없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나, 이제 뭔가 조금 알 것 같아, 라고 얘기했었다. 볼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두어발짝 떨어진 곳에서 대견스러움과 비웃음이 반반씩 섞인 웃음을 입으로만 웃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가 뭘 알게 되었는지, 얼마나 알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물어보지도 말하지도 또 듣지도 못한채 그와 나는 남남이 된지도 벌써 수천년은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흘렀다. 아니, 이제는 그런 사람이 있었는지도 기억할 수 없는 시간이 흘렀지만 답도 궁금하지 않았고 물어볼 생각도 없던 그 한마디는 그야말로 뜬금없이 기억나는, 그런 말을 품은 밤이 언젠가 있었다.

 by bluexmas | 2008/10/16 13:40 |  | 트랙백 | 덧글(2)

 Commented at 2008/10/18 02:3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8/10/18 13:51 

전 기억하기 싫은 일이면 그냥 그런 일 없었던 것처럼 스스로를 속이면서 산지 꽤 됐어요. 아냐, 이건 꿈이야…뭐 이러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