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첫 고민
사실 새해의 첫 번째 고민은 지난 주, 아니면 지난 달 내내 해 왔던 고민의 연장선 위에 있었다. 새해 첫 날 떡국을 위해 새 떡을 사야 되는가, 아니면 있던 떡을 재활용 할 것인가? 떡국을 좋아하는 나지만 이상하게 새해 첫 날이 아니면 끓여먹지 않아서, 작년에도 재작년에 사 놓았던 떡을 쓸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새해 첫 날에 끓여먹는 떡국인데 새 떡을- 이라고 마음먹고 있는 걸 버리고는 새 떡을 사서 끓여먹었는데, 그 때 딱 한 번 끓여먹고 남은 떡을 일년 내내 냉동실에 처박아두는 패턴을 반복하다보니 과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적어도 다섯 번은 더 끓여먹을 수 있는 떡이 남았을텐데, 또 새 떡을 산다는게 좀… 그러나 새해 새마음을 위해 끓이는 떡국인데 또 묵은 떡을 사용한다는 건 어째 찜찜하고, 또 그렇게 생각하면 과연 언제나 떡상을 하고 앉아서 떡을 파는 이 동네 떡집 주인이 햅쌀로 떡을 만들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어젯 밤, 비몽사몽간에 냉동실에서 떡을 한 줌 꺼내 물에 담궈놓고는, 아침에 일어나서도 계속 고민을 했다. 이걸 먹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뭐 그렇게 사소한 고민을 새해 첫 날 부터 거창한 척 하다가 그냥 못이기는 척 끓여 먹고야 말았다. 워낙 별로 쫄깃쫄깃하지도 않은 현미 떡을 물에 밤새 담궈놓았더니 끓는 국물에 넣자마자 불어버려서 좀 그랬지만, 어쨌거나 떡국은 끓여 먹었고, 나이도 한 살 더 먹고야 말았다. 이젠 별로 자랑스러울 것도 없는 나이가 된 것 같은 느낌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거냐, 새해 첫날 부터 칙칙하게.
그나저나 사진의 김치는 정말 심혈을 기울여 담궜는데, 빨간게 사진발만 잘 받지 맛은 완전한 실패작. 그러니까 기껏 공들여서 저딴 김치를 담궈 놓으면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삶의 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직 5년도 안 되었는데 손맛을 이룬다는 내 목표가 너무 원대한 것일까.
언제나 그렇듯이 새해라고 거창한 목표를 세우고 지키지도 않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목표 따위는 세우지 않으려고 하지만(게다가 직장에서의 성공 따위를 목표로 삼는 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더더욱- 나같은 패배자의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원대한 목표를 가진다는 건 어째 좀 말이 안 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올해에는 한 가지 목표 정도는 세워야 할 것 같다. 그건 건축에 다시 좀 정열 따위를 가져보는 것. 아니, 직업이 그건데 정열 따위를 다시 찾는 건 대체 무슨 소리냐고 누군가 물어볼지도 모르겠는데, 뭐랄까 그건 나무들 한 가운데 있다보니 그것만 보고 지난 몇 년간 숲을 보지 못했다는 것과 비슷해서 너무나 현실적인, 업으로 삼는 건축에 발을 지겹도록 담그고 있다 보니 학교에 있을 때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건축에 등을 돌리고 있었고, 이제는 다시 등을 돌려서 그걸 좀 바라보고 싶다는 얘기다. 무엇인가에 어떻게 도움이 될지는 나도 모르고 며느리(!)도 모르지만 사 놓고 표지만 보면서 배불러, 아니 머리 아파했던 이론 책들도 좀 보고, 되는 대로 건축에 관련된 글들도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좀 써 봤으면 좋겠고… 물론 현실적인 건축도 올해는 절대 무시할 수 없다. 올해 가을이 되기 전까지 건축사 면허를 따는 게 목표니까. 왠지 면허라도 좀 따야 회사에서 더 이상 직업적 지진아 취급은 좀 덜 받을 것 같아서. 이렇게 써 놓고 보니까 올해는 뭐 개인적인 ‘건축의 해’ 라도 되는 걸까.
# by bluexmas | 2009/01/02 13:20 | Life | 트랙백 | 덧글(7)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 덧글입니다.
카렌님: 저 별로 가정적인 사람 아니랍니다. 카렌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비공개 2님: 누가 그러는데 아침에 김치 먹으면 냄새난다고 그러더라구요. 저는 아침에 밥 먹는거 좋은데 시간이 없어서 늘 빵만 먹어요. 떡국 끓여 드세요. 멸치국물은 금방 내는데…
1984님: 웃자고 쓴 글이에요^^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