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멍울
번째와 세 번째 앨범, 그리고 그 세 번째 앨범이 나오기 전의 미니 앨범까지 가지고 있는 마이 언트 매리의 노래 가운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하필 가지고 있지 않은 두 번째 앨범에 있다. 그 노래는 바로 ‘양송이 스프.’ 통기타랑 탬버린이 로우 파이처럼 들리게 녹음된 가운데, 일요일 아침 엄마가 해주던 양송이 스프를 먹을거야, 였는지 먹었다였는지, 하는 가사가 왠지 좋았다. 우리 집도 일요일 아침이면 양송이 스프를 위시한 각종 오뚜기 스프를 먹곤 했으니까. 지금이라면 조미료 떡칠에 먹고 싶지 않을 그 스프들은 사실 크림과 루를 기반으로 만든 스프를 흉내낸 것으로, 곡 바닥에는 뭔가 멍울진 덩어리들이 깔리곤 해서, 어린 마음에 그게 무슨 고기라도 되는 줄 아는 비만탐식아동 어린 bluexmas는 그 덩어리를 혼자서 꾸역꾸역 다 독차지해 쳐먹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건 그냥 멍울덩어리였다. 수프가루가 물에 잘 녹지 않고 뭉쳐져서 생긴, 겉은 미끈거리나 속은 그저 마른 가루 덩어리여서 짜고 또 조미료 맛 물씬이었던 멍울덩어리. 나는 허무함을 느꼈지만,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그래도 좋다고 그 멍울들을 독차지하려 들었다. 나중에야 스프를 직접 끓여 보면서 알게 된 건데, 그런 멍울이 생기지 않으려면 처음 찬물에 스프 가루를 넣고 끓일 때부터 아주 잘 저어줘야만 하는 것이었다.
돌아온 이후로 끓이는 스프는 계속해서 멍울 투성이였다. 잘 저어줬어야만 하는 것인데 루를 만들때 밀가루를 너무 많이 넣었는지 뻑뻑해서 거품기로도 스프를 젓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는 스프 가루 따위는 먹지 않고 직접 밀가루와 버터를 볶아 루를 만들고 육수를 부어 만드는 것인데도 끓이다 보면 꼭 이렇게 멍울이 생기고, 그게 계속해서 누적되면 내가 뭘 끓이는지 알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뻑뻑해진 스프를 저으려고 애쓰다 보면 대개는 짜증이 치밀어 올라 개수대에 냄비채 스프를 들어 쳐박아 버리거나, 아니면 계속 젓고 또 저으려다가 스프가 거품기를 끌어 안은채로 바닥으로 날아가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젓지 않는, 아니 저을 수 없는 스프는 곧 타버린다. 그런 일을 미리 막으려면 처음에 육수를 부을 때 홀랑 다 붓지 말고 조금 남겨두는 게 좋다. 물론 물을 쓰면 전체적으로 맛이 옅어지므로 피하는 게 좋다. 어쨌든 계속해서 끓이던 스프를 엎어버리고 싶은 파괴 욕구에 시달리다가 간신히 억누르고 어제 물을 좀 탐으로서, 당분간은 또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게 되었다. 물을 넣는게 좋지 않기는 하지만, 너무 진한 육수 역시 입맛이 아니므로 피하는 게 낫다는 원칙을 어제 또 새삼 확인했다. 서너가지 재료로 끓여 먹는데 익숙하던 스프를 갑자기 서른 다섯 가지 재료로 끓이려니 재료 준비하는 것도 그렇고 넣는 시기를 잘 맞추는 것도 그렇고 정말 쉽지가 않구나.
# by bluexmas | 2009/07/17 01:28 | — | 트랙백 | 덧글(14)
비공개 덧글입니다.
그런데, “루”란 무엇인가요. 왜냐하면 제가 엊그제 코스트코에 갔다가 닭고기 broth(이거 육수 맞지요)라는 걸 사왔거든요. 세 통 묶음에 얼마! 라고 외치는 말에 현혹되어서… 물론 이 broth라는 것도 bluexmas님 블로그를 기웃거리다 처음 배운겁니다. 지나는데 그 단어가 눈에 들어오면서 생각이 나고, 어느새 바구니에 던져져 있더군요.
broth는 저녁에 통 밖에 써 있는 표준 요리예에 따라 해보았습니다. 닭고기가 없어서 육수, 후추를 넣고 끓이다가 당근, 브로콜리를 넣었습니다. 그리고 noodle(이거 우리가 먹는 그 국수일까요)을 넣으라고 했는데 역시 없어서 파스타를 반으로 잘라서 한 웅큼 넣었습니다. 생각보다 진하고 짜더군요. 아무튼 결과로 맛이 괜찮았습니다.
미국에서 온 broth면 짤 확률이 높으니까 간을 잘 보셔야 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