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yes of the Skin-Junahi Palllasmaa
이런 종류의 책을 다시 손에 잡은 게 몇 년 만이더라? 꼭 4년 만인 것 같다.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는 이론이고 뭐고 너무 지겨워져서 이런 책 따위는 적어도 당분간은 읽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던 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나니 내가 학교에서 추구했던 것과 실무 사이의 간극이 너무 멀다고 느껴 더더욱 이런 책 따위는 일하는 동안 읽지 않으리라고 굳게 마음 먹게 되었다. 물론 나의 판단 착오…
채 팔십 쪽도 되지 않는, 짧은 에세이 두 권으로 이루어진 책인데도 드문드문 읽다보니 많은 시간이 걸렸고, 또 제대로 이해하고 있나 미심쩍은 부분도 많았다. 잠시 옆에 놔 뒀다가 다른 책들을 읽고 나서 또 읽어볼 생각이니 덧붙일 얘기는 그때 덧붙이면 될텐데, 어쨌거나 책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얘기는 (서구를 중심으로) 오감 가운데 시각이 얼마나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며, 또 그 시각 우위의 사고방식 때문에 건축이 얼마나 편협한 Eye Candy가 되었냐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논지에 기껏 3,4 년 일을 했지만 1000% 공감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비단 넓고 넓은 건축 실무의 바다 전체를 헤매면서 그 경향을 곰곰히 생각해보지 않더라도 내가 품팔았던 프로젝트의 대부분이 공간보다는 랜드마크적인 건축, 그러니까 온전히 시각에 치중한 것들이었고 심지어 학생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개인적으로 했던 스튜디오의 작업을 부끄럽지만 다시 파헤쳐봐도 나는 언제나 공간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시각적인 개체(object)를 만들어내는데 치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원 세 학기째에는 아예, 형태를 만들어 내는 실험 따위를 한다면서 뭔지도 모를 이상한 덩어리를 만들어서 깎고 붙이고를 거듭하다가 아이젠만의 실험작 발톱의 때에 낀 때만도 못한 흉뮬을 만들어서 도시 한복판에다가 쑤셔 넣고는 이것이 나의 실험이라고 떡허니(그러나 물론 부끄러워하면서) 발표했고, 거기에 누군가는 공간에 대한 고려가 없다는 식으로 넌지시 반응을 보였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는지조차도 감을 잡지 못했다. 말하자면 나는, 보이는 건축에만 집착했고 어떻게 공간에 대해 생각해야 되는지도 몰랐다. 기억해보면 그런 걸 배웠나도 싶고, 또 한 편으로는 그게 과연 학교에서 어떤 방식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건 굉장히 부끄러운 자기고백.
책의 뒷편에는 이 두 편의 에세이를 모은 책이 1996년에 세상의 빛을 봐서 학생들에게 꼭 읽어봐야 할 거리로 추천되었다던데, 내가 작가에 대해서 얘기를 들은 건 대학원 3학기 째, 건축 비평과 이론 2를 들었을 때였으니 그동안 나는 대체 뭘 하고 있었을까? 유리를 포함한 온갖 반짝거리는 것들로 뒤덮여 ‘와, 저 건물 좀 봐!’ 라고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도록 하는 건축은 어쩌면 사람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건축의 현실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이제는 대안을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다는 현실이 되고만 이 현실에서 때로 건축을 업으로 삼는다는 사실은 개인을 슬프게 만들곤 한다. 내가 그렇게 슬픔을 느끼며 정리될 때까지 하던 프로젝트는, 먼저 형태를 만들어 낸 뒤, 거기에 공간을 우겨 넣어서 사람이 어떻게 저 안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일하는 내내 계속해서 가지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먼저 형태를 만들고 안으로 파고 들어가면서 공간을 ‘추출해내는’ 방식은 회사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나 개인적으로도 언제나 택해왔던 것이었다. 과연 공간이라는 것을 그런 방식으로 얻어내도 되는 것이었을지… 어쩌면 다시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르는 세계에 대한 얘기를 하는 책을 읽으며 뜬금없이 생각했다. 건축은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 by bluexmas | 2009/08/09 10:30 | Architecture | 트랙백 | 덧글(8)
사실 건축은 건축 뒤에 부동산이나 그 이권을 둘러싼 정치적인 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게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무력한거죠. 저는 도심 재개발 같은데에 희망을 버린지가 오래 되었구요. 직업인이 이러니 참 그렇죠.
대만에서 철거되는 재개발 지역을 몇 군데 다녀보았는데, 비워진 집들과 그 반쯤 허물어진 집들, 벽돌들(옛방식은 거의 벽돌집입니다.)이 아쉬워 많은 예술인들이 철거 직전까지 공연을 하고 벽화를 그리고,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전시하고 하더군요. 삶, 가족, 과거 뭐 그런 것들이 깃들어 있던 ‘공간’의 멸절을 애도하는 아름다운 곡소리 같았습니다.
저 책이 궁금하네요. 건축은 완전히 아무것도 모릅니다만 관심이 생깁니다. 표지 그림도 좋은 선택 같습니다. 카라바지오의 그림들은 신기하게도 사진처럼 강렬하게 한눈에 철컥 하고 박히는 느낌이 듭니다.
책은, 채 백 쪽도 되지 않는 얇은 것인데 비단 건축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도 한 번쯤 읽어보면 좋다고 생각해요. 시각을 뺀 나머지 감각들로 사물을 체험하는 것에 대한 얘기거든요. 요즘 아이돌 그룹 따위를 중심에 놓고 벌어지는 지랄에 가까운 시각 중심의 우리나라 문화에 구역질을 느낀다면 정말 구구절절이 공감할 수 밖에 없더라구요.
사서 보시려면 제가 종종 책을 주문해서 보니까 그때 같이 하셔도 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