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에 얽힌 개인 사정
블로그를 계속해서 오셨던 분이라면 알겠지만, 내가 다녔다가 잘렸던 회사는 지난 몇 년 동안 두바이의 프로젝트를 젖줄로 삼고 있었다. 막말로 ‘정리해고=나의 능력 부족’ 일수도 있겠지만, 결국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대량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은 두바이에서의 상황과 깊은 연관이 없을래야 없을 수가 없다. 내가 회사에 들어가서 일하는 4년 조금 못 되었던 기간동안, 두바이는 물론 중동에서 가져오는 일이 회사 전체 일의 절반이 넘었으니까. 일개 말단사원이 회사 돌아가는 속사정을 제대로 알 수는 없지만, 그때에도 자꾸만 늘어가는 두바이로부터의 일이 끊겼을 때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일종의 상식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누군가는 그런 상황을 예측해서 조금씩 준비를 해야된다는 주장-뜨기 시작한 그 동네의 다른 도시 시장을 개척해야 된다는 것까지 포함해서-을 펼쳤겠고, 또 누군가는 잘 되고 있는데 또 다른 시장을 건드릴 필요가 있느냐고 반박했을 듯…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들은 대부분이 미국 남부 출신의 백인남자들이었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계를 향한 비지니스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모든 문화를 자국의 문화와 비교해서 평가하는데 익숙한 사람들이었으니까(실제로 그 결정을 내렸던 무리의 가장 윗 양반은 정리해고가 일어나기 한 달 쯤 전인가 사람들을 불러놓고 ‘우리는 이런이런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 저런저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니 안심해라’ 라는 요지의 발언도 했다. 그걸 누가 믿어?).
회사에서 정리해고를 당할 때, 얼마 되지도 않는 퇴직금 따위를 받기 위해서는 일종의 합의서에 서명을 해야 되는데, 거기에는 회사의 사정에 대한 얘기를 어느 기간 동안 하지 말라는 조항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뭐 한국까지 돌아와서 그때의 얘기를 몇 마디 한다고 해서 미국에서 나를 고소할리는 없겠지만, 사실 그때의 사정을 어느만큼 얘기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거냐…-_-;;;;).
어쨌든, 내가 다녔던 회사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두바이의 신기한 건물들 바로 옆에 있는, 나름 신기한 건물을 디자인했다(블로그를 찾아보면 그 건물의 그래픽이 있다). 나도 그 프로젝트팀에서 잘리기 전까지 한 1년 정도를 일했는데, 워낙 건축회사라는 게 돈을 주는 고객들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는 해도 그 프로젝트에 쏟아지는 요구는 정말 제대로 지켜내기 어려운 것이 많았다. 예를 들어 디자인이 다 된 건물을 위치를 옮기라는 요구가 있었는데, 형태는 물론 그에 따르는 모든 사항을 다 해결한 건물의 위치를 옮기는 건 삽으로 흙을 떠서 옮기듯 간단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 시키는 대로 다 하고 돈을 제때에 받았냐는 것인데…(…가뜩이나 돈도 없는데 고소당하고 싶지 않다…-_-;;;;)
사실 두바이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나를 자른 회사의 사정이 아니고, 정치에도 도전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는, 모 여류 건축가의 ‘두바이는 Do-buy(꼭 사라)다’ 라는 발언을 담은 신문기사였다. 그렇게 말씀하셨던 그 분은 두바이에 땅뙈기라도 좀 사셨을까… 이건 뭐랄까, 건축이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나쁜 예가 아닌가 생각한다. 환상만 잔뜩 빚어내다가 주저앉아버렸나고나 할까. 나는 사실 그런 식으로 허황된 landmark만 빚어내는 건축을 싫어했는데, 그 바닥에 있다보면 어떻게 해서든 그런 건물만 지어 길지도 않은 인생 자기가 떠나고 나도 건축물 따위에 자기 삶의 자취를 남기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다. 무조건 큰 건물을 위해 일해야 된다고 말하던 마초건축대인배들이었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코털과 귀털을 안 다듬는 것이었다.
# by bluexmas | 2009/11/29 11:42 | Architecture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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