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 관한 두서없는 생각 몇 가지

영화에는 무식쟁이라서 요즘은 본 영화에 대한 글을 거의 쓰지 않는데, 이 영화는 보고 나니 뭔가 쓰고 싶어졌다. 체계적인 지식 같은 건 없으니 그냥 생각나는 대로 늘어놓아 보자면,

1. 모호함(ambiguity), 상대성(relativity), 그리고 디테일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무엇에 관한 내용인지조차도 신경쓰지 않았다. 포스터를 보고, 디카프리오도 아닌 엘렌 페이지가 나오길래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한 정도? 영화가 개봉되고 곧 많은 사람들의 글이 쏟아지는 걸 보고 그런 내용이라는 걸 짐작했지만 그때는 스포일러가 될까봐 읽지 않았다. 어쨌든, 어디까지가 꿈이고 어디까지 현실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걸 딱 가르려는 것보다 그 모호함 자체가 감독이 의도한 것이므로 그냥 그대로 놓아두고 즐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여기에서 호접지몽 같은 걸 들먹여 봐야 다른 사람들이 다 생각할 수 있는 것이므로 클리셰 밖에 되지 않겠지만, 감독은 그저 그런 모호한 상태를 의도적으로 창조하고서는 그 주위에 영화라는 매체의 성질을 최대한 활용한 디테일을 둘러줌으로써 그 모호함을 극대화했고, 그게 이 영화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영화가 재미있으면 그 원작도 다른 매체, 특히 책으로 접했을 때 재미있을 확률이 높은데 이 영화만큼은 별로 그럴 것 같지가 않은 것은 바로 그 영화라는 매체, 시각과 청각이 최상의 상태에서 손을 잡은 상황이 생각보다는 참신할 것이 없는 소재를 극대화해 준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나 꿈의 하부 단계로 내려가면서 틈틈이 집어넣는, 아랫단계의 상황을 기준으로 했을때 상대적으로 느리게 흘러가는 윗단계의 상황 같은 건 글로 묘사해봐야 별 매력이 없을 듯.

2. 엘런 페이지와 아리아드네, 영화 속의 건축

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엘렌 페이지 때문에 이 영화를 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데, 영화를 나보다 먼저 보았던 분이 내 질문에 대답한 것처럼 그녀는 딱 그녀처럼 나왔다. 다음 영화에서도 그럴 때 재미있을지는 잘 모르겠고… 영화에 그렇게 모호함이 넘쳐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녀의 이름만이 어떠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딱히 공감하기 어렵다. 뭐 큰 의미를 두어야 할 필요도 없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꿈을 지어내는 사람까지 찾는다는 설정의 영화에서 그렇게 지어낸 꿈의 세계라는 것에는 전반적으로 ‘나이브’함이 두드러진다. 영화의 막바지에 코브가 지었던 꿈의 세계에서 아리아드네가 감탄을 하는데 그 세계는 단순히 규모(scale)가 큰 것일 뿐, 복잡함(complexity)의 정도가 높다고는 할 수 없어 보였다. 얼핏 보기에 고층 아파트 군의 느낌이 르 코르뷔제의 ‘빛나는 도시’나 뭐 그런 것 같아 보였는데 단순히 고층 건물이 밀집되어 있으면 그게 복잡한 상황인 것일까? 특히나 코브 부부가 살던 집이나 이런 것들을 한데 모아놓은 장면에서는 그 순진함에 실소를 금할 길이 없었다. 게다가 기억에 의지해서 꿈의 세계를 건설하면 안된다는 발상 또한 지나치게 순진한 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기억이 바탕되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세계를 일굴 수 있나? 길은 왜 길이고 건물은 왜 건물인가? 우리는 애초에 길이 길이고 건물이 건물이라는 것을 머릿 속에 담고 태어날까, 아니면 길이라는 것을 접하고 그것이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그게 길이라고 인식 또는 기억하게 되는 것일까? 물론 여기에서의 기억이라는 건 불특정한, 아니면 일반적인 길이라는 것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이 깃든 특정한 길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이해는 했지만…

3. 조셉 고든-레빗

영화를 다 보면 꼭 imbd나 위키피디아의 영화 해당 페이지 등을 읽는 버릇이 있는데 그의 연기가 가장 뛰어났다고 누군가 평을 했다던데 정말 그랬나? 늘 하는 이야기지만, 그가 나온 영화라면 <Lookout>이 가장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4. 토템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해도, 토템이라는 것의 설정에 큰 의미가 없다고 느끼게 되는 건 코브의 그것을 위해 설정했을 뿐, 다른 사람들의 토템이 그저 들러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놓쳤을까? 아리아드네는 왜 체스의 말 모양-pawn이었나?-으로 토템을 만들었나? 중심이 아래로 가는 물건이면 좋겠다는 식으로 설명한 것 같은데 아서의 토템은 주사위였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쨌든, 그 두 가지가 어떤 식으로든 영화 속에서 다시 언급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냥 사라졌다. 차라리 토템이라는 것의 설정 자체를 없애고 팽이에 보다 더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물론 개인적인 의미가 충분히 깃들어 있기는 하지만…

뭔가 잔뜩 생각났던 것도 같은데 막상 쓰려니 별로… 딱히 길다고 생각하지 않고 보았지만 하룻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의외로 남는 것이 없어 조금 허무하다. 뭐 그런 영화였던 듯. 영화관에서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은 딱히 들지 않고 DVD가 나오면 사 놓고 영화속의 건축 세계 뭐 이런 걸 더 들여다보고 싶다.

 by bluexmas | 2010/07/29 12:14 | Movie | 트랙백 | 덧글(8)

 Commented at 2010/07/29 12:5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8/01 16:08

수다스러운 영화… 그렇네요 정말. 그래도 넘친다는 느낌 없이 채웠다는 생각은 들어서 그것도 감독의 역량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도 이야기해대니까 한 번 더 봐야 되나? 라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꿀우유 at 2010/07/29 22:22 

헙. 조셉 고든레빗에 대한 누군가의 평에 눈길이 확 가네요, 다른 배우들 연기가 그 정도로 평이했거나 그 누군가는 조셉 고든레빗 빠일지도 모르겠네요 ㅋㅋㅋ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8/01 16:08

연기를 못하지는 않지요. 더 클 수 있는 배운데 괜찮은 역을 맡았다고는 생각합니다.

 Commented at 2010/07/29 23:4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8/01 16:08

아 그렇군요… 제가 놓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해요. 한 번 더 봐야 되는 걸까요 정말?

 Commented by Suzy Q at 2010/07/30 12:58 

저도 어제 보았는데, 의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디테일에 대한 무시/무관심이 눈에 띄더라구요. 그냥 4단계로 내려가는 꿈을 표현하는 데, 돈은 정말 많이 들였구나.. 그런데 뭐?라는 느낌이랄까요. 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8/01 16:09

아, 저는 오히려 디테일에 엄청나게 신경을 썼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스토리 그 자체보다 그걸 펼치는데 쓰는 디테일 이런 것들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