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호텔]버블리 선데이-이라는 치명적인 유혹
부페는 나에게 치명적인 유혹이다. 그 유혹의 이름은 때로 <질보다 양>, 언제나 몸부림치고 있는 내 안의 폭식 야수는 부페를 만나면 폭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W호텔의 ‘키친’에서 한다는 ‘버블리 선데이’ 브런치가 부페라는 걸 알았더라면 아무리 뵈브 클리코가 (두 시간 동안) 무제한이라고 해도 한 번쯤은 심각하게 갈 것인지를 고려해보았을 것이다.
뭐 무제한이라고 해도 각 자리마다 펌프를 달아주고 계속해서 쏟아부을 수 있는 종류는 아니지만, 그래도 술을 제한없이 마실 수 있다는 사실에 끌려 거금을 지출하기로 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음식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래도 ‘힙’하다는 W호텔이므로 음식의 수준이 어떤지 궁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부가세 빼고 11만원, ‘텐텐’을 하면 13만원에 가까운 돈이라면 그 기회비용을 생각해서라도 기대를 안 할 수가 없지 않을까(설명을 덧붙이자면, 초대한 일행이 음식값 50% 할인 카드를 가지고 있어서 음식은 3만원 정도에 먹었고, 술이 4만원 정도에 부가세랑 다 합쳐 9만원 정도 들었다. 정확한 내역은 아직도 헛갈린다)?
일단 부페는, 부페니만큼 음식 하나하나에 대해 언급하는 건 의미가 없으므로 전체적인 느낌만 이야기 하자면, 생각보다 적극적으로 ‘질보다 양’을 추구하는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만하면 뭐…’와 ‘그 정도 수준의 호텔치고는 참 그렇다’의 경계선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조리솜씨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고 또 그게 어느 부분 재료의 부족한 부분을 만회해주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구색을 맞추기 위한 음식들이 꽤 많았다. 누구나 좋아할 법한 왕게 다릿살 같은 건 솔직히 별 관심없었지만 어떤 수준인가 궁금해서 먹어보았는데, 배부를 걸 생각한다면 굳이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부페라고 해서 부페만 있는 건 또 아니었다. 사실 음식 인심이 생각보다 후해서, 샐러드와 디저트가 썩 나쁘지는 않았던 부페에, ‘Pass Around Course’라는, 뭐 굳이 비교하자면 타파스 정도의 양으로 된 음식 다섯 가지가 붙었다.
그 처음은 단호박 수프. 간도 적당하고, 농도도 적당한, 그래서 적당한 수프. 단호박 가격도 만만치 않을텐데 단가를 낮추려면 감사와 파로 ‘비시슈와즈’ 같은 걸 만들어 내놔도 여름에는 괜찮을 듯.
그 다음은 참치 카르파치오에 “캐비어”를 살짝 얹고 그 전체를 다시마 젤리로 감싼 것. 채썬 사과가 상큼하게 균형을 잡아주고 다시마의 그 “우마미” 가 바탕을 깔아주는 가운데 이날 먹었던 음식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이었으나 참치가 썩 좋다는 느낌은 들지 않아서 아쉬웠다. 물론 꼭 그래야 된다고 바랬던 것은 아니고…
흑마늘 국수와 검은깨 국물에 튀긴 인삼을 얹은 것. 의도와는 달리 별 느낌은 없었다.
보쌈. 잘 삶은 삼겹살만으로도 충분한데, 막걸리 셔벳이며 김치가 너무 달아서 감점. 왜 우리는 이렇게 단맛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크렙케이크. 사실은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에 거의 없는데, 불만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무난했을 듯. 이 전체를 늘어놓고 본다면 사실 무슨 생각에서 코스라고 짰는지는 알아차리기 좀 어렵다. 이런 것까지 불만이냐고 말하면 나도 맞받아치기는 귀찮다. 이 코스는 부페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이어서 차라리 부페 음식을 줄이고 이 코스에 조금 더 치중해서, 술과 맞는 음식을 내놓으면서 손님들에게 술과 음식에 대한 정보를 주는 컨셉트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또 스테이크가 있다고 해서 무제한 술에 취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골라서 먹었다. 안심과 등심, LA갈비, 바라문디 등. 잘 구워서 불만 없이 먹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먹은 디저트는, 정말 맛이나 보자는 생각에서 거의 전부를 가져다가 먹었다. 이때쯤 나는 배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정말 디저트는 관심이 있는 분야이므로 웬만하면 다 맛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 먹고 나서 안 그래도 되지 않았을까,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 건 보기에 다른 디저트들이 딱히 맛까지 다른지는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디저트가 마지막인 줄 알았더니, 일행이 그래도 꼭 먹어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크레이프를 건네주었다-_-;;;사진에서 보면 알겠지만토핑이 백만 가진데, 굳이 얹을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잘 만들면 크레이프 자체만으로도 맛있지 않나? 부쳐놓은 걸 보니 맛있어 보이던데…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런 걸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맛으로 따지면 딱히 할 말이 없지만, 할인된 가격에 계속 따라주는 술까지 생각한다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 자리였다. 그러나 궁금했던 건, 이런 정도의 음식이 W호텔이 추구하는 수준일까…하는 것. 이건 부페니까 이 정도로 하고, 다른 음식점 다른 경우라면 보다 더 질 좋은 재료로…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 음식들의 수준은 너무도 아슬아슬했다. 차라리 가짓수를 줄이고 선택할 수 있는 술(적/백/샴페인)에 맞춰 색깔이 다른 딱지를 붙여 음식과 술의 궁합에 대한 정보를 주는 브런치 같은 자리를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면 또 누군가는 ‘아니 먹고 배부르면 그만이지 거기까지 가서 머리 아프게 공부를 하라구?’라고 입에 게거품을 물으려나.
# by bluexmas | 2010/07/29 13:56 | Taste | 트랙백 | 덧글(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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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과식을 하게 되어서 좀 크고 나서부턴 꺼려지더라구요
그래도 호텔 뷔페는 어느정도 퀄리티가 있으니.. ^^
저랑 식성이 똑같으시네요.질보다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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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W는 페리에쥬에랍니다.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