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 의무처럼 느껴지는 삶
비척거리면서도 결국 오늘에서야 청소를 마무리지었다. 청소기를 돌리고, 바닥을 닦고 식기세척기도 세탁기도 돌려 그릇도 닦고 옷도 빨고 각종 발깔개류도 빨았다. 그러는 와중에 심은지 1년도 넘었으나 단 한 번도 수확할 만큼 자라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갈 수록 노랗게 시들어 가는 파슬리를 6개월 동안 참다가 숙청하고, 그 화분에 다른 비좁은 곳에 낑겨 있던 올해의 바질 하나를 옮겨 심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집은 정말 사람이 살 수 있는 다른 사람의 그것처럼 깨끗해졌다. 물론 아직 개지 않은 빨래도 산더미고 책상은 영수증 투성이다. 그러나 일단, 집이 깨끗해진데 위안을 삼았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면서 널려있던 술병들 가운데 대부분을 버렸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면서 냉동실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먹지는 않는 무엇인가를 조금 골라내서 함께 버렸다. 3일만에 대강 다 읽은 <식객>의 자리를 붙박이 장에 내면서 책을 조금 정리했다. 보지 않는 책을 골라 붙박이 장에 넣고 책장 정리도 해야 한다. 그와는 별개로, 책상에 널려 있는 많은 것들을 무지에서 사온 서랍장에 밀어 넣고 책상도 치워야 한다. 그리고 다 읽었거나 앞으로도 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처리해야 될 책들이 있는데 이건 팔기는 싫고 그냥 운송비만 부담하는 누군가에게 줘버리고 싶은데… 생각하면 끝이 없다. 입은 인중을 중심으로 왼쪽, 그러니까 3루쪽이 완전 초토화 되어서 뭔가 먹기도 어렵고 맛도 잘 모르겠다. 저녁에는 고기를 구웠으나 맛을 잘 모르고 먹었다. 맥주 생각이 나서 부랴부랴 굴러다니는 캔맥주를 냉동실에 넣었으나 이미 때는 늦은 상황이었다. 술 안 마시는 건 좋은 거니까, 라고 생각하고 터지기 전에 맥주를 다시 냉장실로 옮겼다. 먹어봐야 지금 이 상황에 딱히 나를 더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생각은 물론 들지 않았다.
너바나의 <언플러그드 라이브>와 푸 파이터스의 <스킨 앤 본즈>, 연이어 시규어 로스의 <헤이마>를 틀어놓고 길고 긴 청소를 하면서, 원래도 그렇지만 여름만 되면 더더욱 짜증으로 가득찬 민폐 캐릭터로 변신하는 내가 너무 싫어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 이대로라도 별 불만은 없으니 그저 좀 둔감하고 덜 예민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다시 태어나는 것을 믿느냐 마느냐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기는 하다. 삶의 그저 거대한 의무로 느껴지는 요즘이다. 꾸역꾸역 살아나가고 있다. 나는 쿨하고 시크하게 그냥 “지나가고” 싶지만, 그러기에 요즘 일상은 너무 덥고 끈적끈적하다. 블랙홀에 온도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생각이 든다. 물론 나 또한 쿨하고 시크한 사람이 아니기는 하다. 트위터는 나에게 김갑수를 팔로우하라고 권하고 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잘 모르고 관심도 없다. 홧김에 트위터 계정을 없애버리려다가 참았다.
# by bluexmas | 2010/08/02 02:34 | Life | 트랙백 | 덧글(8)


저도 재활용쓰레기들을 다용도실에 발디딜 틈도 없어 쟁여놓고,
‘저걸 언제 갖다버리나…?’ 볼 때마다 한숨이..
전, 다시 보지 않을 책들을 동네도서관에다 기증(?)하는데..
그것도 부지런을 떨어야할 일이라 요즘 날씨에는 좀 그러네요.
뭐든 많이 가지지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 특히, 청소할 때마다… )

동네 도서관에 기증하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요. 날 좀 선선해지면 차에 싣고 가서 그래야 되겠는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