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Bittersweet 9-초콜릿과 중용의 가능성
초콜릿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만, 솔직히 환장하지는 않는다. 가게에서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초콜릿들은 대부분 쩔거나 시큼한 뒷맛을 남긴다. 초콜릿 자체나 또는 거기에 더하는 지방이 산패되는 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게다가 초콜릿이라는 것이 결국은 입에 녹아서 퍼질때의 그 식감이나 카카오콩 특유의 향을 즐길 수 있어야 되는 것인데, 싼 것들은 단맛에 눌려 그런 미덕들을 찾아볼 수 없고 비싼 것들은 균형 같은 건 생각하지 않은 채 발로나 같이 비싼 재료들을 떡칠한 느낌을 준다. 말하자면 중용을 미덕으로 내세우는 초콜릿을 찾기는 힘들다는 의미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초콜릿에 목매달지는 않기 때문에 아직 두 가지 밖에 먹어보지 않았지만, 주차장 골목에서 합정역 가는 길 어딘가 아직도 한적한 골목(주차장에서 <토끼의 지혜>가 있는 골목으로 쭈우우욱 올라가면 왼편에 있다)에 자리잡고 있는 <Bittersweet 9>에서는 중용의 가능성을 느낄 수 있다. 원래 목표는 초콜릿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스튜디오였다고 들은 것 같은데, 솔직히 그러기에는 좁아보인다. 흰색을 주로 쓴 인테리어나 포장 디자인 등이 굉장히 세련되었다.
53%로 기억하는 초콜릿(3,000). 기껏해야 하루에 한두 쪽 먹을까말까 하기 때문에 좀 천천히 두고 먹었는데, 다 먹을때까지도 쩐맛은 느낄 수 없었다. 초콜릿의 녹는점은 섭씨 36도 이상, 그래서 그 “입에서만 녹고 손에서는 안 녹아요” 따위의 광고가 나온 것이다(사실은 특별할 것도 없는 초콜릿의 특징인데도, 그 광고는 대상 제품만이 그러한 특성을 가진 것처럼 만들었던 기억이…). 그래서 입에 넣으면 초콜릿이 녹으면서 그 지방이 혀를 코팅하고 초콜릿 맛의 매개체가 되는… 어쨌든 처음에는 수줍은, 그러니까 향이 좀 부족한 느낌이 들었는데 거의 다 먹을때쯤에는 그보다 훨씬 풍성한 향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에 비디오를 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초콜릿의 향은 굉장히 많은 종류의 성분의 화합물이라고 한다. 이 화합물들의 대부분은 온도에 민감해서 특정 온도 이상이 되면 결국 기체로 날아가게 되는데, 그렇기 때문에 초콜릿을 재료로 베이킹을 할 때(특히 브라우니 같은 경우), 바싹 굽는다고 향을 맡을 수 있을 때까지 놓아둔다면 결국 베이킹의 결과물에는 초콜릿의 향이 거의 남지 않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결론은 살짝 덜 익었다 싶을 때까지만 구우라는 것. 게다가 남는 열로도 충분히 익는다(거의 모든 음식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다).
이건 화이트 초콜릿으로 만든 “bark(6,000)”라는데, 견과류나 말린 살구와 같은 과일류를 섞은 초콜릿에 섞었다. 몇 번 언급한 것 같은데, 화이트 초콜릿은 엄밀히 말하면 초콜릿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초콜릿은 크게 상대적으로 지방 함유량이 적은 코코아 가루(혹은 덩어리 solid)와 그 반대인 코코아 버터로 이루어지는데, 화이트 초콜릿은 코코아 버터로만 이루어져 있다. 제조회사에서는 초콜릿의 맛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향을 빼버린다. 코코아 버터가 아닌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가짜 화이트 초콜릿들도 많은데, 미국에서는 코코아 버터의 비율을 정하고, 단맛을 내는 성분이 전체의 55%가 안 되는 제품만을 “화이트 초콜릿”이라고 부를 수 있도록 규제를 정했고 유럽도 같은 규제를 따른다.
어쨌든 화이트 초콜릿은 어느 면에서 재료들을 받쳐주고 맛을 전달하는, 일종의 기름진 캔버스 역할을 하는데 이 “바크”에서는 그러한 느낌이 조금 더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견과류나 말린 과일, 특히 살구의 신맛이 너무 두드러져서 화이트 초콜릿만의 느낌이 기를 펴지 못하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뚫고 나오는 신맛이 있으니 초콜릿이 조금 더 풍부해도 될 것 같다.
아직도 제품의 ‘라인업’이랄지 가게의 성격 같은 것들이 완전히 정해지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개인적으로는 작은 공방의 형태로 운영되면서 적절히 중용을 지키는 초콜릿들을 먹을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싶다. 퐁당 쇼콜라 같은, 레시피만 따라하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지극히 아마추어스러운 품목을 프로의 이름으로 내놓거나 ‘발로나=만능’으로 인식해서 떡칠한 나머지 초콜릿의 섬세함을 죽여버린 뭐 그런 것들은 사실 좀 지겹다. 배부르게 초콜릿 먹을 일은 없을테니 ‘오바’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초콜릿을 기대해본다. 일단 그 출발은 좋아보인다.
# by bluexmas | 2010/11/15 18:09 | Taste | 트랙백 | 덧글(16)
여기 블로그에서 신촌 101 소개하신 거 보고 먹으러 갔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코스 두번째 꺼 먹었는데, 주문할 땐 가격 부담을 느꼈는데, 다 먹고 나니 돈 안 아깝더라구요.
양 세프가 직접 나와서 인사도 하시는데 겸손한 태도로 정말 왕대접 해주시더라구요…
좋은 곳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엔 아랫층 캐주얼한 곳도 가보려구요.
참! 이태원 교토푸도 갔었는데, 소개해주신 가이세키 디저트는 참 좋았어요.
그런데 같이 주문한 정통 일식 맛차가 녹차더라구요.. 황당했어요. 사케는 아주 미지근하게 병채로 주더라구요…. 뜨겁게 해달라니깐…ㅠㅠ 식사도 별로였다는 코멘트 남김니당… 역시 디저트 가게는 디저트로 특화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식사, 디저트, 음료 이것 저것 잔뜩 먹어봤는데, 디저트만 좋더라구요…
여기서 소개해주시는 맛집 탐방하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제가 인생에 별다른 낙이 없어서요…ㅠㅠ
고맙습니다.
그나마 맛있는거 드시고 싶으시고 그런 게 있으면 다행이지요 뭐. 그런 것도 없으면 정말 사는 게 지리합니다..
하는 의문을 들게 만드는 포스팅이군요.
아마 내일 퇴근시 저길 들리게 될 것 같습니다.
안되!!
비공개 덧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