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 못해 보낸 이메일
안녕하세요, @@@텍 건축과 졸업생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앞으로 이런 행사 관련 메일을 받지 않았으면 해서 메일 드립니다.
저는 지금 미국에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있다고 하더라도 행사나 졸업생 모임에는
딱히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메일을 막아버리면 간단하지만, 아예 메일링 리스트와 주소록에서 제 이름을
지워주셨으면 해서 굳이 메일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한 번 이런 공지 메일을 보내시면
몇몇 생각 없는 사람들이 전체 리플라이로 답장을 보내거나, 또는 그 주소를 통한 스팸메일까지
받는 경우가 생겨서 차라리 이 편이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텍 건축과를 나온 건
저 개인을 위한 것이지, 졸업생 모임에 소속되거나 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저는 그러한 모임에 소속되는 것에 관심이 전혀 없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고 미리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박철수(가명) 드림
조금 더 좋은 간판이 될 수 있는 학교를 나왔더라면 덜 민감할 수 있을까? 딱히 따져보면 그런 문제도 아닌 것 같다. 내가 개인으로서 어떤 학교를 나왔는지와, 무리를 짓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말하자면 내가 미국의 @@@텍을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원치 않는 사람들과 얽힐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건 무리짓기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사람들 자체에 대한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거부감일 확률이 더 높다. 보다 더 정확하게 따지자면 성원 개개인보다는 끼고 싶지 않은 무리 그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다. 나는 학교에 있을때 거기에서 마주치는 사람들 대부분을 싫어했다. 어떤 사람들은 몸은 어른인데 공부라는 걸 받아들이는 자세만 놓고 보면 아직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는 느낌이었다. 영원히 졸업하지 못할 것만 같아 보였다. 솔직히 그게 나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건데 계속해서 영향력을 미치려고 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왜 박사를 하고 싶은지 정색을 하고 물어보았다. 너무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대답했다가 땅을 치고 후회했다. ‘돈이 썩어서 그냥 편하게 먹고 살려구요’ 라거나 ‘공부하느라고 힘들어서 선배님처럼 대머리 되는 거라면 하지 말죠 뭐’라고 대답했어야만 했다. 세상은 자기 허물에 둔감한 사람들이 이끌고 나간다. 허물은 누구에게나 실로 공평하게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산다.
그런 문제를 차치하고서라도, 쓸데없는 메일을 받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짜증났다. 주최하는 사람은 그냥 기계적으로 메일을 보낼 뿐이니 그렇다 쳐도, 내가 쓴 메일에서 말한 것처럼 생각없는 사람들은 전체 메일로 주최자에게 답메일을 보낸다. 그 사람이 피크닉에 가든말든, 나나 다른 60명의 회원이 굳이 알아야 될 필요는 없다. 정말 그럴 의도로 보내는 것이라면 이해해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가끔 죄를 저지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둔감하다. 그저 ‘Reply All’ 버튼을 누르고 몇 줄 찍, 써서 보내는 것 뿐이다. 지난 번에는 누군가의 계정을 통해 스팸메일도 흘러 들어왔다. 계정은 휴면된 것으로 보였다.
나는 이질감이 싫다. 나는 둔감함이 때로 죄의 레벨로 진화한다고 믿는 사람들이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예민함이 죄의 레벨로 진화하는 것에 짜증을 낸다. 어차피 세상에는 균형이라는 것이 없다. 나는 그저 조용히 빠져주겠다고 알려주었을 뿐이다. 저보다 더 예절바른 방식을 찾지 못해 낮에 좀 애를 먹었다. 물리적으로 참가가 가능한 상황이었더라도 나의 선택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는 내가 예의바른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빠져 있는 게 때로 미칠 듯이 싫을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는데 하필 저런 이메일을 받았다.
# by bluexmas | 2010/12/10 02:39 | Life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