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의 새
말하는 일을 마치고 거기에서 쌓인 걸 또 같이 일하는 분들과 말로 풀었다. 이런 즐거움, 나도 좋아한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래서 예정보다 늦게 일터에서 빠져 나왔다.
마침 해가 지고 있었다. 그 지는 햇살의 느낌은, 웃기도록 신기하게도 2월말, 아니면 3월초의 그것과 굉장히 비슷했다. 다소 쌀쌀하지만 따뜻한 날씨로 향한 희망을 품고 있는 것 같은 뭐 그런 햇살의 느낌.
웃기다고 생각했다. 고통의 한가운데에 있으면 그 고통이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착각에 빠진다. 고통보다 더 고통스러운 착각이다. 이 정도로 추운 날씨를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면, 요즘의 상황이 바로 그렇다. 추위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착각에 빠지도록 만든다. 그러한 상황에서 지는 햇살이 저런 느낌을 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처럼 느껴졌다. 사진을 찍었지만 그 불가능의 느낌이 담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사진을 찍었을 뿐이었다. 찰칵. 역시 아무런 느낌이 없다. 이는 사람의 책임이다.
햇살을 보고 희망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날씨에 봄의 희망을 품는 건 시기상조다. 묵은 희망의 가능성을 절멸 annihilate 시켜버려야 그 잿더미 위에서 절망의 새끼새가 날아오른다. 재의 새. 완전 연소된 깃털 사이로 매캐한 현실의 연기만 피어 오른다. 절망의 새에서 왜 불꽃을 바라나 당신은. 희망은 희망대로, 절망은 절망대로 다 각자 나름의 시간과 장소가 있다. 겨울은 절망의 시간과 장소이다. 그에게서 겨울을 너무 빨리 빼앗아가려 들지 마라. 때가 되면 다시 봄이, 희망의 시간과 장소가 찾아온다. 부정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희망이 있으면 당연히 절망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어차피 새는, 그리 오래 날지도 못할텐데.
# by bluexmas | 2011/01/20 00:36 | Life | 트랙백 | 덧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