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스시 -음식에는 만족, 외적인 면에는 실망
스시집 ‘시로’에서 저녁을 먹은 건 어느 금요일이었다. 물어보니 문을 연지 열흘 정도 되었다고 했다. 물론, 새로 문을 열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공사할때부터 그 앞을 뻔질나게 왔다갔다했고, 또 지금도 그러고 있으니까.
내가 알고 있는 스시집의 통상적인 인테리어와 비교해볼 때 너무 밝은 색은 아닌가 싶을 때도 있기는 하지만, 자리 잡고 있는 동네를 생각해보았을 때 무겁지 않고 산뜻한 느낌의 인테리어는 나름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보통 스시집의 ‘다찌’앞에 놓인 쇼케이스를 없애고 그 바로 밑에 수납공간을 둔 것까지 고려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넓은 공간이 아닌데 다찌에 코스 위주의 스시집으로 객단가를 높인 점 또한 높이 사줄만하다. 게다가 ‘시로’의 주인이 나는 별 관심 없지만 사람들에게는 인기가 많은 모양인 골목 위쪽의 이자카야 ‘겐지’의 주인이라고 하니, 앞으로 거둘 성과는 내가 알바 아니지만 나름 좋은 아이디어로 장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은 2만원대 코스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저녁은 3,4,5만원대 코스가 있다. 나는 4만원짜리를 주문했다. 사시미가 조금 나오고 스시가 나온다고 했다. 먹은 생선의 사진을 하나하나 다 찍기는 했지만, 여기에 줄줄이 올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불에 익히지 않은 생선의 사진을 하나하나 올려가면서 맛에 대해 자세히 묘사하려는 건 사실 별 의미 없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물론 맛의 차이는 있다. 흰 살, 붉은 살 생선의 맛이 다른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누굴 바보로 아냐? 라는 원성이 들리는 듯 하다-_-), 어종별로 그 미묘한 맛도 당연히 다르다. 그러나 귀찮기도 하고, 또한 노력에 비해 남는 것도 없다. 그래서 ‘이노시시’와 같은 집에 가서 음식을 먹어도 글을 올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 날 생선을 먹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아주 간단한 작업이다. 날 생선을 먹는 데에는 어중간한 상태가 없다. 먹을 수 있으면 먹을 수 있고, 먹을 수 없으면 없다. ‘별로 먹을 만하지 않았는데 그냥 먹었다’라는 상황은 다른 사람에게는 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없다. 맛을 너무 잘 알아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그런 건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는 날 생선을 그렇게 자주 먹는 편도 아니다. 같은 생선의 같은 부위를 미친 듯이 쌓아놓고 먹는 걸 무의미하다고도 생각한다. 생선이 맛있으면 생선만 먹어도 되는데, 사실 쌈장에 야채를 엄청나게 곁들여 먹는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본적으로 불에 익히지 않은 고기는 그 신선한 맛, 식감 등의 장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질리지 않고 많이 먹을 수 있는 단백질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야채나 양념 등으로 단백질의 고유한 성질을 가려서 먹는 것이 우리가 회를 먹는 문화, 아니 습관이다. 재료보다 양념을 앞세우는 우리 식습관이 회를 먹을 때에도 어김없이 작용한다. 언젠가 다큐멘터리 <3일>에 ‘고메 2010’인가 하는 행사를 하면서 상훈 드장브르라는, 한국계 벨기에인 요리사의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기억이 난다. 한 무리의 잘 나간다는 요리사들을 아침 수산 시장에 데려가서는 회를 먹이는데, 회를 사면 공짜로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 그 글루타민산 나트륨이 들어간 고추장을 찍- 짜서는 회에 같이 먹으라고 주더라. 내심 아주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음식의 우수성을 알리자고 나름 잘 나간다는 요리사들을 불러서는 그 따위 음식으로 대접하는 상황이…
맨 처음의 샐러드부터 마지막의 오차즈케까지, 저녁은 전반적으로 무리가 없었다. 일단 가장 중요한 생선은 가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다만, 구색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등장한다고 생각하는 익힌 새우는 아무런 맛도 없어서 그냥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으며, 어느 시점에 이르러 다시마맛이 밴 간장으로 생선에 계속 마무리를 한 스시가 나오는데, 그 간장의 두드러지는 맛 때문에 섬세한 생선의 맛이 천편일률적으로 느껴질 것 같은 위기의식을 품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들보다 가장 두드러졌던 건 밥, 즉 ‘샤리’의 들쭉날쭉함이었다. 그 단단함이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 그런 건 사실 잘 모르는데, 일단 온도의 들쭉날쭉함이 두드러졌다. 언급한 것처럼 어느 정도로 단단하게 뭉쳐져야 되는 것인지도 잘 모르지만 밥이 흩어지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스시 외의 음식도 딱히 떨어진다고 생각되는 건 없었다. 다만, 두부에 연어알과 랜치 드레싱이 곁들여 나오는데, 이 랜치 드레싱은 없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기성품이라면 이런 종류의 음식에는 자리를 함께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막판의 튀김도 구색을 맞춘다는 의미에서 괜찮았지만 야채가 살짝 덜 익었다는 느낌을 받았다(단호박은 설컹거리는 편이었고 고추 역시 살짝 덜 익었다). 직접 만들었다는 치즈케이크가 후식으로 나오는데, 딱히 만들기 어려운 건 아니지만 싸구려 매실차 따위에 진력난 터라 그 아이디어만으로도 높이 사줄만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맛도 훌륭했다.
그래서 전체적인 인상은 가격에 상관없이 괜찮은 음식이었다. 소위 말하는 가격대 성능비가 중요는 하겠지만 ‘여기에서는 4만 원대지만 강남 쪽으로 가면 X만원’이라는 식의 논리를 내세워 가게의 장점인 것처럼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위에서도 말한 것처럼 어차피 중간은 없는 게 날 생선의 숙명임을 고려한다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해도 그게 100%의 장점으로 작용할 수는 없는 태생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잘 먹어서 다음에도 가야 되겠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그러한 생각이 흔들리게 만든 상황을 겪게 되었다. 말한 것처럼 나는 이 동네에 굉장히 자주 가는데, 여기 조리사들이 손에는 재료를, 입에는 담배를 물고 삼삼오오 근처를 오가는 모습을 보았다. 물론 재료 없이 열심히 보행흡연을 하는 광경도 보았다. 조리사의 흡연 문제는 예민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원칙만을 내세우자면, 개인적으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도 사람이니까, 또 조리가 엄청나게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므로 그걸 강압적으로 통제하면서까지 음식을 만들라고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손님들이 얼굴을 기억할 것이 뻔한 스시집에서 일하면서 가게 근처에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다니는 건 가게의 이미지를 생각해보았을 때 현명한 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내놓는 음식이 손님 앞에서 바로 손으로 만들어 주는 스시라는 음식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사장님이 직접 장봐오는 좋은 재료도 좋지만 이러한 점들을 좀 고려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이유로 잘 먹어서 기분 좋았지만, 나중에 실망하게 되었다.
참, 노파심에서 덧붙이는데 ‘와 그런 집이 있다니 안 가겠습니다’라는 종류의 덧글은 사양한다. 가라, 가지마라 쓴 글도 아니고 거기에 하나하나 대꾸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떡밥 제공하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장담하건데 담배 안 피우는 손으로 만드는 음식을 먹기란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도 더 힘들 것이다. 이보다 덜 비싼 집이라면 더할 것이라는데 500원 걸겠다. 이건 특정 업소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이다. 하긴 뭐, 외국의 경우도 잘 나가는 셰프들이 담배 피우는 경우도 있기는 하더라.
# by bluexmas | 2011/02/02 10:55 | Taste | 트랙백 | 덧글(8)
그럴거면 그냥 회처럼 나온 곤약을 발라 먹는 게 나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