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사람

각각의 사람들에게 맞는 이야기 꾸러미를 가지고 있다. 큰 줄기를 이루는 이야기는 거의 같다. 다만 세부사항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하는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달라지지 않는 게 아니라 달라질 수가 없다. 거의 아니면 절대 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고, 주변 정황을 제대로 설명해야 되는데 그러기에 너무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서 꺼낼 수 없는 이야기도 있으며 또 결국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들도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입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담아놓고 시작해서, 이래저래 솎아내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어진다. 결국 그렇고 그런 이야기 꾸러미를 들고 나간다. 그리고 그런 꾸러미에 들어있는 이야기들을 꺼내놓기 시작하면, 나는 곧 그 모두가 내 것이지만 또한 내 것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이야기라는 걸 알아차린다. 결국은 그런 이야기들 밖에 할 수가 없다. 그 모든 시간과 공간에 걸친 이야기 속에 나는 있는 듯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모르고, 누군가는 알지만 모른척 할 것이다. 의도적으로 감추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말을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만나지만 잔뜩 조심해서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만 하고, 또 다른 사람하고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결국 듣게만 되며, 누군가는 만나고 싶지만 시간이 없으며 아예 사라져버려 결국은 아무런 이야기도 할 수가 없어져버린 사람도 있다. 나의 대나무밭은 결국 횡포에 못 이겨 다른 차원으로 이동해버렸다. 대나무는 사람들의 선입견이나 기대만큼 그렇게 쑥쑥 자라지 않는다. 기나긴 침묵의 봄이 시작되었다.

 by bluexmas | 2011/03/17 02:53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