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맞게 기억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하여간, 군대에서 2인 1조로 경계 근무를 나갈때 선임병을 ‘공병’, 후임병을 ‘입초’라고 불렀다. 흔히들 말하는 꼬인 군번이라서 상병을 달고도 입초노릇을 꽤 했는데, 공병이 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생일에는 모든 근무를 하루 열외시켜 쉰다는 사단장 지침 같은 것이 내려왔다. 이 규정이, 특히 군대에서는 참 좋은 규정이기는 한데, 현실적으로는 문제가 있다. 인력이 빠듯하기 때문에 누군가 열외되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메꿔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남의 고생을 대가로 휴식을 취하고, 자신도 또 언젠가는 누군가의 휴식을 위해 고생을 해야만 한다. 아, 그렇게 따지면 공평한 건가 결국에는.
약 20분 전쯤 갑자가 세 번째 돌아오는 생일을 맞았다. 혹시 회사라도 다녔으면 하루 배째라, 라는 심정으로 다른 사람들 일하는데 묻어 슬쩍 농땡이를 부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혼자 다 해야만 하는 자영업자는 그럴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서 빈둥거리며 온갖 불량 탄수화물을 섭취하며 보내고 싶다. 그러나 이런저런 생각을 막을 수가 없다. 아무 것도 허락되지 않는다면 온갖 쓰레기 음식을 먹어도 단 1g도 찌지 않는다는 소원 같은 것 쯤 들어주면 어떨까. 그것도 아니면 5년전쯤 가장 몸이 가벼웠던 시절의 몸무게로 단 하루만 돌아간다던가…
작년에는 무모하게도 덧글 100개 유치에 도전했다가 결국 블로그를 일주일인가 쉬어야만 하는 불상사까지 맞이했다. 올해는 작년보다 사정이 낫지만 그래도 재도전은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주인인 내가 봐도 이 블로그는 좀 웃기는 곳이다. 존재를 드러내는 사람보다 그러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 물론 한 편으로는 누가 오는지 모르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의식하지 시작하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알고 의식하는 것보다 모르고 의식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23시간 30분 정도 남았는데, 뭘 해야할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했다. 미역국 같은 건 끓이지 않았고 내일도 끓일 생각이 없다. 사실은 멸치도 없이 말린 새우로 억지 된장찌개를 끓였는데, 다 끓여 한 술 뜨고 나서야 차라리 미역국을 끓일 걸 그랬나, 라고 잠깐 생각은 했다. 대신 해조류 핀치히터 격으로 다시마를 넣었다. 유격수가 필요한 자리에 2루수를 넣은 격이랄까.
의식하지 않고 지나 보내는 생일이 가장 좋은데 그건 사실 굉장히 어렵다. 물론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저 생일이기 때문이다. 기대가 있고, 그러므로 당연히 실망도 있다. 나는 삶을 좋아하고, 온갖 사건사고들에도 불구하고 내 삶 또한 그럭저럭 좋아하지만(아니면 그래보려고 애쓰지만-) 생일이면 조건반사처럼 착잡해지는 건 막을 수가 없다. 몇몇 멍청하게 보낸 생일까지 떠오르기 시작하면 정신이 없어진다. 오늘 하루는 또 어떤 날이 될까. 그러고 보면 한 해는 당일 포함 생일이 언제임을 의식하는 기간과 그렇지 않는 기간으로 나뉘는 것 같다.
그래도 올해 생일에는 이 말이라도 한 마디 해보자: 엄마 고마워요 낳아줘서^^
# by bluexmas | 2011/03/29 00:31 | Life | 트랙백 | 핑백(1) | 덧글(49)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1/12/31 17:45
… 다면 17권까지 낼 수 있겠네요. bluexmas님은 올 한해 이글루스에서 994번째로 게시물을 가장 많이 작성하셨네요. 1위: 잡담(284회) | 생일 2위: 디저트(53회) | <무궁화>의 조악함, 패션 파이브 케이크 3위: 홈베이킹(35회) | 완벽한 초콜릿칩 쿠키를 찾아서 4 … more


이런 날엔 평소에 도전하지 않던 음식을 즐기던가, (평소엔 사지않던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에 진한 커피를 넣던가) 가벼운 놀이를 해보는 것도 괜찮지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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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기대와 실망의 연속인 것 같아요.
일단, 맛난 걸 드시길. 평소에도 그러신 거 같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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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삼월 말은 봄이라는 느낌인데 요즘은 겨울이네요. -_-
아무래도 신진대사 순환이 안 되고 자꾸 움츠리게 되는 겨울보다는
그래도 봄과 여름이 – 똑같이 운동해도 – 몸이 조금 더 가벼운 것 같아요.
그 생각을 하면 봄이라고 딱히 반갑지 않다가도 앞으로 좀 기분이 나아지겠지 싶다니까요.
꼭 그것만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앞으로 마음 가볍고 발랄한 일들 많으시길.
축하합니다. ^^



이 세상 모든 행복을 몽땅 블루마스님께..(오늘만은요ㅋ)
빨리 어머니께 전화해서..
‘엄마 고마워요 낳아줘서^^’ 하세욧!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래요~!



요새 많이 바쁘신것같아요.
생일 축하드려요! 좋은 하루 되시길. 😀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는 그런 혜택이 생일엔 당연히 오는 시대ㄱ.. 아니 기술이 오길 같이 기원합니다.ㅋ..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