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그림자

강을 건널때는 그 전에 가급적 많은 것들을 떨궈버리는 게 좋다. 한편에서 얻은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반대편으로 가져가지 말아야 한다. 그게 강에 대한 예의다. 뭐 그렇다고 해서 하나도 남김없이 툭툭 털어버려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차피 그건 불가능하다.

그러한 마음으로 건널목을 건너면서 눈에 들어온 421번을 바로 타고 강을 건넜다. 이태원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냥 들어가기에는 억울한 날씨였다. 뭐 이것도 내가 생각하는 100%의, 온갖 시름이라도 덜어버릴 기세로 좋은 날씨는 아니지만(그런 날씨에 대한 갈망은 바다를 건널 때 떨궈버리고 왔다. 그렇다, 바다를 건널 때에는 강을 건널 때보다 훨신 더 떨궈야 할 것이 많…)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는 맥락에서는 훌륭했다. 카페에는 사람이 많았다. 커피머그는 좀 두껍고 무겁다는 것만 빼놓고는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해가 그래서인지 그림자가 참으로 길었다. 커피보다 커피의 그림자가 더 맛있는 날이 종종 있다. 물론 그것도 경우마다 다르다. 1. 커피가 정말 맛없거나, 2. 커피가 맛있는데 해가 그것보다 더 훌륭하거나, 3. (                                                                   ). 이 가운데 오늘은  (        ). <— 내일까지 생각을 좀 더 해봐야 되겠다. 정확히 무엇이었는지.

그냥 남산터널을 지나 그냥 쭉 걸어, 첫 번째 들렀던 백화점 식품 매장에서는 콩통조림과 쓸데없는 과자 나부랭이를 두 번째 백화점 매장에서는 레몬 두 개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자투리 참칫살을 사들고 들어왔다. 기온 때문인지 딱히 익힌 것을 먹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원래는 개시했다면 중국냉면을 먹으려 했는데, 아예 문을 닫아버려서 확인조차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날것 또한 먹고 싶지 않아서 지글지글 끓는 파기름을 만들어 생선살에 부어 덮밥을 만들어 먹었다. 내일 하루는 좀 쉬어볼까 한다. 무서운 6월이 다가오고 있다. 무서운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그래, 나는 지금 떨고 있다.

 by bluexmas | 2011/05/23 00:25 | Lif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번사이드 at 2011/05/23 00:46 

‘개화’는 일요일엔 어지간하면 닫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5/25 09:58

^^ 월요일에 갔더니 아직 냉면 안 한다네요. 언제 시작할지 안 정했다고 합니다. 아마 다음달…이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Commented by 파고듦 at 2011/05/23 20:17 

여름 좋아요 난 여름이 좋아. 겨울은 싫어요 허리가 아프거든요 하도 떠느라

 Commented by bluexmas at 2011/05/25 09:58

옷을 많이 입으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