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부티크 블루밍-(파인?)다이닝의 놀이터
가고 싶지 않은데 꼭 한 번은 가봐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가는 곳도 있다. 물론 그런 경우에 딱히 기대는 하지 않고 간다. 정황으로 보아 차 한 잔 이상의 관계로 발전할 수 없는 만남의 자리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가야만 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그냥 서로 좋은 인상이나 남기고 오자며 최대한 예의바르게 행동하며 딱 커피 한 잔만 마시겠노라 마음 먹는다. 근데 가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벌써 치고 빠진 것으로 알고 있는 <부티크 블루밍>에 어떤 기대를 품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냥 궁금했다. 가격도 그런 레스토랑들 치고는 감히 ‘저렴’하다고 말할 수 있는 6만원(+10%). 때는 겨울이었다.
먹고 난 뒤에는, 다른 레스토랑에 대한 글들처럼 사진도 많이 올리고 음식 하나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돈 썼으면 됐지, 그런 노력까지 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맨 위의 사진은 오리 가슴살 구이다. 오리가슴살이나 닭 허벅지, 아니면 연어와 같은 재료는 껍질과 살 사이에 지방이 모여있다. 그래서 뜨겁게 달군 팬에 껍질 부분을 먼저 지져 그 기름을 빼내고 껍질을 바삭바삭하게 만드는 것이 기본 조리법이다. 그렇게 조리하지 않으려면 껍질을 남길 필요가 없다. 바삭거리지 않으면 느끼하기 때문이다. 구색을 맞추는 차원인지 모르겠지만 오리가슴살 구이는 꽤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는데, 레스쁘아에서 그렇게 조리한 것을 먹었다. 다른 곳에서는 기억이 희미하다. 심지어 사진으로 본 다른 레스토랑의 것들도 별로 그렇지 않았다. 이 오리 가슴살도 마찬가지였다. 그 껍질의 느글거림에, 사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체리와 같은 단맛 두드러지는 과일을 더하니 부담스러웠다. 익힌 상태? 통과… 단맛이 두드러지는 건 비단 오리가슴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전반적으로 음식에 단맛이 두드러졌고, 굉장히 거슬렸다.
뭐 다른 것들이야 다 그런가보다 할 수 있었지만(아니 솔직히 말하면 할 수 없었다-_-), 디저트에 나온 딸기는 가관이었다. 이 분홍색의 쭈글거리는 자태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냉동딸기를 해동시키면 이렇게 된다. 나도 딸기 타르트를 만들어 얼려두었다가 먹은 적이 있는데, 냉동실에서는 멀쩡하던 딸기가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사뭇 놀란 적이 있다. 어떤 구색을 맞추고 싶은 의도인지는 모르겠는데, 딸기를 굳이 낼 필요도 먹을 필요도 없다. 스스로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런 딸기를 낼 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참으로 허탈했다.
여기까지만 쓰겠다. 그 밖에도 올리브기름이 접시 바닥에 흥건한 파스타랄지 여러가지가 있지만 쓰기도 귀찮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자꾸만 생산해내는 것도 싫다. 결론을 말하자면, 부티크 블루밍은 (파인)다이닝의 ‘놀이터’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풀코스로 나오는 음식을 먹으면서 거기에 맞는 예절 또는 인내심도 함께 배울 사람에게 좋은 장소가 될 것이다. 일종의 <서양 음식 문화 교육 첫걸음> 교육장이랄까? 음식에 관심이 있는 자제분들에게 포크는 이쪽, 나이프는 저쪽 손에 드는 등의 기본 교육을 하고 싶은 부모님이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다만, 딱 그 목적만 가지고 갔을때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음식은… 내가 굳이 ‘파인’ 앞에 괄호와 물음표를 쓴 건, 먹어보니 ‘파인 fine’이라는 형용사를 계속 붙이기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돈이 아까웠다’라는 말은 음식점이 아니라 돈을 쓴 나 자신을 위해서 차마 쓰지 못하겠다.
# by bluexmas | 2011/05/24 09:45 | Taste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