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동] 치카리셔스-뉴욕? 뉴욕?
처음 <치카리셔스>라는 디저트 카페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더군다가 거기에서 파는게 컵케이크라는 이야기까지 들었을때까지도 나는 2005년에 가보았던 바로 그 디저트 바와는 상관이 없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정식으로 들려온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듣고 나니, 그 컵케이크라도 한 번 들러 먹어보고 싶어졌다.
2005년이면 벌써 오래전이니 그동안 변화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어제 먹고 나서 트위터에 분노를 잠시 쏟아낸 후 가라앉히고 인터넷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때 내가 플레이팅 디저트를 먹은 곳은 디저트 ‘바’고, 조각 케이크나 컵케이크, 마카롱 등의 보다 더 간단한 디저트를 파는 ‘클럽’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홈페이지가 있으나 연락처와 위치를 알리는 페이지 하나만 덩그러니 있어 옐프에서 사진을 참조했다). 늦게 갔더니 컵케이크만 남았다고 해서 맛을 보기 위해 작은 것 세 종류(마이어 레몬, 레드 벨벳, 트리플초콜릿, 개당 1,500원; 큰 것 3,800원)와 커피를 시켰다.
세 종류 모두 아이싱 또는 프로스팅은 살짝 묽은 듯도 싶지만, 냉장고에서 초처럼 굳은 자칭 버터크림이나 크림치즈로 만든 것보다 훨씬 나았으며 신맛과 단맛도 우리나라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것들보다 훨씬 더 두드러져 훌륭했다. 하지만 그 아래의 케이크는 세 종류 모두 다소 질기고 꽤 끈적거려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쉬폰 케이크 등을 구우면 종종 지나치게 끈적거리는 경우를 경험한지라 이런 상태가 익숙하고, 또한 (너무나 당연하지만) 원인이 설탕이라는 것은 알겠으되 보다 더 정확하게는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보관을 잘못했거나 완전히 식히지 않았을 경우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한편 내가 집에서 쓰는 것보다 조금 더 넓은 우녹스(Unox) 오븐을 보았는데 만약 그걸로 컵케이크를 굽는다면 결과물이 원하는 만큼 나올지 그것도 알 수 없었다. 보통 저 회사의 오븐은 컨벡션을 끌 수 없도록 설정이 되어 있는데, 팬을 돌려 내부의 더운 공기를 순환시키는 강제로 순환시키는 컨벡션 오븐의 경우 케이크가 보다 더 건조하게 나온다는 실험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공간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주방 모서리 한쪽으로 바가 달려 있길래 물어보니, 플레이팅 디저트를 하고는 싶지만 손님이 많이 오지 않을까봐서 안한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부에 앉아서 먹을만한 자리가 충분하게 있느냐면 그것도 아니니 이래저래 좀 어중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렀을때 30대로 보이는 여자 4인이 각각 커피와 컵케이크 한 개 정도를 놓고 수다를 떨고 있던데 그래봐야 객단가는 8,000원이고 회전이 빨리 안 될 가능성이 더 높다. 가격대가 높지만 플레이팅 디저트도 잘 한다면 충분히 살아 남을 수 있다. 압구정동의 <디저트리>도 그렇고 <비 스위트 온>은 4년째 롱런중이다. 물론 컵케이크를 파는것 자체가 잘못된 결정은 아니다. 이상하게 유행을 타서 요즘은 오히려 찾기가 쉽지 않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컵케이크도 케이크의 일종이니 유행을 탈 이유가 전혀 없다. 컵케이크가 넘쳐날때도 잘 만든 컵케이크는 없었고 요즘은 더 찾아보기 힘들다(부러 컵케이크 만들도 오레오나 마카롱 같은 것 좀 얹지 말자). 하지만 내가 호기심에 일부러 들러보았듯, ‘바’와 ‘클럽’이 따로 있다고 해도 <치카리셔스>의 이름을 가져왔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컵케이크보다는 그곳의 이름을 널리 알린 플레이팅 디저트를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플레이팅 디저트가 팔릴 것 같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면 가져온 이름이 무색하지 않도록 컵케이크를 아주 잘 만들어야 될텐데 그 정도에 이르는 수준은 아니었고, 따라서 먹지 않았지만 플레이팅 디저트를 시도 안하는 이유가 수요에 대한 두려움인지 그 외-굳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될 듯?-의 것인지 예측 및 분간하기 어려워진다. 그리고 거기에 아무 맛도 없는 커피 또한 한몫 거들었다.
나도 근 10년 가까이 남의 나라에서 살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보낸 시간이 아니다. 무엇을 얻어올 수 있는가다. 이름값이며 이미지는 머무는 것만으로도 따올 수 있지만 진짜 장점은 그게 무엇이든 본인이 캐내야 한다. 외국물 안 먹은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들 나갔다 오고, 음식쪽만 놓고 보아도 무슨 학교를 나오고 어느 도시에 있었고 누구 밑에서 일했다고 스스로 딱지를 붙이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가지만 정작 맛을 보면 주로 위기를 취하고 승부수를 띄움으로써 얻는 성공의 비결 보다는 그 ‘이미지+안전빵’인 경우를 너무 많이 본다. 토마스 켈러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왔다던데 몇 수십권의 책이며 인터넷 기사에서 말해주는 완벽 추구는 찾아볼 수 없다. 아니, 잠두의 속껍질을 굳이 어렵게 데치기 전에 까도록 시킨다는 그 완벽주의의 30%만 따라해도 그런 음식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 제 1의 미식도시라는 뉴욕에서 머물고 온갖 것을 먹고 다녔다고 SNS에 사진을 올리는데 내놓는 것의 수준은 그냥 서울에도 맞추기 급급하다. 그러니 이젠 어디에서 뭘하고 왔다고 해도 절대 믿을 수가 없다. 접시에 담긴 음식이 말과는 언제나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뭘 모르는지 모르고, 찾아 애써 캐내지 않고 그냥 길바닥에 널린 걸 주워놓고는 배웠다고 말한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어서 미친듯이 경쟁한다고 말하는데, 음식은 적당히 만든 걸로 차고 넘친다.
상수동, 치카리셔스, 디저트, 디저트카페, 컵케이크, 커피
# by bluexmas | 2013/02/16 15:53 | Taste | 트랙백 | 핑백(1) | 덧글(14)
Linked at The Note of Thir.. at 2014/01/24 15:46
… 수 있다는 것을 알까? 초콜릿은? 딸기는? 모르면 모르는 만큼만 볼 수 밖에 없다. 하여간 나는 의도가 궁금하다. 이것은 그저 안전한 선택인가. <치카리셔스>의 경우처럼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데 정말 “대중”을 위해서 이쯤에서 자제하는 것일까. 물론 음식은 나에게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 … more


뉴욕에서 온…내용과 연관성없는 간판을 내거는 곳들이 정말 뉴욕을 다녀온 사람들보다는 뉴욕을 동경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유사 고급 이미지를 내세우는 게 아닌가 싶네요.



호기심을 못 이기고 메뉴를 찾아보니 http://www.chikalicious.com/menu.htm 컵케이크가 없는데요. 워낙 기본메뉴라 메뉴에 없이 팔 수도 있으려나요.



http://www.dessertclubnyc.com/index2.php#/multi-text_3/1/
한국의 가게가 일단 컵케이크로 시작해서 케익이나 다른 디저트 메뉴로 확장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네요. 유별난 메뉴가 많아서 처음부터 다 취급하기엔 재료수급이나 품질관리가 현실적으로 어려울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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