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에게 예의없는

1.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전화기를 켰다. 처음인 잡지사에서 일주일 전에, 도착 사나흘쯤 전 지방의 안면 있는 “실무자”가 보낸 메시지가 들어왔다. 연유는 모르나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전자는 당장 연락했더니 고료가 나오지 않는, 뭔가를 추천해달라는 청탁이었다. 돈 안 나오는 일은 하지 않는데 본의 아니게 1주일 동안 답신을 안한 셈이 되어 미안한 마음에 금, 토요일에 걸쳐 자료를 주었다.

2. 후자는 다음날 오전 문자를 보냈다. 만나는 건 문제 없으나 당분간 내가 내려갈 상황이 못 되므로 올라오실 수 있는 여건이냐고 물었다. 답이 없었다.

3. 그래서 닷새쯤 뒤, 어제 다시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답이 왔는데, 어차피 서울에 올 일이 있으니 괜찮으면 오늘이라도 만나자는 이야기를 했다. 나도 나갈 일이 있었으므로 만나기로 했는데, 생각해보니 동선과 시간이 잘 맞지 않아 30분쯤 뒤 시간과 장소를 조정했다. 시간은 모르겠지만, 동선은 만날 사람이 내가 예상한 대로 움직인다면 보다 더 편하리라는 계산도 해서 바꾼 것이었다.

4. 점심에 다른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데 전화가 왔다. 약속을 두 시간 반 조금 못 되게 남긴 시각이었는데, “일정”이 바빠 나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5. 내가 만나자고 한 것 아니고, 그 이유도 모른다.

6. 나에게는 예의 차릴 필요없다. 그냥 보잘것 없는 인간 가운데 하나인데 예의 지켜서 뭐하나. 하지만 예의에게도 예의없으면 곤란하다. 예의를 차려줄만한 요소를 갖춰서 차려주는게 아니다. 사람이니까 차려주는거다. 그런데 왜 착각하나.

 by bluexmas | 2013/11/22 00:44 |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