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과 ‘판타스틱 4’-작금의 미국 꼬라지에 비추어 보면

슈퍼맨 (2025):가디언즈 오브 더 슈퍼맨둘 다 궁금했다. 슈퍼맨은 바로 움직여져 금방 보았는데 판타스틱 4는 이상하게 내키지 않아 내리기 직전에 간신히 보았다. 둘 다 그럭저럭 재미있게 보았는데 80점까지는 안되고 78점 정도는 줄 수 있다. 점수는 똑같이 줄 수 있는데 우열을 가리자면 둘 중 더 판타스틱 4가 더 잘 만든 영화다.

슈퍼맨은 사실 첫 영화판-2편까지만-의 영광이랄까 그런 게 걸려 있어 새로운 시도는 무조건 욕을 먹을 수 있다. 주연인 크리스토퍼 리브스의 이미지가 워낙 찰떡인 가운데 비극적인 사고 탓에 목 아래로 마비되는 안타까운 사연이 얽혀 시쳇말로 ‘영구까방권’을 얻어 그렇다. 물론 비극이 없었더라도 그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슈퍼맨을 만들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 여기에 1970년대 말이니까 미소 냉전체제의 현실까지 양념으로 끼얹어 강화시킨 선악구도나 권선징악의 감칠맛 또한 요즘에는 재현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타는 치는 제임스 건이 각본도 쓰고 연출도 했기 때문에 나름 볼만하지 않을까 믿었는데… 곱씹으면 곱씹을 수록 딱 그냥 볼만했다는 생각이 굳어진다. 하나하나 지적하기는 지루하고 뭉뚱그려서 말하자면 제임스건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2014)’ 이후 좋게 말하면 밀도가 높고 나쁘게 말하면 물량공세로 감각을 마비시키는 방식으로 영화의 완성도가 높아 보이는 착시 현상을 꾸준히 활용했다.

등장인물들을 많이 깔고 이들을 활용해 초점을 빠르게 이동하는데 연결이 꽤 매끄러워 밀도가 높아 보이는 착시 현상을 느낀다는 말이다. 이게 잘 먹히면 ‘가오갤 1’이나 ‘수어사이드 스쿼드’ 처럼 제법 볼만해지고 아니면 가오갤 2, 3처럼 재미가 없지는 않은데 딱히 재미있지도 않은 영화가 되어 버린다. 그리고 슈퍼맨은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데, 이건 연출보다 배우들의 문제라 보았다. 슈퍼맨역의 데이비드 코런스웨트는 나쁘지 않은, 브랜든 라우스나 헨리 카빌보다 분명 나은 선택이라 믿지만 나머지 배우들은 ‘미스터 테리픽’의 에디 가테지를 빼고는 뻣뻣해 보였다. 사실 나는 네이선 필리온의 팬이라 그가 연기하는 그린랜턴(가이 가드너)가 매우 궁금했는데 그저 그랬다. 향후 제임스 건은 이 매너리즘 극복에 초점을 좀 맞춰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제임스 건이 추구하고자 하는 전반적인 톤을 감안하면 DC의 미래가 엄청나게 어둡지는 않을 것 같다. 마블이 잘 되면서 마음이 급해진 탓에 DC가 워낙 개똥같은 영화를 많이 내놓기는 했지만 그걸 다 빼고도 칙칙하고 무거운 슈퍼맨과 저스티스리그에 이미 물렸던지라 차라리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그런 차원에서 2025년의 슈퍼맨은 1978년작과 통하는 구석이 있다. 물론 앞서 말했듯 냉전 양념의 느끼함을 좀 걷어내야 하겠지만 낙권적이고 나름 우직하고 또 인간적이고 뭐 그런 미국과 미국인의 상을 보여주려는 시도가 그렇다.

The official movie poster for Marvel Studios' The Fantastic Four: First Steps

한편 판타스틱 4는 세 번째 시도니까 이제 좀 제대로 나올 때도 되었다. 첫 번째 영화판에는 제시카 알바와 한없는 가벼움만이 남았고 두 번째 영화판은 조쉬 트랭크가 입신작 ‘크로니클’의 재탕에 판타스틱 4의 스킨을 씌워서 저스티스리그 같이 칙칙해지면서 정반대로 가버렸다. 그런 가운데 이번 세 번째는 IP 자체의 능욕의 흑역사 뿐만 아니라 MCU의 슬럼프 또한 타개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는데… 그럭저럭 해냈다.

비결은 계속 생각하고 있는데 잘 다진 캐릭터들 같다. 사실 이 영화에는 등장인물이 몇 나오지 않는다. 정말 판타스틱 4 네 명에 실버 서퍼가 좀 나오고 갈락투스도 양념이다. 잘 보면 액션도 엄청나게 나오거나 또 화려하지 않다. 그런데 캐릭터들이 잘 쓰였고 나름의 깊이가 있으며 연기를 잘했다. 나는 굳이 영어를 쓰자면(마땅히 대응하는 한국어가 생각이 안 난다;;;) vulnerability와 sense of urgency를 깊은 곳에 숨기고 있는 등장인물들을 대체로 좋아하는데 네 명의 멤버, 심지어 실버 서퍼마저 모두 이런 면을 가지도록 설정이 되어 있었고 또 잘 소화를 했다. 콧수염과 나이 탓에 미스캐스팅이라 욕을 먹은 페드로 파스칼의 연기가 특히 좋았고 다음으로는 자니 스톰의 조셉 퀸이 훌륭했다. 2005년 작(속편은 2007년)의 어린 크리스 에반스가 그랬듯 기본적으로 치기 어린 캐릭터인데 이를 살살 달래서 나름의 깊이를 불어 넣었고 배우가 잘 살려냈다. 나머지 둘(바네사 커비와 에본 모스바카라크) 가운데는 전자를 좀 우려했는데 그건 솔직히 제시카 알바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박혀 있어서 그런 것일 뿐 좋았다.

한편 궁금했던 레트로퓨처풍의 설정은 생각보다 매력이 없었다. 오히려 약간 더 진지하게 보일 필요가 있는 판타스틱 4의 존재감이나 각 배우들의 연기에 물을 타는 느낌이었달까? 그냥 시각적인 설정 자체로는 나름 좀 분위기 전환이 되는 면이 있지만 큰 그림을 보면 그렇게 느꼈다는 말이다. 하여간 ‘인피니티 사가’ 이후로 ‘완다 비전’ 같은 명작들을 빼놓고는 거의 모든 영화를 ‘숙제+큰 그림을 위한 퍼즐 조각’으로 만들어 말아먹은 마블이 오랜만에 제정신으로 만든 영화다. 제발 좀 드라마든 영화든 자주 좀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분간 느린 호흡으로, 개별 영화를 재미있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가자. ‘이터널스’, ‘더 마블스, ‘앤트맨과 와스크 퀀텀매니아’를 생각하면 얼굴이 시뻘개진다.

이 두 영화를 굳이 묶어 글을 쓴 이유는, 둘 다 오락 영화로서 나쁘지 않고 평타에서 그 조금 이상을 칠 정도로는 만들었는데 작금의 미국 꼬라지 때문에 의도와 다르게 보이고 흥행도 썩 좋을 것 같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슈퍼맨이야 뭐 애초에 존재감 자체가 원하지 않아도 미국미국이라 그렇고, 판타스틱 4는 멀티버스, 지구828의 레트로퓨처 설정이 어떻게 보면 미국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1960년대다 보니 원하지 않아도 둘이 함께 묶여 프로파간다처럼 보일 여지가 있다. 미국이 하도 저지랄을 해대고 있으니 꼴보기 싫게 보일 여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두 영화 모두 그런 의도로 만든 건 아닐 텐데… 하지만 다 미국의 잘못이다. 세계2차대전에서 40만 이상 희생시키면서 끌어올린 국운이 대략 80년 만에 다한 것 같다. 부자 망해도 삼 년 간다니 조금 더 지랄은 떨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