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의 시간 (미국의 생우유 논란)

트위터에서 미국의 생우유 논란 이야기가 나왔는데 이해를 못하는 이들이 있는 것 같아 작년에 쓴 글을 꺼내왔다. 모 매체에 샘플로 제공했던 것인데 후반부에 미국의 생우유 논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50센트. 귀리유 브랜드 오틀리의 지난 2월 14일 미국 나스닥 마감가이다. 주식과 투자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공개가 된 기업의 주가가 50센트(약 650원)이라면 뭔가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말도 안되게 싼 것 아닌가? 한발짝 멀리 떨어져 큰그림을 보면 명명백백하다. 지난 2021년 6월 11일, 오틀리의 주가는 28.73달러였다. 5년이 채 못 되는 세월 동안 기업의 가치가 무려 97.8퍼센트 떨어진 것이다.
한동안 거침이 없어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스웨덴에서 1980년대부터 개발을 시도했던 오틀리는 이래저래 획기적인 먹을거리였다. 환경에 부담이 큰 우유에 비해 탄소발자국도 훨씬 작고 자원도 적게 소비한다. 그런 가운데 자연스러운 단맛까지 지녀 우유의 식물성 대체유로서 시장 개척에 선구자 노릇을 했다. 2012년 오틀리에 합류에 직접 광고에 출연하며 이미지를 소위 ‘힙’하게 끌어올린 CEO 토니 피터슨의 활약도 참으로 대단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이라던가? 50센트라는 주가가 말해주듯 오틀리는 이제 사상누각처럼 위태롭다. 규모를 늘리는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많았다. 가장 큰 시장인 미국에 진출하면서 수요에 맞춰 공장을 세워 가동시키지 못했다. 한편 그사이에 흡사한 제품이 시장에 쏟아지면서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해졌다. 귀리는 물론 아몬드나 캐슈넛 등의 대체유 또한 속속들이 경쟁에 합류했다. 전통의 두유까지 감안하면 소비자가 오틀리만 고집할 이유가 없어졌다.
그리하여 식물성 대체유 시장이 이종격투기판처럼 되어 버린 가운데 환상을 깨는 연구 결과도 속속들이 등장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영양소 면에서 우유와 경쟁이 안된다. 최근 미국 미네소타 주립대학교의 공중보건 대학에서는 200종이 넘는 대체유를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영양소인 단백질만 놓고 보더라도 240밀리리터 기준 우유가 8.2그램이지만 귀리는 2.7그램, 아몬드는 고작 1.0그램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두가 6.1그램이고 완두콩이 7.5그램으로 콩류가 우유와 견줄만 한데, 완두콩은 아직까지 대체유가 그렇게 흔하지 않다. 자원 소비면에서도 속속들이 따지고 보면 식물성 대체유가 엄청나게 월등하지 않다. 온실가스만 보면 우유가 월등히 나쁘지만 큰 그림을 보면 약점을 드러내는 식물성 대체유도 있다. 귀리 이전부터 대체유 재료로 쓰인 아몬드의 경우 생산에 물이 많이 소요된다. 따라서 세계적 가뭄의 현실에서 썩 환경친화적이지 않다.
오틀리의 고전 및 장밋빛이지 않은 식물성 대체유의 미래는 곧 우유의 기회이다. 우유는 오랫동안 샌드백처럼 얻어맞았다. 음모론도 비교적 무리 없이 받아들여질 정도로 소비의 당위성을 잃었다. 송아지의 양식을 빼앗는다는 비인도적인 시각이며 앞서 언급한 환경에 미치는 부담까지 우유에게 유리한 구석이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질인 영양소면에서 우유가 우월하다면? 지금까지의 부정적인 자세를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우유의 시간이 찾아왔다. 배수의 진을 치고 지난 이삽십 년 동안 이미지 재고에 안간힘을 써 왔지만 이제 낭떠러지를 한두 발짝 남겨두었던 우유에게 마지막 생존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그런 우유의 시간을 국내외로 살펴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일단 나라 바깥에서는 마지막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우유의 이미지가 한편 더욱 나빠지고 있다. 한편 믿기조차 어려운 생우유 논란이다.
‘생’우유라니 접두어 덕분에 구미가 당긴다 생각할 수 있다. 양념하지 않은 생고기나 수조에서 갓 잡은 활어회를 선호하는 우리라면 생우유가 훨씬 더 맛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사정이 사뭇 다르다. 생우유는 그야말로 살균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은 우유이다. 고기를 위해서든 우유를 위해서든 소의 사육 환경은 아주 위생적이기가 어렵다. 끊임없이 먹고 배설하는 동물이므로 분변의 균이 착유과정에서 우유에 침투하기 매우 쉽다.
이런 문제 때문에 루이 파스퇴르가 자신의 이름이 붙은 가열살균법을 발견한 1860년대 전까지 많은 이들이 우유를 먹고 식중독으로 죽었다. 균이 문제이기도 했지만 유통기한도 짧아 쉽게 상했다. 우리에게는 유업계에서도 드물게 저온 살균(섭씨 63도, 30분)을 고집하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듯, 파스퇴르 공법은 조금 과장하자면 표적 살균이다. 해로운 미생물은 죽이고 맛에 영향을 미치는 이로운 미생물은 남겨둔다.
최근 미국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생우유는 1860년대에 등장해 150년 이상 인류를 살려온 기술을 본질적으로 부정한다. 어디 그뿐인가, 같은 맥락에서 균질화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소에서 받아낸 우유는 우리가 사먹는 제품처럼 매끄러운 액체가 아니다. 우유는 본질적으로 물에 단백질과 당, 비타민 등이 녹아 있는 가운데 지방구가 표면에 떠 있는 콜로이드이다. 이를 눈 크기가 2μm로 미세하게 고운 필터에 고압 분사시켜 균일하게 분산시킨다.
그 결과 우유는 밝은 백색의 액체가 되며 소화 흡수가 한결 더 쉬워지는데, 생우유 지지론자들은 이마저도 인체에 해롭다고 주장한다. 지방구 입자의 크기가 너무 작아진 나머지 소에게 쓴 스테로이드나 호르몬 등이 소화기관을 빠져나와 체내에 축척이 된다는 논리다. 이러한 주장은 균질화로 단백질인 크산틴 산화효소가 증가해 궁극적으로 심혈관 질환을 부추긴다는 1970년대의 주장과 궤를 같이하며 이미 논파되었다.
미국에서 가열살균법은 1890년대에 이미 채택되기 시작해 1909년 시카고에서 처음으로 의무화되었는데, 최근 시대를 역행하듯 유행으로 번져 현재 29개주에서 판매가 허용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달 2기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면서 생우유 논란은 한층 더 뜨거워졌다. 이제 생우유가 실질적인 건강 위협으로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그 논란의 핵심에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있다. 원래 변호사인 그는 잘 알려졌듯 무소속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선거 막판에 트럼프를 지지하며 사퇴했다. 그 공로로 그는 지난 2월 13일 미국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임명되었는데 전력이 매우 화려하다. 그는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와 같은 의학 관련 음모론의 철저한 신봉자이며, 2019년 사모아와 통가의 홍역 전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니 샌더스 등 무소속과 민주당 의원들의 청문회 공세 속에서도 케네디는 상, 하원 모두에서 아슬아슬한 표차로 보건복지부장관으로 인준되었다. 코비드 백신부터 HIV 바이러스까지, 케네디의 의학 관련 음모론 신봉에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생우유의 역할을 강조할 것이 확실하다. 일종의 건강증진 대중요법으로 생우유률 규정하고, 관련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생우유 판매 농부인 캘리포니아의 마크 맥아피를 자문역으로 영입했다.
케네디의 목표는 궁극적으로 규제 완화를 통한 생우유의 전국적 보급 강화지만 우려와 반발이 상당하다. 문자 그대로 비살균 우유이므로 균이 그대로 마시는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는 가운데, 무엇보다 현재 미국에서 확산 중인 H5N1 조류독감의 감염 위험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현지 시간 1월 6일 루이지애나주에서 조류를 통해 H5N1에 감염된 65세 기저질환 환자가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계란 품귀 부족 및 가격 폭등에 영향을 미쳐 조류 독감은 이미 미국 내에서 상당한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이제 한발 더 나아가 조류독감이 인체에 감염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아 보이기까지 하다. 그런 현실 속에서 케네디의 생우유 장려 정책은 타고 있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듯 빠르게 전파되는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문명의 일부가 파스퇴르의 시대 이전으로 반동하는 듯한 생우유 유행의 뒤에는 백인 보수층이 있다. 그들은 건강자유운동(Health Freedom Movement)의 일환으로 ‘생우유를 마시고 건강해질 권리를 달라’며 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가뜩이나 백신 거부 등으로 홍역 등의 전염병이 이미 상당히 돌아온 미국의 현실 속에서 우유의 시간이 정반대 색깔인 검은색처럼 죽음의 기운을 잔뜩 머금고 다가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