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델타를 타고 온 비금의환향
이 곳을 떠나는 구나, 따위의 감상에 젖을 여력 따위는 근 한 달도 전부터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 옛날옛날 냉전시대에 우매한 대중들에게 금강산 댐 마냥 핵 전쟁에 대한 공포를 안겨주려고 만들었던 영화(나만 그렇게 믿고 있는건가?) ‘그날 이후’를 보면 멀리에서 핵이 폭발하고 버섯 구름이 피어오르는 걸 보고 있는 어떤 바지 정장을 입은 여자의 바지 사이로 물이 아니라고 믿어지는 액체가 줄줄 흐르는 장면이 있었다. 나의 감상도 그렇게 지난 두 달 사이에 줄줄 흘러 내 감정의 방광에서 탈출하고 있었다. 천천히 흘러 빠져 나오는 꼬라지가 액체라기 보다는 손가락 사이로 흘러 떨어지는 모래 같은 느낌이었지만.
밤에도 차를 가지고 있다가는 계속 밖에 나가 돌아다니면서 사고를 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조신하게 여관 방에 나를 가두고자 전날 저녁에 차를 반납했는데, 여관 바로 코 앞에 있는 공항에 가는 셔틀 버스가 고작 30분 간격으로 한 대 씩 밖에 없어서 맞지 않는 시간 때문에 아침엔 서둘러야만 했다. 잠이 잘 안 와서 다섯시엔가 일어나서 짐을 대강 나눠 싸 놓고는 마지막 한 병 남은, 평범한 맥주의 두 배 도수인 십 도 짜리 맥주를 마시고 다시 꾸벅꾸벅 졸다가 어중간한 시간에 깨었던 게 문제였다. 공항에 도착하니 지구 최악의 서비스를 자랑하는 아틀란타의 자랑 개델타는 역시 개같은 서비스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는데, 일단 열 몇 개도 넘는 부스에 꼴랑 여섯 인가 되는 직원을 박아놓았는데 그렇게 있는 아이들조차도 굼벵이가 운영하는 직업 훈련원에서 훈련을 받았는지 느리적대기가 늘보가 기다리다가 울화통에 북받쳐 다 쏴 죽여 버리겠다고 총을 들고 설칠 것만 같은 형국으로 느려서, 짐을 부치기까지 한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지구 어느 곳을 가도 만날 수 있고, 또 우주여행이 대중화되면 인류가 발 뻗을 수 있는 우주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을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 아줌마들은 역시 아틀란타에도 무리지어 계셔서, 하나에 적어도 오십 킬로그램은 족히 될 것 같은 가방 대 여섯개를 수레 바퀴가 뭉개질 정도로 쌓아놓고서는, 우리나라 웬만한 마트에 가도 있는 마카다미아 초콜렛 따위를 이 가방에서 저 가방으로, 아니면 다시 그 가방으로 옮겨 담는 행위의 무한 반복을 자기 차례가 다가 올 때까지 계속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언제나, 또 어디에서나 처럼(말하지 않았나, 우주여행이 대중화되면 아줌마들이 저러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이라고-). 그러면서 또 다른 동포 가운데 짐이 적은 사람을 찾아 짐 한 두 개쯤을 대신 부쳐달라고 부탁하고자 하이에나처럼 어슬렁 거리기까지 했지만, 나는 또 한국 사람으로 보지 않았는지 바로 뒤에서 ‘한국 사람이 왜 이렇게 없대- 라고 큰 소리로 서로 쑥덕거리면서도 나에게는 말을 걸지 않았다. 그다지 한국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타이완 내지는 일본 사람 가족에게는 그런 줄 알고 말을 거시더니만.
짐을 잘 나눠서 쌌다고 생각했는데도 트렁크는 무게 초과, 기타는 치수 초과… 해서 회사로부터 울궈 낸 짐 부치는 돈을 반 이상 써 버리고 기타 관련 장비를 무슨 폭발물 기폭 시스템 정도로 생각하도록 교육받은 질 낮은 보안 직원들로 가득찬 검색대를 거치고 나의 그다지 금의환향스럽지 못한 귀향길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지구 최악의 항공사 델타의 기내식 질은 역시나 형편 없었는데, 점심으로는 개밥이, 저녁으로는 고양이 밥이 나왔고 그 사이 간식으로는 아틀란타 시내에 넘쳐나는 집 없는 사람-99% 흑인-들 조차도 왓더뻑, 하면서 먹지도 않고 내던질 것 같은 샌드위치가 나왔다. 그나마 나는 2.5불짜리 회사로부터 나오는 공짜표로 탔나고 통보가 되었는지 마요네즈 조차도 딸려 나오지 않았다. 그래봐야 먹지 않았을 테지만… 아, 한국 가면 고기를 못 먹을지도 몰라 라는 개궁상스러운 생각에 점심과 저녁 모두 쇠고기를 먹었는데, 월마트에서 파는 쇠고기나 1불짜리 맥도날드 햄버거조차도 종종 먹었었던 내 이가 씹을 수 없을 정도로 질기고 냄새가 심한 쇠고기는 공항 옆에 100년간 우유를 강탈당하다가 은퇴해서 죽을날만 기다리고 있는 젖소들을 모아놓은 델타 전용 목장 같은 곳에서 준비-도살도 돈 아까워서 못하고 늙어 죽을 때까지 기다린다는 소문의 그 목장…-한 것인지, 정말 완벽한 개밥과 고양이밥의 풍미를 제공했다. 정말 하나의 생명체로써 배가 고픈 내가 저주스럽게 생각될 정도의 음식이었다.
계속계속 되던 불면의 나날들은 돌아가는 비행기에서조차 계속계속계속 되어서 기나긴 비행은 지옥과도 같았고, 30분 자다가 깨고 책과 디비디와 무려 무료로 제공하는 영화 등등을 번갈아가며 보는 사이 비행기는 인천공항에 착륙하고 나는 그렇게 돌아왔다. 공항에는 무슨 새싹 비빔밥 따위를 홍보하기 위한 공연 따위가 벌어지고 있었고, 조리사 가운을 입은 사람 수십 명이 흥부가 맞았더라면 밥풀 더 많이 붙어서 좋아했을 법한, 그러나 그렇게 얼굴에 밥풀 많이 붙는거 좋다고 형수, 놀부 마누라한테 두 번만, 아니 오른뺨 맞았으니 왼뺨도 내밀면서 너무 배고프니까 밥풀만 준다면 일곱 번은 물론 일곱 번씩 칠만 번도 용서해줄 테니 계속해서 때려달라고 애원하다가 얼굴 가죽이 두개골에서 밀려 나가는 와중에도 밥풀을 떼어 먹으며 좋아할지도 모르는 크기의 밥주걱 따위로 밥을 비비는 경쟁을 하고 있었다. 나는 멀리에서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있잖아요, 제가 외화벌이 좀 해보겠다고 미국에서 7년 살면서 아이비리그 조정경기도 많이 보았는데 주걱 보다 그 노로 저으면 더 빨리 비빌 수 있으거에요 라고 말하고 싶어졌었다. 만 7년을 석 달 남겨두고, 이렇게 나는 돌아왔다. 어쩌면 흥부는 얼굴 가죽이 밀려서 떨어져 나가면 손에 들고서 밥풀 떼 먹는게 더 낫다고 좋아하지 않았을까나. 가족들한테 밥풀이 잔뜩 붙어 하얗게 보이는 얼굴 가죽을 들고 가서는, 봐! 형수님이 오늘 웬일로 마음이 너그러우셔서 이따만한 주걱으로 싸대기를 때려주셔서는 오늘은 밥풀이 이렇게 많다니까! 그래도 우리 식구들이 너무 많으니까 이걸로 미음을 끓여야 다 나눠먹겠구나. 임자, 우물 가서 물좀 길어오… 그런데 아빠, 손에 들고 있는 건 뭐고 얼굴에선 왜 피가 나? 응, 그건 내가 밥풀을 많이 건지려고 여러번 맞다 보니까 얼굴 가죽이 밀렸지 뭐니. 그런데, 넌 누구니? 하도 자식을 많이 낳다 보니까 얘가 내 앤지 아닌지도 모르겠네. 너 만약에 옆집 앤데 뭐 얻어 건질 건 없나 해서 슬쩍 껴들어와 있는 거면 얼른 돌아가는게, 우리 가족들 고기맛 본지가 너무 오래 돼서… 임자, 물 넉넉하게 담아오구려, 오늘 저녁에 고기 먹겠네.
# by bluexmas | 2009/04/10 03:05 | Life | 트랙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