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나들이
일주일 가까이를 집에 쳐박혀 있고 나서야 몸을 움직여 볼 마음이 생겼다. 사실은 나도 서울이 대체 여기에서 얼마나 먼지 조차 감 잡을 수 없는 상황, 나와 이름 두 자를 나눠 쓰는 분이 간만에 본가에 왕림하셨다가 다시 서울로 행차하시는 차를 얻어 타고 광나루 역에서 내려 먼저 을지로 4가로 향했다, 우래옥 냉면을 먹으러. 뭐 미식가들은 우래옥은 별로고 다른 어디가 더 맛있다고들 하던데, 나는 그 다른 곳들까지 찾아갈 만큼 냉면을 좋아하지도 않고 또 빨간 양념에 가는 면발의 냉면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터라… 5호선 을지로 4가 역의 사거리 출입구로 빠져 나오면 금방 찾아갈 수 있는데 2호선 출구로 나와서 잠시 헤매야만 했다. 내가 주문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이 꽤 많이 들어찼는데 다들 냉면보다는 불판에 굽는 뭔가를 먹는 상황이어서 나도 먹고 싶었지만 실업자 신세임을 감안하면…
점심을 먹고서는 늘 걷던 종로 길거리를 걸어 내려가다가 지금은 신한은행이 된 옛날의 조흥은행에서 들러 오래된 은행계좌를 정리하고, 안쪽을 더 들어가 을지로 쪽의 거리를 걸어 명동 성당쪽으로 빠져나왔다. 기억에 옛날 캘리포니아 피트니스가 있는 큰 길에 SK 텔레콤 직영점 따위가 있었던 같아서… 대체 언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2년 약정이면 공짜로 준다는 전화기를 받아 가입을 하고는, 그 큰 길을 걸어 내려가면 있는 새로 지은 건물의 우체국에서 미국의 부동산 중개인에게 집의 청소비 수표를 보내주었다.
그리고는 뭔지 전부 알 수도 없는 명품과 유사 명품 상점들로 가득찬 롯데의 별관과 같은 건물을 지나 대체 요즘 우리나라의 남자들은 무슨 옷을 입나 롯데의 남성복 매장에 들러봤는데, 그 어떤 상표들보다 정체성을 잃은 빈폴과 해지스 따위의 유사 폴로 쪼가리들과 중국에 만든 주제에 백 만원이라는 가격표가 붙어 있어 도저히 정당화 할 수 없는 Theory의 정장을 보고는 이 나라 남자들에게 스타일이라는 게 없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수 밖에 없구나, 라는 씁쓸한 현실을 재확인하고 지하도를 건너 삼성화재 건물 맞은 편의 산하네 분식에 찐빵을 사러 갔으나 건물이 있던 자리는 또 한 채의 말도 안 되는 고층 건물의 터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저 따위 구린 건물을 지으려고 찐빵을 희생시키지는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에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빙 돌고 주변의 가게에 물어보고 나서야 찐빵집이 늘 가던 북어집 바로 위에 다시 자리 잡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결국 들러 워낙 큰 내 머리보다 더 큰 찐빵을 간식으로 먹고 늘 그래왔었던 것처럼 영풍과 교보문고에 잠시 들러 내용보다 껍데기 디자인이 더 화려한 요즘의 책들을 비웃어 주고, 시청역까지 걸어 내려와 병점행 전철을 타고 오다가 세류역에서 내려 다시 오산행 전철로 갈아타고 또 마을 버스의 도움을 빌어 집에 돌아오니 여섯시 반이었다. 그리하여 오늘의 피곤했던 서울 나들이 끝. 어째 기분이 장날 노새 끌고 읍내 나간 노인네 같은 건 대체 왜?
# by bluexmas | 2009/04/14 20:16 | Life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