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모순?

예전에 이런 제목으로 글 쓴 적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언제나 삶이 모순 덩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사니까. 그게, 별로 공평하지가 않거든. 나는 나의 상황에 별 불만 없지만(이라고 말은 하지만).

각설하고, 처음 이사왔던 날 복도에 담배 냄새가 나길래 다들 밖에 나가거나 집 베란다에서 안 피우고 복도에 나와서 담배를 피는구만, 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옆집 남자가 정말 자기 집 앞 계단 참에서 담배 피우는 것을 보았다. 나라도 담배 안 피워 봤겠냐만 냄새는 정말 싫어하는 터라, 웬만하면 담배는 좀 밖에 나가서 피우든가 하지…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제와 그제 날씨가 추워서 바로 밖에 나가 달리기 하기가 좀 그래서 일단 계단이나 좀 오르락내리락 해야 되겠다, 생각하고 1층까지 걸어 내려와 꼭대기인 13층 까지 뛰어 올라 가는데, 거의 두 집 건너 하나 꼴로 담배 꽁초를 담기 위한 깡통이 있는 걸 발견했다. 알고 보니 내 집에도 나와 동갑내기지만 애가 둘인 집주인이 쓰다가 무책임하게 그냥 내버려 두고 간 깡통이 있었고. 그래서 난, 아 다들 참 담배를 열심히 피우는구나… 라고 생각만 했는데 보니까 사진에서처럼 대부분의 깡통이 바로 애들의 분유깡통이었다. 그러니까 이 남자들, 애들 분유값 벌기 위해서 회사 나가서 뼈빠지게 일하고서는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일환으로 혼자 복도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거겠지, 차마 집에서는 그 분유 먹는 애들 때문에 피울 수 없고, 그렇다고 끊을 수는 더더욱 없고.

사실 이 깡통이 그냥 요거트 따위 통이나 뭐 그런 거라면 그냥 그런가보다, 했겠지만 거의 모든 집의 통이 분유깡통인 것을 보면서 물론 자식이라는게 결국 부모의 살과 피를 나눠서 태어난 것이니 그 살과 피를 줘야만 키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자식들 잘나고 똑똑하게 만들기 위해 저 깡통의 분유처럼 거창한 이름 따위를 달고 팔리는 분유를 사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또 그 과정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또 돈을 주고 독이나 다름 없는 담배를 사서 피우는 이 삶이라는게 지독하게 모순덩어리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아이들 양분을 먹이기 위해 아버지라는 존재는  결국 독을 먹는 셈이니까. 물론 자발적인 것이니까… 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사실 그 과정이 자발적이라는 상황이 더 웃기다고도 생각된다. 꼭 담배여야만? 그리고 왜 꼭 분유일까? 정말 저따위 분유 먹이면 애들이 똑똑해지나, 엄마젖 먹는 거에 비해서? 물론 분유 먹이는게 잘못 되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나는 사실 그런 부분에 대한 경험이 없으니 입도 뻥긋하면 안되는 처지니까. 그냥 그 모든 과정이 슬퍼서. 왜 슬프냐면, 한 번 그렇게 삶이 그런 방향으로 가기 시작하면 되돌릴 방법이 없는 것 같아서. 악순환 같은 느낌이니까. 얘, 나는 독을 먹으면서 버텨내서 너의 양분을 마련하기 위한 돈을 벌었단다, 라고 아버지는 환갑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시커먼 얼굴로 말했다, 아니 사실은 종이에 썼다. 기관지에 파이프를 꽂은지도 어언 3개월, 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말했다. 폐암, 가망이 있다고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골초였으니까. 감각의 오른쪽에서 달짝지근한 분유냄새, 왼쪽에서 담배냄새가 몰려와 등뼈를 기준으로 정확하게 대칭을 이루는 지점에서 서로 충돌하는 듯한 환각을 느꼈다. 나를 만든 건 분유였을까, 아니면 담배였을까.

… 사실 기관기 절개와 폐암과의 관계는 찾아보지 않아서 맞는지 모르겠고, 나는 어머니 젖을 먹고 컸다. 그때도 분유가 있었는지 모르겠고 우리 집에는 어차피 분유 살 돈도 없었다. 어쨌거나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셨다.

 by bluexmas | 2009/04/27 23:53 | Life | 트랙백 | 덧글(4)

 Commented by starla at 2009/04/28 09:55 

와 정말 끝장으로 쓸쓸한 풍경이네요.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가 그렇다니…

정말 아침부터 인생의 쓸쓸함 제대로 간접체험합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02 14:31 

으아 답글이 많이 늦었죠? -_-;;; 이 동네도 보면 저나 starla님 또래의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거든요. 그 사람들이 대부분 결혼해서 애를 키우니까… 그러게 참 쓸쓸한 광경이에요.

그러나 알고 보면 담배 피우는 건 습관이니까요.

 Commented at 2009/05/05 02: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05/05 11:03 

저거 말고도 ‘앱솔루트 명작’ 따위가 있던데요. 그거 먹으면 애들 금테둘러지나… 언제나 그렇지만 그 모든 마케팅 #랄을 보면 지겨울 따름이에요. 다들 거짓말쟁이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