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대신 커피
역삼동에 회사가 많아서 그런지 음식점들도 많은데, 솔직히 내 눈에는 영등포 역 건너 먹자골목과 별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먹고 싶은 건 거의 없어 보인다는 의미이다. 술이야 그럭저럭 마실 수 있는데, 그럭저럭 1차를 열만한 곳이 내 눈에는 별로 없어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번에는 두 번이나 헛걸음질 친 산동교자를 미친 척하고 다시 가봤는데, 정말 내가 미친 것인지 가게가 아예 일본식 술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삼고초려로도 못 먹어본 산동교자의 음식은 대체 무엇이었을까(먼산을 바라보다가 눈물이 고인다T_T)… 최근 압구정동 어딘가에 같은 이름으로 연 집이 있다던데, 거기가 거기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글의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3차까지니까 세 번에 걸쳐 들렀던 곳에 대한 글을 올릴 예정이다. 1차에서 밥과 맥주, 2차에서 포도주, 3차에서 그보다 센 술을 마시고, 시간은 원하는만큼이지만 본인처럼 경기도에 사는 사람이라면 막차 시간에 맞춰 끝낼 수 있는 자리와 동선이다. 노파심에 미리 말해두지만 뛰어나다고 생각해서 올리는 건 절대 아니다(특히 1차). 다른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이번에 올리는 글로 기대를 크게 가진다면 실망할 확률도 그만큼 크다고 한자락 미리 깔아두어야 할 것 같다.
지난 금요일, 누군가를 그 근처에서 만났는데 1차를 경성양꼬치에서 먹었다. 이 집은 역삼동 충현교회 바로 앞에서 GS타워쪽 큰길로 내려가는 길 왼쪽 건물 2층에 있는데. B POT에 들러서 커피를 마시고 강남역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찾았다. 처음에 이 집과 산동교자를 놓고 갈등했으나 결국 쓸데없이 칼로리만 써버린 셈이 되었다. 산동교자는 아예 없어졌으니까.
사실 이 동네의 지옥과 같은 식도락 현실을 생각한다면 이 집이라고 잘 하는 건 고사하고 멀쩡하리라는 보장은 없었으나 그래도 중국집이고 양꼬치라면 정말 멀쩡은 하지 않겠냐고 생각을 했는데, 정말 그렇게 딱 멀쩡한 정도였다.
일단, 강남의 물가라서 그런지 양꼬치가 비쌌다. 10꼬치 1인분에 9천원? 그리고 고급 양갈비였던가? 해서 세 대가 나오는데 그게 2만2천원이었다. 나는 양고기에 대해서 거의 매일 드신다는 어떤 분만큼 잘 모르므로 강한 확신을 담아 좋다!고 외치기에는 좀 내공이 딸리는데, 그래도 고기는 괜찮은 수준이었다. 양꼬치도 양꼬치였지만, 갈비는 돈값을 한다고 딱 기분 좋을만큼만 양냄새-이게 아예 안 나면 양을 먹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가 나는, 아주 부드럽고 맛좋은 고기였다. 중국에서도 양꼬치를 많이 먹었다는 일행 역시 이곳의 고기에 좋은 평가를 내렸다.
아주 배부르게 먹을 생각은 없어서 물만두를 시켰는데 직접이든 아니든 공장에서 나온 건 아니었고, 간은 심심했는데 간장을 찍어 먹으면 딱 괜찮은 수준이었다.역시 그냥 보통의 물만두였다. 이렇게 고기나 물만두는 괜찮았으나 반찬들은 좀 허술한 느낌이었고, 사람이 모자라는 느낌이어서 접대가 매끄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옆자리의 직장인 다섯명은 죄 옥수수국수를 주문하고는 늦게 나오는지 일정한 간격으로 아줌마를 불러대서, 아주 살짝 거슬렸다. 뭐 술집이 다 그렇겠지만…
그래서 무난하게 1차를 마쳤는데, 나쁘지는 않았지만 강남의 물가를 반영한 가격(두 사람이 양꼬치 1인분, 양갈비 1인분에 칭따오 두 병, 물만두 하나를 먹고 4만6천원을 냈다)을 고려해본다면 강남에서 돈버는 용자만이 갈 수 있는 집인지도 모르겠다. 막말로 그저 안전빵인 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럼 곧 2차로.
# by bluexmas | 2010/02/24 09:01 | Taste | 트랙백 | 덧글(12)
(이렇게 말하고 나니 저도 가고 싶어지네요. 경기도 남부 번개라도 쳐야 되나요…;;;)
갈 때마다 못 찿거나 문을 닫아놓은 음식점에 대해서는 왠지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런데 결국, 드디어 먹게 되었을 때 기대만큼 맛있었던 곳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_-;
오기가 생기면 결국 음식이 맛 없는 것 같아요. 웬만해서 그렇게 기다려 먹어 맛있기 힘들죠…
신사역에서 맥스 작은 병 다섯개에 3만원이었던 맥주바를 겪은 후로는 그 근처는 무서워서 못가겠더라고요( ..)
전 성남 모란의 [복래반점]에서 양고기 훠궈(3만원)시켜봤는데 홍탕,백탕도 아니고 양고기 상태가 별로라서 약간 돈 아까웠습니다..
언제나 말씀드리지만 성민 양꼬치는 그 공간에 그 인파가 밀려든다면 품질관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등포 청도 양꼬치가 괜찮은데 거기도 사람이 많아서 곧 어떻게 될까 모르겠습니다.
양고기를 훠궈로는 안 먹어봤는데 3만원이면 비싸네요… 저는 무려 네덜란드의 정통사천식당에서 훠궈를 먹었습니다. 영어로는 ‘차이니스 퐁듀’ 더라구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