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귀환의 변

어제 두 시, 나는 어딘지도 모를 일본 기후현의 간이역에 내렸다. 오사카에서 출발한 시간이 여덟 시 삼십 분이었으니 대략 다섯 시간 반이 걸린 셈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들를 고베의 가게들이 문을 닫기 전에 도착하려면 세 시 사십 사 분의 기차를 타야할 것 같았다. 가는 목적지까지는 걸어서 적어도 십 오분이 걸린다고 했으니 한 시간 남짓 밖에는 시간이 없었다. 나는 거의 뛰다시피 걷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아니, 내가 대체 여기에서 왜 뭘 하고 있는거지? 대체 여기는 왜 왔지? 아니 뭐 다 좋은데, 정말 뭐라도 잘못 되어서 못 돌아가는 경우가 생기면 어떨까 솔직히 미친 듯이 두려웠다. 그 전날 버스를 잘못타서 어이없는 동네까지 흘러들어가면서 처음, 여행 안내책자의 뒷면을 펼쳐보고 알게 되었다. 아, ‘이끼마쓰까’가 ‘갑니까?’라고(난 일본어를 하나도 모른다). 그 뒤로는 계속해서 ‘스미마생 ####이끼마스까’를  미친 듯이 읊고 다녔는데, 어제 간 그 동네는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그 근처의 사람들조차 모르는 동네였다. 아, 여기가 이런 곳이었구나. 내가 이런 곳을 가려고 했구나… 물론 알면 한 번쯤 다시 생각해봤을 것이다. 정말 이런 곳까지 갈 필요가 있냐고.

이번 휴가는 휴가가 아니었다. 점심도 못 먹고, 화장실 가기 귀찮아서 호텔에서 하루에 한 병씩 공짜로 주는 500ml들이 병물도 채 반을 안 마시고 차 시간에 맞추려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면서 결국, 휴가는 이런 식으로 가면 안된다는 값진 교훈을 얻었다. 맞다, 처음에는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즐겁게,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이나 먹으면서 느긋하게 쉬다 올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앞으로 쓸 글에 자료로 삼으면 좋겠다고 안도 다다오의 건물을 뒤지기 시작했고, 결국 일이 커져 어제 그 말도 안되는 동네까지 갔다오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결국 스시도 소바도, 고베 쇠고기도 먹지 못했다. 얻은 것은 물론 많았지만 너무 힘들게 얻은 여행이었다. 물론 아마존 한 가운데에 간 것도 아니면서 웬 호들갑이냐고 누군가는 그러겠지만, 정말 어제 그 동네에서 뛰어다닐 때에는 좀 두려웠다. 이대로 어딘가에 갔다가 오산은 커녕 오사카에도 돌아가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쓸데없는 두려움이, 일정이 계속되면서 점점 더 크게 자랐다. 결국 마지막에 고베에서 케이크를 한보따리 사가지고 오사카도 돌아오는 전철을 기다리는데, 멀쩡하던 전철이 나를 태우고는 오사카로 가기를 거절하고 또 어느 말도 안 되는 동네에 내려놓는 것은 아닌가 미친 것처럼 두렵기까지 했다. 그런 여행을 하고 돌아왔더니 감히 무사귀환이라는 단어를 좀 입에 담아야겠다. 피곤하다.

사진의 처자는 고베역에서 전철을 기다리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굉장히 낯익어서 사진을 안 찍을 수 없었다. 누구더라? 언제 저렇게 생긴 처자를 어디에서 만난 적이 있던가? 옛날 소개팅에서라도? 좀 희미한데…

 by bluexmas | 2010/03/04 23:47 | Life | 트랙백 | 덧글(36)

 Commented by 모나카 at 2010/03/04 23:50 

피겨 스케이터인 아사다 마오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미연씨 닮았다고들 하죠. 개인적으로는 같은 나이일 때의 이미연씨가 훨씬 이뻤지만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02:51

앗 제 농담이 또 너무 진지하게 들렸군요;;;죄송스럽네요. 저도 아사다 마오 알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레일린 at 2010/03/04 23:59 

이번에 일본 진출한 이미연씨에요!! 하고 거짓말 치려다가 모나카님 댓글보고 착하게 살기로 했스빈당…..헿헿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02:52

크 이미연도 이제는 너무 나이 많지 않나요… 일본에서도 아사다 마오의 얼굴이 표지에 실린 책이 엄청 많더라구요…

 Commented by 모나카 at 2010/03/05 23:10

제가 좀 순수해요! [으쓱] …(끌려가서 맞지 않으면 다행일지도)

 Commented by 봄이와 at 2010/03/05 00:01 

별로 외진 곳이 아니어도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서 경로를 이탈하는 건 꽤나 무서운 일이죠. 그래도 길 좀 헤매고 긴장감에 바싹 말라봐야 여행한 기분이 좀 난다고 생각합니다. 큭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02:52

거기에 돈도 없으면 정말 괴롭죠… 긴장감에 바싹 타서 다녔습니다. 기차 버스 잘못 타는 건 기본이지요T_T

 Commented by JuNe at 2010/03/05 00:06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갔다는 기분이에요, 그래도 얻은 것이 많았다고 하시니 다행입니다,

저 아가씨에 대해서는 할 말은 많지만 아무래도 생략해야할것같아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02:52

네 뭐 굳이 입에 담지 않는 편이 좋겠어요…( ..)…

 Commented by JUICY at 2010/03/05 00:12 

저도 누군지 한참 고민을 하고서야 알았어요. ㅎㅎ 고생 정말 많이하셨어요!! 그래도 다음에 쓰실 글에 참 많은 도움이 될거예요!! 시간이 많이 흐르면 추억이 되겠죠 ㅎㅎ 그치만 전 그런 여행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아요 =_=;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02:53

저도 제가 대체 왜 그러고 돌아다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T_T 흐흑…

 Commented by 펠로우 at 2010/03/05 00:12 

짧은 일정에 많이 돌아다니시느라 고생했군요.

이번엔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니고, 다음 휴가땐 느긋하게 선글라스 끼고 비키니 미녀들 감상하면 되겠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02:53

아이고 비키니 미녀는요… 그냥 경치 좋은 곳이면… 되겠죠?^^;;;

 Commented by absentia at 2010/03/05 00:18 

아니, 고베규를 못 드셨다니요! 그나저나 일본은 일본어 못 하면 돌아다니는데 한계가 좀 많죠. 관광을 위한 스팟을 제외하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02:54

네 뭐 돈이 없어서 고베소는 좀… 아무래도 다음 기회를 노려봐야겠죠 뭐. 고베 케이크는 그래도 좀 먹어봤습니다.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10/03/05 00:50 

무사귀환 축하드려요! 바쁘게 다니셨다니 고생하셨습니다 ^^ 저도 일본어를 못해서 길을 물어보는 것까지는 간신히 해도 대답을 알아듣지 못하겠더라고요.. -_-;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02:54

그냥 “….. 이끼마쓰까?”

“…이끼마쓰”

대부분 이렇게 끝나서 저는 뭐 별 문제 없었습니다;;;;

 Commented at 2010/03/05 01:1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02:55

앗 고생 좀 하셨겠어요. 저도 스페인 가보고 싶어요. Tapas Crawling 해보고 싶거든요^^;;;

 Commented by 당고 at 2010/03/05 01:39 

돌아오셨군요!

마오가 햄 선전도 하는군요!

전 어쩐지 bluexmas님이 일어를 좀 하시는 줄 알았어요. 고생하셨겠네요. 그래도 후기 기대!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02:56

저도 몰랐어요. 피겨 스케이터와 햄은 좀 안 어울리지 않나요? 후기는 곧 올리겠습니다. 곧… 곧…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10/03/05 02:18 

고생하셨습니다, 이건 휴가를 다녀온 분에게 할 말이 아닌데 말입니다 -.- 스시도 소바도 못 드셨다면 그럼 호텔 부페와 양식당 등에서만 식사를 하셨군요. 그래도 멋진 건축물 사진과 여행기 기대합니다. 수고하셨어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02:58

휴가가 아니라 출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면 탐사던지요;;; 그냥 아침에 호텔에서 주는 두부며 온갖단백질과 야채를 미친 듯이 집어먹고, 점심은 대개 굶거나 오니리기 하나 사서 서서 먹고, 저녁도 그러거나 아니면 맥주랑 사다가 호텔에서 먹었습니다. 폭식을 좀 했죠. 슬슬 정리해서 올려볼까 합니다…

참! 서생님 덕분에 호텔을 도톰보리 그 글리코맨있는 바로 길 건너에 잡아서 정말 즐겁게 묵었습니다. 난바역이랑 가까워서 오늘도 정말 시간 아주 잘 맞춰서 라피트 타고 공항에 갔습니다. 감사인사드립니다^^

 Commented by 고선생 at 2010/03/05 04:09 

잘 다녀오셨나요! 그나저나 일본도 참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은 곳인데.. 그저 부럽습니다.

동양에만 있으면 서양이 가고 싶고, 서양에만 있으면 동양이 가고 싶으니 이걸 어쩔까요..

아 물론 제 3국들도 너무너무 가고싶구요. 병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12:27

원래 그런 것 같습니다. 동양에 있으면 서양, 서양에 있으면 동양이 가고 싶지요. 유럽도 광활한데 거기 계실때 유럽 여기저기 가보세요.

 Commented at 2010/03/05 09:4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12:28

저랑 다니시면 반나절쯤 지나고 욕을 하시면서 길거리의 돌을 집어 저를 때리실거에요-_-;;; 그래서 혼자 다닙니다.

기사 읽어주셨다니 감사드리고, 언제라도 피드백 환영입니다^^

 Commented at 2010/03/05 10:0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12:29

네 잘 받으셨군요. 아직도 정신못차리고 골골거리고 있습니다. 그 동네에 여행가신다니 저도 반갑네요. 저는 엉뚱한 곳을 갔지만 고베에서 미친 케이크 먹기 이런 건 좀 해봤으니 궁금한 점 있으면 언제라도 물어주세요.

 Commented at 2010/03/05 10:2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5 12:29

어제 오셨군요. 정말 이번 여행은 너무 헤매서 지금도 생각하면 괴로운데요. 비공개님은 일본말도 잘 하시죠? 저는 정말 아예 모르니까 괴롭더라구요 이번에는.

그리고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10/03/05 13:48 

이또 햄 광고군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6 05:14

유명한 햄인가요? 그런데 피겨 스케이터가 햄 먹을까요? 잘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마리 at 2010/03/05 21:14 

아사다를 모르는 줄 알고 -_- 이 분 티비를 정말 심하게 안 보시는 구나 하고

생각했어요.-_-속았네요.속았어…………

저도 고베 케익 순회 너무 하고 싶은 여행인데, 항상 같이 갈 사람이 없었어요.

일단 고베라는 도시에 흥미를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흑.

해외여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울 엄미랑 다녀와야겠네요. 몇몇 멋진 가게들 나중에 추천해 주세요.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3/06 05:16

사실은 저도 시간에 쫓겨서 가게를 하나하나 찾을 수 없었어요. 모토마치 상가에 있다던데 거기도 문 닫을때 갔구요. 그래서 그 바로 앞의 다이마루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서 있는 가게들 것들을 하나둘씩 다 먹어봤죠. 다음에 가시게 되면 알려드릴께요.

그리고 빵은 거의 못 먹었어요. 맛 비교한다고 일본 폴 빵을 한 번 먹어보고, 건너편에 무슨 40년 된 빵집이라고 들어봤는데 식빵에 유화제 들었다고 써 있길래 그냥 나왔구요.

 Commented by 달에 at 2010/03/13 04:18 

힘들었던 여행이었나봐요.

그래도 일상과는 다른 기분전환은 되셨나요?

너무 늦게 찾아뵙게 되어 하나하나 찬찬히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