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에서 진상 부린 이야기
제목을 쓰면서 진상을 ‘떠는’게 맞는지 ‘부린’게 맞는지 잘 모르겠지만, 떨든 부렸든 어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다가 진상인 나의 실제를 살짜기 드러내었다. 날씨도 춥고, 다리도 아프고 해서 집에서 진득하게 앉아 일이나 할까 망설이다가 나선 길이었으므로 심기는 언제나 불편한 것보다 살짝 더 불편한 상황이었다.
아, 중앙박물관은 처음 가 본 것이었는데 정말 어마어마했다. 이 박물관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런 느낌이 없지만, 이걸 현상설계했던 당시(95년) 서양건축사를 강의하던 교수 역시 응모를 했다면서 자신의 디자인을 수업시간에 보여준 적이 있어서, 그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물론 지금의 이 어마어마하게 큰 박물관 자체에서 아무런 느낌을 가지지는 못했다. 크다는 것 말고는.
어쨌든, 공간을 보려고 간 것이었으므로 전시물에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불상을 전시하는 공간에 반가사유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 반가사유상에도 또 웃기는 기억이 하나 있는데(언젠가 글에도 쓴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4학년 때였나 가정대에서 편입한 학생 하나가 “설계가 잘 안 될 때에는 박물관에 가서 반가사유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져요”라는, 요즘 말로 ‘반가사유상 드립’을 쳤다고 두고두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대부분의 건축과 학생들이 편입, 특히 가정대에서 편입한 학생들을 마치 순혈이 아닌 것처럼 싫어했기 때문에 그녀의 그런 드립은 두고두고 일종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내가 가정대에 편입한 학생들을 얼마나 싫어했는지는 지금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인문학(“기표”,”기의”를 들먹거린다는 등)/철학(반가사유상 또는 뭐 노장자 등등)/전통(“고졸하다”의 의미는… 따위를 설명해놓고 굳이 전혀 고졸하게 느껴지지 않는 ‘작품’등장) 드립을 뼛속 깊이 싫어했던 나였으니만큼, 반가사유상을 보자마자 그 생각이 났고 나도 그걸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고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느껴보고 싶었다.
그리하여 입구에 벽이 있는 “독방”에 들어가니, 차분해질 수조차 없었던 게 초등학생 한 무리를 아줌마가 다그치고 있었고, 일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사진을 찍고 나갔기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이 박물관에서는 플래시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는 표시를 보았던지라, 바로 나는 심사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아줌마는 안내였는데, “일단 내 설명 똑바로 앉아서 들어”라는 강압적인 말투를 아이들에게 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는데, 그건 “반가사유상이 왜 의미가 있나”라는 물음에 대한 지극히 뻔한 답과 같은 것들이어서 나는 사람들이 아무리 교육이 잘못되었으니 고치자고 해도 절대 고칠 수가 없는 것이, 바로 저러한 것들이 생활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평소의 믿음을 다시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어린이들이 과연 그걸 보고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생각도 하기 이전에, 아이들은 지금까지 전해내려온 사람들의 반가사유상에 대한 지식을 한치의 여유도 없이 주입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얼마나 인내심이 있겠느냐만, 정말 잠시라도 그 앞에서 무엇이라도 생각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반사사유상이 미술사적으로 의미있는 이유는, 바로 저 표정 때문이에요. 저 표정은…” 그러니까 아이들은 저 표정이 어떤 느낌이나 의미를 주는지 자기가 먼저 생각해보는 것이 아니고, 일단 저렇게 주어진 답을 가지고 거기에 맞춰 가야만 한다. 생각하기 이전에 답이 떨어지고, 그 떨어진 답에 자기 생각을 맞추지 않으면? 곧 혼날지도 모른다. 아, 나도 반가사유상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그 크기며 표정이며 재질이 가진 느낌이 정말, 15년 동안 비웃었고 앞으로도 비웃겠지만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차분함을 음미하기도 힘들게, 그 답을 불러주는 아줌마의 고압적인 설명은 내가 전시실을 나설때까지 이어졌고, 몇몇 아이들은 사진을 찍었다. 나는그 두 상황 모두가 너무 싫어 곧 전시실을 나가는 아줌마를 붙들고, 사진 촬영이 안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아줌마는 곧, 자기는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다가 직원도 아니고 봉사라며 발뺌하려 했다. 마침 직원이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나는 그 직원에게 다른 곳은 다 사진을 찍을 수 있어도 여기는 안된다고 이렇게 붙여놓았는데, 그게 정확하게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다고 물었다. 그 역시 찍어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는 식의 뉘앙스를 풍겼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면 저걸 고쳐 붙여야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박물관의 천장에는 딱히 그 용도를 짐작하기 힘든 볼록거울의 무리가 붙어 있었고, 나는 그게 왜 붙어 있는지 궁금했다. 근처에 있던 젊은 여직원에게 거울의 용도를 물었으나 그녀는 모른다며, 박물관 사이트에 들어가서 물어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박물관에 와서 건물에 대해서 궁금한 것을 박물관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사이트에 들어가서 물어보라고 말하는 건 말이 안되지 않냐고 되물었더니 그녀는 도망치려는 눈치였고, 마침 그 자리에 나이가 지긋한 남자 직원이 등장했다. 그는 저 거울이 조명을 반사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해주었고, 나는 다시 한 번 불상전시실의 사진 촬영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그 역시 이제는 사진 촬영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고 알려주겠으니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했고, 나는 명함을 건넸다. 대강 건물을 돌아보고 철길 건너편 주택가에서 점심을 먹고 평창동으로 향하는데, 그가 전화를 해서는 이제는 사진촬영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알려주었다. 참 친절한 양반이었고 나는 떨었든 부렸든 진상의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치 않았으며, 그런 나를 신은 응징하고 싶었는지 충무로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경복궁역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갔던 평창동의 박물관은 증축으로 인해 문을 닫은 상황이었다^^
# by bluexmas | 2010/03/28 00:45 | Life | 트랙백 | 덧글(19)
중앙박물관은 크기는 참 크죠. 다만 제 친구 의견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포인트가 될만한 유물이 뭔지 잘 모르겠더군요. 제법 괜찮다싶은 것은 건희 형네 리움미술관에 꽤 있더군요;;
평창동의 화정박물관에 가봤었습니다. 현재 문을 안 열고 전시품도 철수했다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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