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남하
통영 충무마리나 리조트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온 어딘가의 펜션에 있다. 지금 시간에 사람이 안 오면 어차피 빈 방으로 놓아두는 것일텐데 그래도 7만원을 받겠다고 하는 곳이 있었다. 이런 평일에 여기까지 와서 펜션에 묵을 수 있는 사람은 나처럼 프리랜서를 가장한 반 백수밖에 없지 않나… 그래서 아까 무슨 일주도로를 그야말로 일주하면서 봐두었던 펜션에 짐을 풀었다. 여기에서도 방값을 비싸게 부른다면 아까 저녁으로 도다리쑥국을 먹던 식당에서 말해준 동네에 가서 모텔에 묵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닭장과 같은 모텔에 그것도 나 혼자 가서 묵고 싶지는 않았다. 모텔이 존재하는 의미는 숙박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혼자 숙박하러 가면 온 공간을 휘감고 있는 사랑의 아우라에 온몸이 뻗뻗하게 굳어버린다. 그래서라도 모텔에는 묵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아예 인터넷이 안되는 곳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불행스럽게도 인터넷이 된다. 해안선 언덕받이에 자리잡고 있는, 그야말로 뜬금없이 디자인한 모텔에서도 인터넷이 되니 이제 인간은 인터넷의 “그물”로 부터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멀리까지 온 건, 사실 꽃구경도 봄바람도 아닌 일 때문이다. 며칠 있으면 부모님도 튀지니에서 돌아오시고 그럼 아무래도 차 쓰기가 불편해질텐데, 그 전에 어딘가 한 번도 안 가본 곳에 가서 무명작가 ‘드립’을 쳐 보고 싶었다. 그야말로 하루 종일 앉아서 뭐가 쓰기만 하는, 바로 그것이다. 이제 마감이 5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짐을 진짜 대강 챙겨서 먹던 시오 코나의 빵 한 봉지와 아몬드 두 봉지, 카메라와 넷북, 그리고 윤대녕의 지난 번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만을 챙겨서 나왔다. 집 앞 주유소에서 기름을 가득 채우고, 현금을 얼마 뽑은 것이 전부이다. 오는 길에는 요즘은 잘 안 쓰게 된 아이팟 클래식를 셔플로 돌렸는데, 네 시간 동안 정말 다섯 곡 정도밖에 건너뛸 필요가 없을 정도로 노래들이 좋았다. 그래서 경치는 제대로 구경하지 않고 속도위반 감시 카메라와 노래에만 신경을 쓰면서 운전했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음악을 실컷 들었다. 기계적인 일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절대 음악을 듣지 않기 때문에 요즘 정말 음악을 많이 듣지 못했다.
고백하건데, 나는 우리나라를 잘 모른다. 미국에 간 다음 이상하게도 여행운이 트여서 이곳저곳 많이 다니게 되었지만, 그 전까지는 해외는 고사하고 우리나라도 거의 다녀보지 않았다. 몇몇 중소도시는 아버지의 동창회와 같은 모임들 때문에 가보았던 기억이 아주 어렴풋이 있기는 한데, 그것도 비만어린이로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답게 평소에는 잘 먹지 못하는 귀한 음식들을 평소라면 먹지 못하게할 어머니의 감시가 다른 어른들과의 대화로 뜸한 틈을 타 과식하고는 괴로움에 몸부림 치는 따위의 것들로 점철되어 있다. 제주도? 물론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어딘가 돌아다니고 싶은 생각은 사실 없다. 그래도 집처럼 생긴 공간을 빌렸으니 하루 종일 앉아서 일이나 했으면 좋겠다. 밖으로 난 창으로는 바다가 보인다. 뭐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쳐박혀 있고 싶다. 내일 아침에 동네 구멍가게에서 계란이나 사다가 삶아놓고는 그걸로 연명하면서 있어야겠다. 통영이 우리나라 최대의 미식도시 둘 가운데 하나라던데 그렇다면 통영 계란도 맛있지 않을까. 참고로 아까 먹었던 도다리쑥국은 만원이라는 가격에 비해서는 그저 그랬다. 조미료가 심심치 않게 들어있었던 듯.
# by bluexmas | 2010/04/13 21:15 | Life | 트랙백 | 덧글(25)
일과 휴식 잘 병행하시구요. 저도 작가 노릇 해보고 싶은데 여유가 없네요~
펠로우님도 가신 중국집만 모아서 하나로 엮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산에도 바다있다~’고 말하고 싶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글쓰기에 완벽한 장소는 ‘통영’이겠군요. 휴가도 관광도 아니고 ‘창작여행’이라니…너무 부럽습니다.ㅠㅠ
통영에는 맛있는 것도 많던데(술안주에 적합한 ‘통영다찌’…?)
계란만 드시지마시고 싱싱한 해산물도 좀 드시는게 좋을 듯~
그때 동피랑 마을 갔던 게 좋았는데 케이블카는 못 타고 왔지요 ㅜ_ㅜ
***꿀빵도 먹어보시고, 그 우짜면인가? 무튼 그게 진짜 거기 있는지도 알아보고 와주세요.
좋은 휴식 되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