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전구로 보는 삶의 번거로움
화장실의 등 두 군데가 거의 한꺼번에 나가버렸다. 삼파장인데? 기억하기로 삼파장 전구를 쓰기 시작한 다음부터 제 수명을 다해 못쓰게 된 전구를 본 기억이 정말 드물다. 버리고 온 미국의 집은 처음 이사하자마자 ‘조금이라도 전기를 아껴야지’라며 전부 삼파장을 사다가 멀쩡한 백열전구를 빼놓고 갈았는데 버리고 올 때까지 수명이 다해 전구를 간 기억이 없었다.
어쨌든, 열어보니 삼파장이라고 생각되는 길쭉한 전구가 들어있는데, 이게 어째 돌리지 않고 핀으로 꼽는 방식인 게 그렇게 흔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래서 이마트나 롯데마트를 뒤져보았으나 예상대로 실패, 병원 다녀 오는 길에 있는 홈플러스에도 들렀으나 역시 실패.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려다가 귀찮고 바빠서 계속 미루다가 오늘, 드디어 외출하는 김에 전구를 들고 나갔다. 청계천 조명가게들에서는 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세운상가 쪽으로 가는 그 언저리에 있는 몇몇 가게들에는 어째 가능성이 없어보여서 제끼고, 상가 거의 다 다다라서 있는 가게에 들어가니 주인이 자기도 딱 한 번 팔아본 것이라며, 대리점에 전화를 해서나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전화를 걸어보니 내가 가지고 온, 그러니까 노란색이 도는 건 없고 흰색이 도는 것만 있다고 한다. 가격은 개당 4천원. 이쯤되면 정말 관리사무소에 확인을 해야될 것 같아서 부랴부랴, 문 닫기 전에 퇴물 아이폰으로 무선 신호를 훔쳐 구글로 검색해서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단지 앞 수퍼에서 파는데, 글쎄 가격은 무려 7천원! 가뜩이나 그 가게 마음에 안 들어서 일부러 길 건너 가게까지 가는 사람인데 거의 두 배 가격을 받고 파는 이 폭리는 과연 무엇인가… 아니 대체 누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희귀한 전구를 썼냐고 따지자(시방서에 그렇게 썼을 듯? 그렇다면 완전 이 바닥 사람들의… 아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공동구매한다고 방송도 했다고 하는데, 나는 방송 듣기 싫어서 아예 전선을 끊은 용자니까…
어쨌든 통화를 통해 여기에서 싸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바로 눈에 띄는 한 가게에 들러 물어보았으나 역시 근처 어딘가의 대리점을 가라고 알려준다. 알고 보니 그 곳이 바로 아까 거기에서 전화를 걸어 확인했던 그곳. 색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 그냥 달라고 하고 가격을 물어보니 3천원! 결국 천원 더 싸게 사는 셈이었다. 부업으로 이거나 떼다가 5천원에 팔면 짭짤할 것 같다는 생각에 천 개씩 사러 오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가게를 나섰다. 그래서 근 한 달만에 화장실 전구를 갈아 밝은 가운데 면도를 할 수 있게 된 건 좋은데, 가는 와중에 헌 전구 하나를 놓쳐 바닥에 떨어뜨려 깨뜨렸다. 결국 바닥을 쓸고 물청소까지… 이쯤 되면 화장실 전구 하나로 삶의 번거로움을 정말 제대로 맛보았다고 할 수 있겠지?
# by bluexmas | 2010/06/24 03:01 | Life | 트랙백 | 덧글(18)
집에 몇 개 굴러다니는데 우리집 거랑은 핀이 안맞아서(집 전구는 핀 두개 + 가운데 사각)
구석에 처박아두고 있네요 ;;
그래도 즈이동네 마트는 없는 물건 때문에 한숨쉬고 가면 다음에 갔을때 구비해놓고 그렇더라구요.(찾는 사람이 없어서 치운지 오래고 입고도 안한다고 했던거라 괜히 혼자 설레발치며 감동했던;ㅎ) 블루마스님댁 근처 마트도 다음부터는 구비해놓았길 바라는 마음으로 통통 써봅니다.
저희 집 화장실 하나도 전구 나가서 사러 갔는데
마땅한 게 없어서 백열등(?) 같은 거 사왔던데
‘전구’ 같은 거 상당히- 까다로운 거였군요
가끔 구매하는 소비자가 가격을 잘 모를테니, 바가지 씌우는 조명가게는 어느 동네에 가도 있습니다.. 저희 동네에도 -이젠 문닫았지만-할아버지들이 항상 장기,바둑만 두고 있는 철물점이 있었는데, 멋모를땐 옛날식 긴 형광등도 5천원 주고 사곤 했습니다. 나중에 다른 조명전문점이 들어선 후에, 오스람의 좋은 전구/형광등도 2천~3천원 정도인 것 알곤 황당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