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로 탈출 작전과 독일 및 월드컵과 축구 잡담

1. 금요일엔 기차에서 졸다가, 오산역에 다다랐을때쯤 깨어 허겁지겁 짐을 챙겨 내렸는데, 그러고 나서야 우산을 안 가지고 내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우산을 버려야 하나… 생각하다가 다시 기차에 뛰어들어 타고 있는 사람들을 밀쳐내고 다시 기차를 빠져 나오려는 순간, 계단은 이미 올라와 있었고 문이 스르륵 닫히려는 찰나였다. 서정리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기 싫어서 잽싸게  플랫폼으로 몸을 날렸다. 거의 비루한 액션영화를 찍는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우산을 버리든지 서정리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든지 하면 될 걸, 둘 다 놓치기 싫어서… 이렇게 살다가 언젠가는 큰 사고를 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에 언제나 휩싸여 산다. 사는 건 참 두렵다. 그 우산은 내가 좀 아끼는 ‘아메리칸 투어리스트’의 것이다. 다른 우산도 잔뜩 있지만 잃어버리거나 못쓰게 되면 똑같은 것으로 또 살 것이다.

2. 이번 월드컵의 독일 경기를 제대로 본 기억이 별로 없는데, 16강전인가에서 두 번째 골이었나…? 말로 설명하기도 힘든 그 광경을 보고 축구는 개뿔도 모르면서 언젠가 보았던 독일의 축구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축구가 다르다는 느낌이 이상하게도 들었다. 그래서 독일이 좀 잘 나갈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르헨티나를 박살냈다. 바로 그 전날 친구와 문자를 주고 받는데 그는 브라질을 우승후보로 꼽았으나 몇 시간 뒤 벌어진 경기에서 브라질은…

3. 나는 축구를 잘 모르지만, 각 나라의 팀들이 오글오글 움직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움직임이 조금씩 다른 덩어리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아마 축구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이런 느낌은 당연한 것이겠지? 독일은 뭔가 큰 것들이 그에 맞지 않을 정도로 은근히 치밀하게 움직이는 느낌이고, 네덜란드는 그런 느낌이 조금 더 작은 것들이 움직이는데 더 일사분란하면서 차분/침착하고 또 더 치밀한 느낌? 그리고 어제 스페인의 경기를 보니 그런 네덜란드의, 작은 것들이 치밀하게 움직이는 느낌에서 조금 더 부드럽고 우아하면서도 침착한 느낌이랄까… 뭐 그런(내가 정말 뭘 알겠느냐만). 그런데 정작 우리나라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애국심이 없어서 그런가봐. 나는 부모님 덕분에 네덜란드에 대한 알 수 없는 애착이 있으므로 네덜란드가 우승했으면 좋겠지만 예감에는 독일이 할 것 같다.

4. 월드컵 중계로 바쁜 친구와 간만에 문자를 주고 받은 김에, 김병지 해설의원을 향한 나의 사랑을 좀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말을 잘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또 그렇다고 못해서 못들어주겠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축구 경기에서는 과연 어떤 해설자가 이상적인 걸까? 나는 언제나 야구를 즐겨 보는데, 순간적인 동작으로 이루어진 야구에서는 오히려 적당한 만담 수준으로 해설자가 말을 계속해도 된다고 생각하는데(이를테면 빈 스컬리. 야구 안 봐도 되잖아, 그가 해설하는 것만 들으면…), 축구는 연속적인 동작이 계속 되고 그 모두의 움직임을 한꺼번에 봐야 하므로 오히려 해설자가 너무 말을 많이 하는 것이 거슬린다. 뭐 나는 문외한이니까… 어쨌든 그는 듣고 있으면 내가 아직은 잘 못하니까 오바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제갈@렬이라는 분이 태초에 계셨다고 하는데 그 분의 전설은…

5. ‘다비드 비야’와 같은 선수의 이름 덕분에 스페인어에서의 ‘ll’ 발음에 대한 계몽이 조금 더 될 듯…? (토마틸로/퀘사딜라, 아 그만 해야 되는데 나는 정말 심심하면 이걸 끄집어내서-_-;;)

6. 축구는 문외한이지만 그래도 보고 있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순전히 운동 잘 하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나 대리만족 때문이겠지.

7. 다시 체육관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돈 내놓고 두 달 동안 안 갔는데 요즘은 더 개판. 화장실은 더럽고 신발장에는 냄새나는 운동화가 넘쳐나고, 아줌마와 아가씨의 육체적  경계선 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어떤 여성분께서는 분명히 이어폰으로 들어야만 하는 텔레비젼을 가장 큰 볼륨으로 찢어져라 틀어놓고 우아하게 운동을 하고 계셨다. 내 안의 진상이 고개를 들려 했으나 계속 찍어눌렀다. 운 동 그렇게 해서 몸만 우아해지면 뭐하냐고…

8.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심장이 커지고, 또 그만큼 느리게 뛰어서 좀 그렇다는 진단을 받았다.

 by bluexmas | 2010/07/05 00:31 | Life | 트랙백 | 덧글(16)

 Commented by h at 2010/07/05 00:46 

하하, 맞아요. 특히 독일은 큰 사람들이 검은색 옷을 입고나와서

왠지 더 일사분란해 보이는 인상! 바둑알(!)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있는것이

신기하기도 하구요. 경이로운 기분까지 들었는데 왜인지

독일이 이기는건 참 별로인거 있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06 14:32

전쟁의 책임을 지고 있는 국가라는 인식을 지워버릴 수가 없어서 그런 건 아닐까요? 유니폼도 그런 느낌이 어째 좀 나지 않나요? 근데 축구는 정말 무섭게 하더라구요…

 Commented by pmouse at 2010/07/05 02:41 

앗. 퀘사딜라는 퀘사디야..가 원발음(?)인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었는데,

토마틸로..는 사실 토마티요(?!)인 것인가요?

(축구 얘기는 몰라서 맞장구 못 치고… 사소한 걸로 덧글 달아서 죄송합니다 orz)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10/07/05 09:50

쥔장 말씀이 그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06 14:33

아이고 저도 축구 모릅니다. 죄송은요 무슨 말씀을 제가 더 죄송스럽죠…ㅠㅠㅠ 서생님께서 말씀하신 그게 바로 맞습니다.

 Commented by pmouse at 2010/07/06 19:23

오오. 그랬군요. 하나 배워갑니다. 서생님 블루마스님 감사합니다 🙂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10/07/05 08:20 

스포츠 심장이 되신거군요….

전 스포츠 심장에서 병약자 심장으로 바뀐것 같아요..ㅠㅠ;;;

고등학교때만 해도… 아니 대학교때만해도… 1분에 50번대 밖에 안뛰던 심장이… 지금은..ㅠㅠ;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06 14:33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평소에 너무 기운 없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듣는거죠.

 Commented by 푸른마음 at 2010/07/05 08:33 

아주 위험했네요.

분실물은 최대한 빨리 신고하면 승무원 등 관계자가 회수하여 역으로 보내줄 수 있으니

위험한 행동은 자제하시길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06 14:34

그러게요 완전히 멍청한 짓을 했지요… 그래도 스릴은 좀 넘치더라구요;;;;;

 Commented by 러움 at 2010/07/05 11:06 

운동하면 심장이 커지는군요. 제 심장은 탁구공보다는 좀 클런지 걱정스럽습니다. -_ㅠ..

아휴 그런데 맨 처음 내용은 읽기만 해도 덜덜 떨리네요. 그러다 다치시면 그 비용이 더 클텐데요.ㅎ;;;;;; 조심하시어용. ^^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06 14:34

에이 설마 탁구공만 하려구요;;;; 그보다는 크리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에는 좀 조심하려구요.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그러고 사는지 저는 참 철이 없지요;;;

 Commented by cleo at 2010/07/05 12:29 

저도 ‘베르캄프’ 시절부터… 네덜란드팀 좋아합니다.

( 단지, ‘유니폼이 이쁘다’는 그 이유 하나 만으로도-.-;;;)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06 14:35

예전 오렌지 유니폼보다 이번 유니폼이 더 세련되었다는 생각이 들던데요. 네덜란드는 여러모로 참 좋은 나라죠. 작지만 볼 것도 많고, 해변도 은근히 아름답더라구요.

 Commented by sabina at 2010/07/06 14:25 

광화문에 있는 토마틸로 볼 때마다 그 생각했네요. BLH의 <아메리칸 버티고>의 역자는 끝까지 라 호야를 라 졸라라고 써서 제가 책을 읽으며 짜증스럽게 하나하나 체크했는데 귀찮아서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진 못했어요. 그나저나 토마틸로에서 파는 타코나 퀘사디야나 다 그냥 그런데 왜 장사가 잘 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10/07/06 14:37

(아이고 저도 아마 번역하면서 발음을 틀리게 표기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정말 ‘라 졸라’는 ‘졸라’ 웃기는 군요. 그건 좀…아아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예전에 글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름부터 틀려서 토마틸로에서는 음식을 제대로 할 것 같다는 기대가 없어졌고 따라서 아직도 먹어보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