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 잡담

어제는 기나긴 시간 동안 잠을 잤다. 80퍼센트 정도의 잠이었다. 자다 보면 잠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낀다.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면 100퍼센트의 잠이 된다. 그러나 나는 그걸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므로 잠은 80퍼센트 정도에서 머문다. 그나마 그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 팽게치고 잘 수 있다는 건 그래도 아직까지 마지막 선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까지 무너지면 나는 끝이다.

오늘은 술을 마셨다. 요즘은 ‘아 오늘 술을 마시니 좀 맛 가보자’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도 망가진채로 사는데 그 정도를 처음부터 용납하고 술을 마시면 아마 나는 길에서 쓰러져 죽어버리거나 어딘가를 달리다가 강물로 뛰어들 것이다.적당한 수준에서 멈춰야지, 라고 생각한다. 물론 적당한 수준은 매일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대개 비슷한 정도로 망가지다가 막을 내린다. 그 이상은 몸이 거부한다.  오늘은 일행이 한 시간 반 늦어서 혼자 대동강 맥주 두 병을 마셨다. 그래서 정작 사람을 대하고 나서부터는 술을 마실 수 없었다. 작은 횟집은 회식 손님으로 가득했다. 바로 옆 자리에서는 나보다 어려 보이는 누군가가 그보다 더 어려보이는 누군가들에게 ‘아 내가 전체 메일 좀 보내면 응답 좀 해주라…’ 라며 빌빌거리고 있었다. 대단히 미안하지만, 회사에서 아랫사람에게 뭔가 요구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가정이든 뭐든 자신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그게 안 먹히기 때문에 회사의 지위나 상황을 빌어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마누라한테 사랑한다고 메일 보내고 거기에 답장 안 오면 슬퍼하는 게 낫지 않나? 괜히 자기가 일 시켜서 바쁜 부하직원한테 ‘금요일의 행복 편지’ 이런 거 긁어다가 전체메일 돌려놓고 답장 안 왔다고 쌓아뒀다가 싸구려 소주 몇 잔 마시고 부하직원 타박하지 말고? 내가 정말 그런 알랑한 권력 손에 쥐기 싫어서 회사를 안 다니고 만다. 남자는 그걸 군대에서 맛본다. 스물 둘 짜리 병장이 스물 하나짜리 이등병한테 피던 담배 꺼서 버리라고, 코푼 휴지 곱게 접어서 버리라고 주는 곳이 우리나라 군대다. 내가 37년 살았답시고 35년 산 사람에게 인생의 교훈을 주려고 하면 뭐 그게 얼마나 먹히겠나? 내가 47년 살았다면 또 모를까… 어쨌든 회식도 싫고 난 그런 인간도 싫다. 술자리에서 술의 힘을 빌어서 할 얘기면 그냥 맨 정신에 해. 니네들이 내 메일 씹어서 기분 나쁘다고. 유치한 인간들. 뭐가 그렇게 허심탄회해. 아무에게나 아무 얘기나 할 수 있는 거면 삶이 참 가볍고 편하지 않겠냐?

그렇게 회식을 위해 작은 횟집을 가득 채운 인간들 사이에서 나는 미국의 J에게 메일을 썼다. 몇 달 전에 그는 나에게 메일을 보내서, 모 회사가 우리나라에 진출하려고 디자이너를 모집한다던데 뭐 생각없느냐고 얘기했었다. 모두들 우리말로, 술기운을 빌어 목소리를 높이는 그 한 가운데에서 나는 되도 않는 영어로 메일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에 웃었다. 이건 뭔가 ‘코스모폴리탄’하지도 않다. 그냥 병신같다고 생각했다. 회식도 병신같고, 거기에서 혼자 멸치볶음 안주에 대동강 맥주를 마시며 한 시간 반 늦는 동성 일행을 기다리다가 못해 영어로 이메일을 쓰는 나도 병신같다고 생각했다. 세상 모두가 병신이라면, 스스로 병신임을 인정하는데 게으르거나 거리낌 없는 나 같은 인간이 진짜 병신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진짜 병신 취급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진짜 병신은 자기가 병신인 걸 부정한다. 가짜 병신은 ‘뭐 적극적으로 부정하면 내가 더 병신같이 보이겠거니’ 생각해서 그러지 않다가 결국 진짜 병신 취급을 받는다. 허세를 알면 무서워서 허세 떨지 못한다. 허세가 뭔지 모르면 무서운 것도 없어서 마음 놓고 떤다. 같은 맥락에서, 외로움이 뭔지 알면 감히 자기 입으로 외롭다고 말하지 못한다. 외로움이 몰라서 뱉는다. 화해하고 싶으면 낯뜨거워서 그 단어를 입에 담지 못한다. 그게 얼마나 손발이 오그라드는 행위인지 겪어봤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람만이 악수하자고 난리를 친다. 그러나 화해는 악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게 그런 것이었으면 아무도 누군가의 치솟는 분노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 뭘 모르는지 모르면 그래도 사는 게 덜 괴롭다. 뭘 모르는지 알면, 그때는 다른 세상이 열린다. 이런 이야기가 당신을 짜증나게 한다면 바로 링크를 끊으면 된다. 블로그에 올리는 이런 글 읽고 나를 알 것 같다는 사람도 지겹고 그래서 책 안 봐도 알겠다는 사람에게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나는 화해도 하고 싶다) 누군가는 음식글이 왜 안 올라오냐고, 맛집 블로거로 알고 있는데 이딴 글만 올라오냐고 불만을 토해낼지도 모른다. 그저께 모 호텔 한식당에서 11만 3,500원 쓰고 삶의 회의를 느꼈다고 얘기해주겠다. 그 기분 아나, 남들이 다 맛있다고 말하는 음식에 피보다 더 진한 113,500원 쓰고서 이마트에서 두 봉지에 3,500원 하는 것보다 더 못한 굴이 올라올 때 거기 앉아서 병신같이 무거운 은수저를 놀리고 있는 내가 죽이고 싶도록 미워지는 그 참담한

 by bluexmas | 2011/02/26 04:10 |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