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부업에 관련된 마지막 commitment (이상하게 우리말로 대체하면 그 느낌이 나지 않는다…)이 있었다. 하기 싫은 일은 소파에 누워 자면서 끝까지 미루는 버릇이 있어서 자다깨다를 되풀이하다 결국 새벽 두 시에 일어나서 밤을 새웠다. 가보니 딱히 그럴만한 보람이 없는 상황이었다. 부업은 끝까지도 한치의 양보없이 그렇게 기대를 깨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난 6개월+20일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삶은 언제나 드라마 같은데 이것도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넣은 만큼의 대가를 받지 못한 것 같다는 말은 이제 나조차도 지겨워서 하기 싫은데, 정말 이 부업은 그러한 일들 가운데서 정말 대박으로 바닥을 친 일로 기억될 것이다. 그간 많은 일들을 겪었다. 다만 되새기고 싶지 않아 서랍속에 닥치는대로 구겨 넣었다. 언젠가는 꺼내 다시 편 다음 한쪽 귀퉁이부터 잘근잘근 씹어 삼키고 되새김질할 것이다. 일단 여름까지는 아무런 생각없이 넘겨 보낸 다음에.
상황만으로는 의욕이 전혀 생길 수 없었지만 그래도 또 하다보니 재미를 느껴서 마지막에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으나 이것이 늘 느끼던 그 싸구려 성취감이라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이런 내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에 ‘좋아서 한다’ 또는 ‘재미있어서 한다’라는 것만으로 받아야만 하는 대가를 규정한 다음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것보다 더 짜증나는 상황이 있다. 조직같지도 않은 조직에 발을 들였는데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소외감 비슷한 걸 느끼는 것이다. 정말로 그러한 상황이 있었는지, 아니면 나의 예민함+피해의식이 그렇지 않은 상황을 그렇게 느끼도록 만들었는지 따지고 들면 뭐라 할 말은 없다. 어쨌든 기분은 나빴다. 그래, 물론 내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을 싫어하기는 한다. 나의 제스춰에 드러날 것이다. 모르는 사람을 싫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르는데 아는 체하는 사람은 병적으로 싫어한다. 그대로 묻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건 나도 어쩔 수 없다.
누군가 나보고 ‘다시 건축을 하지는 않을 거냐’라고 물었다. 부모님도 안 물어보는 걸 묻는 사람의 용기는 과연…
동물의 살이나 뼈로 낸 국물을 안 먹은지 오래 되었으므로(예외로 며칠 전에 삼겹살의 기름을 오래 내서 독한 김치찌개를 끓여 먹기는 했다. 아직도 먹고 있다. 닭은 먹지 않았다. 복인지도 몰랐다) 도가니탕이나 먹으러 갈까 생각했는데 목표 식당이 문을 닫는다고 해서 그냥 우래옥에 가서 냉면을 먹었다. 대기가 무려 60명이었는데 혼자 온 손님은 나 혼자였다. 모두 가족모임이었다. 딱히 이상할 건 없었다. 많이 겪어본 상황이니까. 나와 이런데 같이 오는 가족 구성원은 투명인간이라 눈에 띄지 않는다. 식욕마저도 투명하다보니 딱히 뭔가 먹지는 않고, 그저 내가 먹는 걸 투명한 시선으로 투명하게 바라보기만 한다. 대부분의 음식포스팅은 그들과 함께 가서 먹은 다음 올리는 것이다. 20대의 아들과 부부가 앉은 자리 귀퉁이에 앉아 냉면을 먹었다. 냉면 기사가 실렸으므로 지난달 월간 조선이 대기석에 놓여 있었는데 내 기사도 실려있었으므로 기분이 좀 묘했다. 손님이 많았지만 냉면은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거의 물로 배를 채우고 천천히 걸었다. 동대문에서 버스를 내려 걸었으므로 거기에서 을지로를 따라 명동을 거쳐 신세계까지 걸은 셈이었다. 이제는 정말 아이패드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몇몇 매장에 들러보았으나 없다고 했다. 소시민이므로 지극히 소시민다운 쇼핑을 해서 운동할때 신는 양말 몇 짝과 을이므로 소망을 담고 찾는 갑(Gap) 매장에서 티셔츠 몇 벌을 샀다. 단 것이 먹고 싶어 신세계 본점 지하에서 오랜만에 리터 스포트를 사서는 이태원으로 넘어가 커피를 마시고 초콜릿을 먹었다. 화이트 초콜릿에 헤이즐넛이 섭섭치 않게 박힌 것이었는데, 차라리 더 진한 맛이 나도록 구운 다음 다크 초콜릿과 짝을 짓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맛있기는 했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렇지 않아도 가려던 맥주집이 바로 근처라는 것이 기억났다. 건너가 사람들이 곧 사라진 바에 혼자 앉아 우리나라에서 빚은 에일 두 종류를 마셨다. 전자는 별로였지만 후자는 훌륭해서 흑인 여자 바텐더에서 ‘I am crying inside now’라고 농을 던졌다. 영어 농담은 이제 백만년에 한 번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6호선을 타고 합정까지 가려 했으나 차라리 버스를 타고 다시 산을 넘어가는 편이 낫다는 생각에 오는 143번에 몸을 실었다. 역시 조금 더 빠르고 덜 귀찮았다. 명동에서 내려 광화문까지 걸으려 했으나 시청에서 귀찮아서 그냥 오는 2호선을 다시 탔다. 합정역에서 6712번을 금방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멍때리고 있는데 지난 몇 달간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일을 통보하는 메일을 드디어 받았다. 때가 드디어 된 것이다. 답장을 바로 보내고는 인터넷을 뒤져 무약정 3G 64기가 아이패드를 주문했다. 8월 한 달 동안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왜 나는 돈도 못 버는 일만 자꾸 하고 싶은가 모르겠다.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 그런가? 아닐텐데.
# by bluexmas | 2011/07/18 03:16 | Life | 트랙백 | 덧글(9)


(설마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글 쓰시는건 아니시죠??)
그나저나… 이제 집 정리다 되셨으면… 마포로 마실좀 오시죠..^^;;

요즘은 마포로 출근하세요? 거기 돼지갈비집 있다던데.

돼지갈비집이면……
지난주에 갔던 그곳이려나….
전 마포의 막걸리집 가자고 꼬시는건데…^^;;


아이패드 좋지요. 액정필름에 케이스, 이런 저런 악세사리 구매가 이어지려나요? ^^



<왜 나는 돈도 못 버는 일만 자꾸 하고 싶은가 모르겠다.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 그런가? 아닐텐데. >
이부분에 심연과도 같은 깊은 공감을 던지며 가요
하고싶은 일이 좀 돈 착착 버는 일이고 그러면 좋았을텐데
아 그리고 아이패드 구매하신 축하드려요
혹시 아실지 모르나 ommwriter라것는 어플 한번 기회되면 사용해보세요
일종의 워드프로그램? 인데 재밌더라구요 사실 아이맥 큰 화면으로 봐야
이 어플의 진가가 확 드러나기는 하는데 얼마전에 아이패드 버전으로도 나왔길래요 🙂
http://www.ommwriter.com/en/download-ipad.html

저는 하는 일을 바꾸는데 계속해서 돈 못 버는 거로만 고르네요ㅠㅠ 팔자가 이래요 ㅠㅠ
사실 앱 같은 거 거의 신경 안 써요. 근데 아이패드는 꼭 쓰려는 기능들이 있어서 좀 열심히 찾아보려구요. 필기 인식 같은 거 해주고 그러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