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영화

몇 년 만에 전력으로 영상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기록도 남긴다. 영화관에서 본 개봉작만 선별했다.

1. 세계의 주인

트위터의 감상평들만 보고 정말 아무런 정보 없이 보러 갔다. 내용도 배우도, 심지어 ‘우리들’의 윤가인 감독 연출작이라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알았더라면 좀 더 빨리 움직였을 텐데. 여러모로 관람평이 갈렸고 특히 ‘이런 영화임을 미리 고지해야 하지 않았을까?’라는 의견까지 보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또한 감독이 감추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이런 소재로 이렇게 진행되는 영화도 있다고 보는데, 다만 감독이 나서서 ‘스포일러 없이 보아주었으면 좋겠다’라고 개입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고 믿는다. 원하지 않더라도 스포일러에 노출될 수 있는 현실에서 자칫 잘못하면 ‘에이 어떤 영화인지 본의 아니게 알았으니 안 보러 갈래’라고 나올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안 보기에 ‘세계의 주인’은 너무나도 아까운 영화이다. 나도 힘들어서 한 번 예매를 취소했다가 내리기 하루 전인가 간신히 보러 갔는데 나오면서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감독-작가의 섬세한 마음이 좋았다. 이런 섬세함이 어쩌면 자본주의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영화의 세계에서 살아 남아 극장에 걸릴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었다. ‘어쩔수가 없다’를 보고 박찬욱 감독의 교만함이랄지 무성의함에 질려 중간에 나오고(난생 처음이었다…) 관심을 끊어버렸던 터라 이 영화의 존재감이 고마웠다. 나름 정화되는 느낌이었달까.

누군가는 소재와 그걸 다루는 방식 때문에 이 영화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나는 그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영화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라 믿는다. 물론 나는 나이므로 그 마음을 다 이해한다고 그러면 거짓말이겠지만… 또 나름 이해할 수 있는 이유도 적지는 않다. 어쨌든 나에게는 ‘세계의 주인’이 올해의 영화다.

2. 씨너스: 죄인들

1930년대 즉 금주령 시대 미국 남부에서 벌어지는 흡혈귀물이라니,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기대했고 보답을 받았다. ‘블랙 팬서’를 보고 라이언 쿠글러가 MCU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 철썩같이 믿었건만 채드윅 보스먼이 요절하는 바람에… 하지만 덕분에 약간 중구난방 블랙홀이 되어 버린 MCU로부터 벗어나게 된 건 아닐까 생각한다. 공포, 액션, 섹스에 음악까지 골고루 갖추었는데 또 그 요소들의 안배도 좋고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다. 금주령과 흑백 차별 등등을 축으로 무겁게, 섹스와 음악을 바탕으로 적당히 가볍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런 균형감이 이 영화 최대의 미덕이다.

3.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생각해보면 나는 PTA의 팬이었다. 이래저래 그의 연출작을 거의 다 봤고 최근 단행본 원고 작업을 하면서 데뷔작인 ‘리노의 도박사(Hard Eight)’도 찾아 보았다. ‘데어 윌 비 블러드’ 같은 작품 속에서 나는 그의 매력이 관객을 들었다가 놓는 ‘징함’이라고 믿어왔는데 ‘원 배틀’은 뭔가 좀 느낌이 달랐다. 어쩌면 조금은 과장된 것도 같은 익살스러움이 좋았다. 의외로 흥행이 썩 잘 된 것 같지 않던데 이런 영화를 극장에서 안 보면 뭘 보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범죄도시 5?

4.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

숙제를 하듯 의무감에서 건조하게 보았고 딱 그정도였다. 오프닝에서 1997년 1편의 글자체가 등장해 반가웠으나 길고 지루했다. 이제 정말 나이를 속일 수 없는지 ‘중안부’가 상당히 내려앉은 톰 크루즈가 깊은 바다 잠수함에서 발버둥치는 장면은 정말 보기 힘들었다. 물론 전체를 보았을 때는 좋았고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지만 이 마지막 ‘레코닝’ 두 편은 즐겁지 않았다. 한 50년 있다가 리부트하면 될 듯.

5. 프레데터: 죽음의 땅

정말 먼 길을 돌아왔다. ‘프레데터’가 1987년 발표됐으니 근 사십 년 만에 적이나 악한이 아닌 야우차가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며 주인공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훌륭하다. 나름 액션 오락 영화지만 순간순간 보여주는 존재에 대한 고뇌랄지 소위 ‘깊생’도 좋았다. 엘 패닝 선생님 최고시다.

6. 판타스틱 4: 새로운 출발

나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지도 않았다. 늘 말하지만 MCU는 각 영화가 큰 그림에서 자유로워지기 전까지는 회복 못할 것이다.

7. 브루탈리스트

재미있게 보았는데 유곽 장면은 없어도 될 것 같았다. 예나 지금이나 건축가의 고집은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