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디스 도넛의 지속 가능성

연남동 랜디스 도넛이 나에겐 풀방구리 같은 곳인데 최근에 들렀을 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앞에 세워 놓은 ‘9시 이후 50퍼센트 할인’ 문구도 그렇고 키오스크도, 진열장의 도넛들도 어딘가 모르게 내리막길을 걷는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기분 좋게 사들고 들어온 도넛들 또한 미묘하게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평소보다 기름에 좀 절어 있는 듯한 느낌에 하나는 필링의 존재감이 미미했다.
그래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브랜드는 한국에서 지속 가능한 걸까? 일단 도넛 생태계 자체에 대해 생각을 해봐야 한다. 노티드나 올드페리 같은 브랜드가 대략 오륙년 전 흥했지만 정체기에 들어섰다. 왜? 한참 고민을 해보았는데 무엇보다 일상성에서 너무 벗어났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들 브랜드는 출범하면서 차별화를 위해 지극히 한국식의, ‘뚱카롱 전략’을 채택했다. 기존의 던킨 같은 대량생산품에 비해 1.5배는 크고 필링도 많다.
이런 전략은 한동안은 잘 먹힐 수 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면 한계에 이른다고 믿는다. 너무 크고 부담스러운 나머지 일상 속의 간식으로 편입을 할 수가 없어진달까? 사실 도넛이 국내에서도 역사가 짧은 빵이 아니라서 믹스는 40년 이상, 던킨도너츠도 30년 이상 묵었다. 이들 도넛은 대체로 한두 입이면 다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양이 적다. 그야말로 커피와 함께 간식으로 먹기에 부담이 없고, 또 한 개 잘해야 두 개 먹으면 만족스러울 정도의 단맛과 풍성함을 지녔다.

하지만 노티드나 올드페리 같은 브랜드의 도넛은 그렇지 않고 랜디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일상의 간식에서 케이크류로 스스로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또 그런 가운데 약간 이율배반 혹은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도넛은 궁극적으로 도넛일 뿐이라는 태생적 한계도 무시할 수 없다. 좋은 재료를 쓰고 온갖 차별화를 꿈꾸고 또 실행에 옮길 수도 있긴 한데 궁극적으로는 튀긴 밀가루라는 인식이 그 모든 차별화의 시도를 다 덮어버릴 수 있다.
그렇다고 랜디스 도넛이 엄청나게 좋은 재료로 만든 고급이냐면… 적어도 내가 읽어본 성분표로는 그렇지 않다. 고급이 아니라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이것저것 참조하면 결국 조금 더 다채롭고 조금 더 크고 비싸고 접근성이 훨씬 떨어지는 던킨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면 ‘아 그래서 왜 랜디스(노티드/올드페리)를 먹어야 되지?’라고 현타가 오는 걸 막을 수 없다.
그것도 내가 도넛을 엄청나게 좋아하고 전문성을 매우 높이 사는 인간인데도 그렇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라면 보통의 빵집은 물론 요즘은 편의점에도 넘쳐나는 각종 크림 잔뜩 채운 빵들에게 선수를 빼앗길 수 밖에 없다. 그게 도넛에게 공정하느냐면 전혀 그렇지 않은데 또 그러는 걸 막을 수는 없는 현실이다.
물론 난 던킨을 불매하고 있으며 더 많은 도넛 브랜드들이 생겨나기를 원하지만 이런 식의 크고 금방 질리는 방향은 아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언급하는 도넛 브랜드들이 이대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거나 앞으로 걷는다면 자충수 탓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이 만약 철수라도 한다면 한국은 도넛 불모지로 한동안을 보내지 않을까?
*사족 1: 키오스크의 도입은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장사가 잘 되고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 진열장에서 어쩔 줄 몰라할 때 도입했다면 모를까.
*사족 2: 최근 올드페리에서 아주 괴상한 “도넛”을 먹기도 했다. 튀기지 않고 구운, 말하자면 흉내만 낸 도넛이었다. 내리막길의 확연한 징조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