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은 어디에 있나

서생님께 압구정동에 관한 글을 써달라는 말씀을 듣고는, 일주일 정도 생각해서 쓰겠다고 대답을 드렸다. 그리고 정말 왔다갔다하는 전철 안에서 무엇인가를 썼었다. 그러나 컴퓨터로 들여놓고 나니 어째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동안 아무 것도 쓸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무엇보다 그 동네에 속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조금이라도 ‘응 그 동네는 돈으로 만든 동네, 그러니까 아무런 의미 없는 쓰레기’ 라는 식으로, 거기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 그러니까 나보다 더 돈 많은 사람들의 삶을 질투하는 듯한 글을 쓰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쓰려면 그것보다는 더 깊은 얘기를 해야지, 누구나 할 수 있는 부자동네에서 느끼는 소외감의 토로 따위 말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에게 부러움이나 질투 같은 게 거의 없다. ‘거의’ 라고 굳이 토를 다는 이유는, 돈이 많은 건 부러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어떤 식이든지간에 그런 식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딱히 부럽거나 질투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한때는 그런 삶이 꽤 있어 보인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10년도 더 된 얘기다. 가능한한 좋은 옷을 입고, 가능한한 좋은 차를 끌며, 또 가능한한 비싼 식당에서 시간 많이 들여가며 고급스러운 음식을 먹으면 그게 곧 행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진열장 또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찾은, 괜찮아 보이는 옷을 실제로 입어보면 치수가 안 맞거나 색깔이 안 어울려 결국 놓고 나오게 되는 것처럼, 어떠한 조건 아래에서 그 비슷한 삶을 경험해보고 나니 그게 뭐 생각한 것보다 훨씬 번거롭고 귀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맞지 않는 삶이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그런지,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그 동네를 지나가게 되지만, 어떤 사람이 어디에서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아도 마음의 동요가 별로 없다. 그 그림에 나를 집어 넣어봤자 별 볼일이 없다는 사실을 예전의 경험으로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모든 생각은 결국, 1) 그 모든 눈에 뜨이는 것이 특별하지는 않다, 2) 나는 그저 바깥에서 관조하듯 그 동네를 바라볼 뿐이다, 라는 두 가지 결론으로 귀결된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 그 동네 한복판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역시 그 한복판에서 저녁을 먹는 자리를 가졌다. 동네에 대한 얘기를 좀 했는데, 술을 적당히 마셔서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사람이 너무 대상(object)화 되었다는 얘기를 입에 담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상화 되었다는 의미는 사람이 공간과 어우러지거나, 아니면 그 공간 위에 올라서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이야기이다. 장소든 공간이든 사람이 만들었고, 사람을 위해서 존재해야할 것 같은데 어디를 가도 어째 그렇지 못하다는 느낌만 계속해서 든다. 어느 일요일 저녁엔가, 도산 공원 앞의 그 유명하다는 연예인 돈이 들어갔다는 유기농 식당 앞을 지나간 적이 있었는데, 온통 유리창으로 되어있고 불이 환하게 밝혀진 식당 안에서는 서너명으로 된 일행이 밥을 먹고 있었는데, 모두 정말 밥을 먹고 배를 불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기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보여주면서 확인하고, 또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해놓고도 지극히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어째 사람들은 공간이며 장소, 그리고 그 공간이며 장소의 존재를 가능하게 만든 돈의 들러리를 서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었으니, 부러움과 질투를 완전히 빼놓고도, 나는 거기에서 밥을 먹는 즐거움을 상상하기가 좀 힘들었다.

그냥 그런 생각을 죽 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그 동네를 지나가게 될 것이다. 하게 된 일 때문에라도, 아마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는 단지 지나치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어딘가 들어가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처럼 될 것 같다거나 되고 싶다는 생각은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들이 누구든지간에 그들은 그들이고, 또 나는 나다. 그들은 다들 압구정동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때문에 그곳에 속해있고, 또 나는 모르기 때문에 속해있을 수 없는 것이다. 압구정동은 어디 있나. 대체 어디에 있는지 내가 알아야 할 필요는 있나?

 by bluexmas | 2009/10/03 21:22 | Architecture | 트랙백 | 덧글(12)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09/10/04 04:53 

압구정동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아니 그딴거보다 저는 압구정동은 그닥 좋아하지 안ㄶ습니다

아호 취해서 뭐라 하는지도 모르겠고

사실 압구정동 따위가 뭐가 대수겠습니까

내가 사는곳도 아니고 말이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04 22:12

아이구 술에 많이 취하셨군요@_@ 사실 대수인게 그렇게 많지는 않지요 살다보면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10/04 10:08 

저 갤러리아백화점 장식이 처음 생겼을 때 압도당했던 기억이 나네요=_= 지금은 갈 일이 별로 없지만 좋은 오락실이 있는 곳이어서 옛날에 자주 갔어요. ㅠㅠ 다 추억이 되었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04 22:12

UN 스튜디오라는 네덜란드 출신 건축가들이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자료 찾아보기 귀찮아서 언급하지 않았답니다~

 Commented by 닥슈나이더 at 2009/10/04 10:36 

압구정동….. 90년대 중반 이후에 부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곳이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04 22:13

요즘은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다 그게 그거 같아 보이더라구요. 특별히 뭐가 더 좋은지도 모르겠구요.

 Commented by 백면서생 at 2009/10/04 12:36 

저것이 현재의 갤러리아 백화점인가요… 왜 그 건너편 정거장 앞 맥도날드가 문을 닫았는지 이해가 갑니다. 같은 단위 면적에서 저만한 이익을 창출하는게 불가능하겠지요. 말씀하신 식당도 그렇겠군요.

잘 읽었습니다. 압구정동이 일종의 기표인 것은 맞는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을 읽을 수 있는 상당히 용이한 지표이기도 하고…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04 22:14

그래서 만두 여섯 개를 김치국물에 담가 팔천원 받고 파는 것이겠지요. 읽을 수 있는 지표이기는 한데,정말 신중하게 읽어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감정적인 접근으로 얻을 수 있는게 없으니까요.

 Commented by 큐팁 at 2009/10/05 10:43

아우 만두 여섯개에 8천원..사실 진짜 너무 비싸긴 해요.

그래도 그 국물이 생각나는 건 일종의 주박인가..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07 11:08

그, 그렇죠…. 좀 비싸긴 비싸죠. 왜 팔천원인지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어질 때도 있어요.

 Commented by shortly at 2009/10/05 10:06 

압구정동- 그저 한양아파트를 위시로 한 십억 후반대 아파트를 여유있게 운용하실 수 있는 분들이 사시는 주거지역 아닌가요 ㅎㅎ 그정도 소득수준의 가구들을 타겟으로 한 가게들이 많이 들어서서 좀 시끄러울 것 같은 동네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그 분위기를 소비하러들 오는 것이겠지만 정말 여유롭게 거기서 ‘여유를 만끽하는’ 소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퍼센트나 될까요? 의문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0/07 11:09

저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잘 모르겠어요. 그 동네가 사실 그렇게 여유로운 소비를 위한 환경도 아니잖아요. 길도 좁고, 차도 많이 다니고… 카페 같은 데는 그렇게 편안해보이지도 않고.

그냥 지나다니면 눈요기는 되는 것 같더라구요. 딱 거기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