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의 낮술(10)-홍합탕과 짝퉁 동파육

성원(?)에 힘입어 재개하는 낮술 시리즈(…). 드디어 홍합이 제철을 만났는지, 이마트에 슬금슬금 풀리기 시작했다. 다른 곳이라면 벌써 구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이 동네 이마트는 너무 작고 물건도 너무 없다. 어쨌든, 무려 고수도 안 팔리고 진열대에 좀 남아 있길래 그것도 같이 사다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홍합탕을 끓였다. 토마토와 마늘, 파를 올리브 기름에 약한 불-센 불에 볶으면 맛이 우러나오기 전에 마늘이 타고, 그렇게 마늘이 타면 쓴 맛이 돌게 된다-로 볶다가 물과 싸구려 백포도주를 넣어 끓인 국물에 홍합을 안쳐서 지는 건데, 약간의 판단착오로 열효율이 떨어져 홍합이 잘 안 쪄져서 결국 그냥 끓였다. 내가 뭘 하는가에 상관없이 홍합이 맛있다는 느낌이었다. 맛있는 국물이 남았는데, 이건 남겨두었다가 다른 음식을 만들었다.

생각보다 사진은 별 볼일 없는, 내 식으로 만든 짝퉁 동파육이다. 몇 번 글을 썼을 때 언급한 적 있지만, 삼겹살이나 돼지 족의 지방을 완전히 곤죽이 될 때까지 삶거나 끓여봤자 느끼해서 많이 먹을 수가 없는데, 이를 좀 보완하기 위해서 일단 익힌 삼겹살을 완전히 식혀 굳혔다가, 다시 살짝 열을 가해 따뜻하지만 지방이 녹지 않을 정도로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일단 여경옥의 중국 요리 책을 찾아보니, 동파육의 조리법은 삶고, 튀긴 다음 마지막에 찌는 것이던데, 뭐 중국 몇 천 년의 조리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기름이 많은 삼겹살을 튀기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기 조금 힘들었다. 고기든 생선이든, 기름이 많은 부위는 튀김의 재료로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그건 재료의 기름이 배어나와 더 기름기가 많은 튀김을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중국요리를 봐도, 탕수육과 같은 음식은 기름기가 별로 없는 부위를 튀기고, 생선의 경우 너무나 내세울 요리가 없어 영국의 요리가 되었다는 피시 앤 칩스를 보더라도 재료로 쓰는 생선은 대구 따위의 기름기가 없는 생선이지, 연어와 같이 기름이 많은 종류가 아니다. 연어와 같은 생선은 자체의 기름을 빼 주는 방식으로 조리를 해 줘야지, 더해주는 방식으로 조리를 해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삼겹살에도 마찬가지의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물론 중국 몇 천 년의 조리법에 중국 사람도 아닌 미천한 내가 도전을 하겠냐만…-_-;;).

그래서 지난 번에 삼겹살을 조리했던 대로, 오향가루를 비롯한 몇 가지 가루 양념을 만들어 삼겹살에 문질러 발라 하룻밤을 재운 뒤,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기름기를 빼는 방식으로 조리했다. 이를 위해 지난 번에는 은박지에 싸서 오븐 토스터에 구웠지만, 이번에는 지난 번에 닭을 구운 것처럼 무쇠솥에 각 면을 지져준 다음, 120도 오븐에서 한 시간 정도 익혔다.

삼겹살이니까 당연히 기름이 배어나오는데, 이를 소스의 재료로 쓰기로 하고 둔 다음, 고기를 식혀 은박지에 싸서 하룻밤 냉장고에서 굳힌다. 그리고 다음 날, 그대로 먹어도 좋을 고기를 썬 다음 찜통에 안쳐 살짝 찐다. 기름이 적당히 빠졌기 때문에 따뜻해질 때까지 쪄도 비계가 곤죽이 되지는 않는다. 동파육 흉내를 내보려고 청경채를 데쳐 곁들였는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워서 앞으로는 이런 음식에 곁들여 나오는 청경채를 좀 존경해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두꺼운 부분은 물에 소금을 많이 넣고 데쳤는데도 여전히 싱거웠고, 신경을 안 쓰고 불 앞을 비웠더니 식감도 영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삼겹살에서 나온 기름으로 소스를 만들었다. 맛을 배게 하기 위해 쪽파와 마늘을 적당히 넣고 삼겹살을 구웠는데, 일단 쪽파는 건져내버리고, 기름에 밀가루 더해 볶을 때에 으깨서, 물을 살짝 부어 같이 소스를 만들었다. 이렇게 해서 소스를 만들게 되면 지방이 기반이라 너무 뭉툭하고 느끼한 소스가 나오므로, 그걸 덜어주기 위해 산을 꼭 더해줘야 한다. 어째 산만 더해가지고는 내 입에 안 맞을 것 같아서 최근 숙성을 마친 매실청을 한 숟가락 넣어줬더니 약간 새콤달콤한 소스가 되어 삼겹살과 잘 맞았다.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사실 체나 지방 제거기로 기름을 깨끗하게 걸러줘야 보기가 좋은데, 귀찮아서 그냥 만들었다. 꼴을 보니 역시 거르는 게 좋을 듯.

여기까지 만드니 배가 고파져, 접시에 너무 대강 담아 허접해보인다.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지 어이없게 청경재를 가운데에 담고 삼겹살을 빙 둘러 담은 것이, 두부김치에서 영감을 얻지 않았나 싶다-_-;;; 미천한 아마추어가 만든 음식인데 개선의 여지야 늘 있는 것이지만, 일단 맛의 조합은 전체적으로 잘 맞았다. 이마트에서 만 육천원인가에 파는 마주앙 메독을 곁들였는데, 싼 입맛에 놀랄만큼 잘 맞았다. 따로 먹으면 별론데 같이 먹으니까 훌륭한 느낌이랄까? 이래서 비오는 토요일에 낮술을 또 마셨다.

 by bluexmas | 2009/11/03 10:17 | Taste | 트랙백 | 덧글(21)

 Commented by Gony at 2009/11/03 10:25 

오오오~ 암튼 음식 잘 만드는 남자는 제가 무조건 존경합니다. ㅎㅎ 동네 작은 마트에 홍합은 아직 작아서 사기 뭐 하던데 나중에 수산시장에서 슬쩍 사서 저렇게 조리해봐야 겠어요. 만날 홍합은 박박 씻어서 아무것도 안넣고 물만넣고 삶아 먹었는데 ㅎㅎ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05 16:49

뭐 존경까지 하실 필요는… 홍합이 맛있으면 물만 넣고 삶아도 되는데, 아무래도 물에 담그는 것보다는 찌는 편이 조금 낫지 않을까 싶네요.

 Commented by nabiko at 2009/11/03 10:41 

안그래도 조만간 낮술하고 싶었는데…저도 홍합탕 끓여 먹어야 겠어요.후훗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05 16:59

조개랑은 또 다른게 홍합은 정말 빨리 익고, 살도 질기지 않죠. 부산이니 더 좋은 홍합이 많겠네요, 부럽습니다~^^

 Commented by nabiko at 2009/11/05 17:54

홍합은 아마…통영이 제일 좋지 않을까 싶어요.여튼 격하게 땡깁니다.ㅠ_

 Commented at 2009/11/03 11:20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05 17:00

청경채는 너무 신경을 안 써서 삶아 조금 실패였어요-_-;;; 낮술시리즈는 웬만하면 1주일에 한 번 올라간다는 원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키르난 at 2009/11/03 15:29 

홍합…-ㅠ- 이전에 catail님 이글루에서 저 국물에 국수 말아먹으면 정말 맛있다는 글을 봤지요. 죽을 끓여먹어도 맛있겠네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05 17:00

네 죽도 좋고 국수도 좋고 버리기 아까운 국물이죠. 뭘 해도 맛있더라구요^^

 Commented by 홈요리튜나 at 2009/11/03 15:34 

홍합국물이 그리운 계절이예요.

전 탕수육을 삼겹살로 해먹어요 느끼함의 극치 흐흐..

블루마스님은 느끼한 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시나봐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05 17:01

아아 탕수육을 삼겹살로…. 저도 느끼한 것 좋아하는데 언제나 체중의 압박이 있어서 그렇죠 뭐T_T

 Commented by zizi at 2009/11/03 15:45 

저도 며칠 전에 홍합탕 해먹었어요. bluexmas님의 홍합탕과는 달리 국물은 아주 간단히 우렸지만요. 뜨거운 국물, 캬! >.< 이젠 굴이 나오는 시기라서 마구 설레고 있네요. 맛있는 굴요리도 알려주세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05 17:01

역시 이 계절에는 홍합이 잘 어울리더라구요. 사실 저는 생굴은 거의 못 먹는데… 한 번 굴짬뽕에는 도전해보고 싶더라구요.

 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11/03 17:16 

홍합탕 너무 맛있겠어요. 오늘 날씨에 어울리는 요리네요 ^^ 저 삼겹살은 언뜻 바베큐처럼 보여요!

날씨가 너무 추워요. 따끈한 게 먹고싶어지고.. 오늘은 갑자기 양파스프가 먹고 싶더라고요! 양파스프도 끓여주세요. ㅋㅋ 이제 막 메뉴를 주문하네요 ㅋㅋ 감기 조심하시고요.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05 17:02

사실 바베큐라는 게 고기를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익히는 거라서 어떻게 보면 거의 바베큐나 다름없기는 해요~ 양파수프 괜찮은 레시피가 하나 있는데, 언제 한 번 시도해볼께요. 문제는 그뤼에르 치즈가 너무 비싸서… T_T

 Commented by 푸켓몬스터 at 2009/11/03 23:03 

안그래도 두부김치가 생각났는데 본문에서 언급이 되네요 ㅋㅋㅋ

갑자기 스트레스와 허기로 인해서 술이 확 땡기는데 이걸 어쩌죠 ㅠㅠ

며칠전에 위장에 무리와서 쓰러졌어서 참아야 하는데…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05 23:56

두부김치도 좋지요~ 손두부에 1년 넘게 묵은 김장김치를 삼겹살과 푹 쪄서… 막걸리가 소주보다는 나을 것 같네요.

술은, 언제나 땡겨서 참 고민이 많습니다-_-;;;;

 Commented by 펠로우 at 2009/11/04 00:54 

요샌 자연산홍합이라고, 좀 알이 큰 것도 들어오더군요. 손바닥만한 큰 홍합도 있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작은 홍합은 집에서 하기 귀찮으니…큰 자연산홍합을 해먹고 싶습니다^^;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05 23:56

홍합은 사람을 잡아먹을만큼 큰 놈들도 있다고 하던데요. 좀 징그러워 보일 것 같은게 흠입니다. 큰 놈은 어떻게 조리해서 먹어야 할까요?^^

 Commented by JUICY at 2009/11/04 14:16 

아, 정말 국물음식이 생각나는 날씨예요 🙂

 Commented by bluexmas at 2009/11/05 23:57

이제 그런 계절이 되었죠. 정말 양파수프 한 번 끓여야 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