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점포라는 전염병

집 앞 거리, 후줄근한 창고 같은 무인 카페가 망한 자리에 샐러드 샌드위치 가게가 들어왔다. ‘MZ 엄마가 하는 가게’, ‘마을에 꼭 필요한 가게가 되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손글씨로 써서 붙여 놓았지만 관심은 전혀 가지 않았다. 길 건너에 같은 업종의 가게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 가게도 영업을 하는 게 신기한데 불과 삼사십 미터 거리에 똑같은 가게를 차린다고?

집 앞 거리는 작은 대학가, 몇십에서 몇백 미터 거리에 온갖 요식업소와 편의점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편의점 셋, 김밥집(혹은 분식집) 둘, 떡볶잇집 하나, 마라탕집 넷, 심지어 맥도날드랑 롯데리아마저 있다. 샐러드와 샌드위치 가게가 동종만 상대해야 되는 상황이 아니다. 그래서 기존의 같은 업종 가게도 고전하는 판국에 가게를 낸다고?

그런데 알고 보니 여기 또한 무인점포였으니 나는 깜짝 놀랐다. 이 가게의 옆옆집이 무인 셀프 라면 가게였는데 편의점과 분식집이 널린 판국에  누가 무인점포에 굳이 가서 라면을 먹겠느냐고. 그렇게 그 가게는 일 년 반쯤을 버티다 결국 폐업했다.

‘마을에 꼭 필요한 가게가 되겠습니다’라고 써붙여 놓았는데 무인점포라니.. 가오픈 기간이라 4,200원짜리를 2,500원에 판다고 써 붙여 놓았지만 냉장고의 샌드위치는 줄어드는 것 같지 않았다. 대학교가 개강 전이라 그렇기도 하겠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상권의 거의 끝에 자리 잡고 있는 무인 가게에 일부러 와서 샌드위치를 살까 싶었다.

주인도 그다지 관심을 쏟지 않는 것 같은 가게를 과연 구매자가 신경 쓸까? 인테리어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간판을 예쁘게, 눈에 띄게 만들어 단 것도 아니다. ‘나 돈 안 쓰고 돈 벌고 싶다’라는 분위기로 정말 최소한의 체면치레만 해 놓은, 스산하다 못해 비인간적이고 살풍경하기까지 한 가게다. 이런 곳에 와서 키오스크에 카드를 긁고 언제 어떻게 만들어 놓은지도 모르는 샌드위치를 냉장고에서 꺼내 간다고? 가게 주인에게 당신 같으면 이렇게 샌드위치를 사 먹고 싶겠느냐 묻고 싶어졌다.

이 동네에서 4년 가까이 살면서 꽤 많은 가게들의 명멸을 목도했다. 탕후루 가게는 정말 빠르게 망했는데 일 년 넘게 간판도 내리지 못하다가 임대가 나가고 김밥집이 들어왔는데, 인테리어를 다 하고 집기도 들여 놓았지만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일 년도 넘었는데 우편물은 잔뜩 쌓여 있고 카드 결제기의 화면은 언제나 켜져 있다.

망하는 가게의 패턴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일단 안 될 것 같은 가게는 무조건 안된다. 한마디로 쉽게 돈 벌고 싶은 티가 조금이라도 나는 가게는 망한다. 그렇지 않은, 열 곳 가운데 하나가 될까말까한 가게만이 간신히 살아 남는다. 그리고 그런 곳들 가운데 무인점포는 단 한 군데도 없다.

그런데 무인점포는 자꾸만 늘어가고 있으니 나는 이제 사람들이 참으로 교만하다고 믿는다. 50미터 반경에 김밥천국과 맥도날드와 짜장면 6천원인 중국집이 있고 좀 더 걸으면 롯데리아, 서브웨이마저 있다. 그런데 샌드위치를 대충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 놓으면 사람들이 열심히 와서 키오스크에서 계산하고 꺼내 가서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대체 얼마나 교만한 것이냐는 말이다.

많은 이들이 음식을 사고 판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 가운데 음식이라도 제대로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지만 사실은 그것도 아니다. 실제로는 마음을 사고 파는 것인데 음식에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 과연 누가 그렇게 열심히 팔아줄까 싶다. 지난 주 동아일보 칼럼에 무인점포에 대해 썼는데 분량도 그렇고 많은 이야기를 쓰지 못해서 덧붙인다.

전염병처럼 퍼지는 무인점포를 보며 나는 이제 사회가 비인간적이고 무례한 인간들로 넘쳐나고 있다고 믿는다. 이제 그게 사회의 보편이 되어 버렸다. 진짜 터럭만큼도 손해 보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남으로부터 이익을 갈취하고 싶다고? 다른 사람들은 생각이 짧은 바보라서 가게에 사람을 두거나 주문을 받아 김밥을 실시간으로 싸서 파는 게 아니다.

무엇인가가 좋은 방향으로 굴러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노력, 혹은 도리를 차마 저버릴 수가 없어서 그렇게 하는 건데 그 마음을 비웃는 듯 무인점포 따위나 운영하는 인간들로 넘쳐나는 사회를 바람직하다고 보기란 어렵다. 전염병이 퍼지면 결국 사회의 방역체계가 무너지듯 늘어나는 무인점포가 사회의 신용 및 치안 자원을 고갈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