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목요일-존 레논의 25주기
수요일인가, 출근길에 엘리베이터의 작은 화면에서 나오는 오늘의 일기예보를 보고는, 과연 눈이 올까, 라고 의심했더랬습니다. 이곳에 살기 시작한지 4년째, 눈 구경은 작년인가에 딱 한 번 했기 때문입니다. 보통 3년에 한 번 눈이 온다고 했으니 아직도 2년이나 남은 셈이고, 그렇기 때문에 저는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올 겨울, 아틀란타도 제법 추워졌지만 그래도 눈이 펑펑 내릴 정도로 날씨가 추워지지는 않습니다.
오늘도 거의 진눈깨비에 가까운 비가 하루 종일 흩날렸지만, 결국 눈은 내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따뜻한 날씨가 눈에게는 차가운 시련이 되는 셈입니다. 기껏 여기까지 힘들게 내려왔지만 떨어지기가 무섭게 왔던 곳으로 되돌아 가야만 하니까요. 하여간 날씨는 하루종일 정말 우울했고, 오늘이 만약 목요일이 아니고 금요일이었다면 다시 한 번 아파야만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 같은 그런 하루였습니다.
그래도 점심 먹고 오후에 졸지 않으려면 몸을 움직여야 했기에, 어제 보너스로 받은 수표를 챙겨들고, 간만에 라디오까지 들이며 은행으로 향했습니다. 오늘따라 라디오에서는 끊임없이 1980년에 발표된 노래(Cars의 Touch and Go 같은)들이 흘러나더군요. 존 레논의 기일이라고… 어차피 제가 다섯 살에 죽은 사람이라 기억도 없지만, 비틀즈에서도 늘 매카트니의 팬이었던 저는 사실 존 레논의 음악세계에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릴 적, 늘 듣던 라디오에서도 오늘처럼 비 오는 날 오후 네 시 쯤이면 Imagine등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왔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늘 사람들이 느꼈던 것과 같은 그런 감흥은 없었습니다. 상황이 이러니 불쌍한 그의 배다른 아들 형제에게는 더더욱 관심이 없었구요. 부모나 형제의 그늘에서 살아야 될 필요가 없는 운명도 사실 행복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클리셰중 클리셰겠지만 나는 그냥 나일 뿐이니까요.
이렇게 비가 오니 차는 가고 오는 길에 두루두루 막히고, 귀찮아서 어제 기름을 채우지 않았더니 막히는 가운데 빨간 불은 깜빡거리고, 퇴근 후에도 왜 그렇게 해야 될 일이 많은지… 미친 듯이 짜증을 내고 싶었던 하루였지만, 그래도 다 속으로 빨아들이며 참았습니다. 그래도 내일이 금요일이니까. 내일은 회사의 First Friday, 오랜만에 들러서 사람들이랑 술이라도 한 잔 마실 생각입니다. 오늘 바쁘게 돌아다닌 덕분에 내일은 길에다 시간을 흘려 보내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속으로만 어려움을 삼켜야 하는 시간도 없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꾹꾹 눌러 참습니다. 어차피 금요일은 매 7일째마다 돌아올테니까요.
…네, 사실 요 며칠 전부터 뉴욕 쪽에 눈이 엄청나게 내린다는 얘기를 듣고 계속 가고 싶어졌었는데, 오늘 집으로 차 몰고 돌아오면서 정말로 가고 싶다는 유혹을 억누르느라 힘들었습니다. 오늘 같은 날 한 쪽 리어뷰 미러도 없는 작은 차로 아팔래치아 산맥을 넘느니 죽는게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고 싶어졌었습니다.
# by bluexmas | 2005/12/09 14:19 | Life | 트랙백 | 덧글(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