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비에 씻겨 내려간 가을의 마지막 조각
지난 얼마동안 계속해서 따뜻한 봄날이었어요. 그래서 기분이 그렇게 좋았던 걸까요. 이유를 알 수 없이 희망차고 짜증도 별로 나지 않던 시간들… 이렇게 따뜻할 때 친구들 모아서 마지막으로 밖에서 술이라도 한 번 마셔야 되는데, 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어제 새벽, 더워서 열어 놓고 지내던 창문으로 그 바램이 조각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빗소리라고…
예전에 썼던 글에서 얘기한 적이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집 앞-이라고 하기엔 걸어서는 너무 멀고 운전해서는 또 너무 가까운 참으로 미국적인 거리개념-의 공원에 비어있던 가게들이 괜찮아 보이는 바와 음식점들도 벌써 채워진 것도 모르고 살다가 바람이 차갑게 불기 시작해서 슬슬 실내로 들어가야만 하는 때쯤의 일요일에 달리기를 하러 나가서야 그 좋은 계절과 괜찮아 보이는 공간들을 본의 아니게 외면했다는데 꽤나 오랜동안 아쉬움을 느꼈었죠. 그랬었던 저에게 이 계절을 즐기라고 마지막 기회가 찾아왔던 것일지도 모르는데… 내년, 그러게요…금새 또 다음 해가 찾아오겠지만 그때도 여기에 있게 될지는 저 자신도 모르니 저는 얼마 동안은 그저 아쉬워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하여간 그렇게 가을의 마지막 조각이 새벽비에 씻겨 내려간 오늘 아침, 아직도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바람은 참으로 얄밉게도 을씨년스럽게 불고 그 바람의 백만분의 일 빠르기로도 달릴 수 없는 고속도로 위의 자동차들 사이로 어릴적 읽었던 전래동화에서처럼 흙으로 돌아가 내년 봄에 태어날 잎사귀들을 위해 죽을 수도 없는 가련한 낙엽들이 이리저리 휩쓸려다니며 저에게 묻더군요. 1993년을 기억하냐고… 그 때 처음 만났던, 가로등불 밑에 수북히 쌓여있던 그 노오란 은행잎들도 결국 흙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면서.
# by bluexmas | 2007/11/16 13:16 | — | 트랙백 | 덧글(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