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ny Todd(2007)- 불길한 멜로디를 타고 솟구치는 피의 간헐천
아무 생각없이 텔레비젼을 틀었다가 보게 되었던 밴 애플렉과 리브 타일러 주연의 Jersey Girl, 구리구리한 뉴 저지에서의 지루한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맨하탄에서 잘 나가보겠다고 면접을 갔던 애플렉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윌 스미스와 짧은 대화를 나누게 되고, 거기에서 무슨 깨달음을 얻었는지 인터뷰도 집어 치우고 차를 미친 듯 몰라 다시 그 구리구리한 뉴 저지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해서 돌아간 애플렉이 딸과 함께 선보이는 뮤지컬의 장면이 바로 이 Sweeney Todd였으니, 아이들에게 건전할지도 모르는 Cats만 수 천번씩 반복하던 아이와 부모들은 마지막에 애플렉이 면도날로 목을 긋는 장면에 이르자 기겁을 하게 됩니다.
어느 한 순간도 팀 버튼의 팬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그의 영화를 보게 되는 까닭은 그의 영화에서만 엿볼 수 있는 어느 정도는 Gothic스럽다고 할 수 있는 시각적인 설정 때문일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워낙 잘 알려진 뮤지컬을 그의 방식만으로 각색했을테니 갈 수록 궁금증이 더해져서 결국 어제 밤 늦게 거의 내리기 직전의 극장에서 보게 되었는데, 거두절미하고 느낌을 얘기하자면, 시각적인 부분은 기대 이상이었고, 음악적인 부분은 그 반대였습니다.
영화 배경의 전체적인 느낌이랄까 그런 부분은 아무래도 최근작이면서도 분위기가 비슷해질 수 있는 Chocolate Factory와 비교할 수 있겠는데, 그 특유의 우울하면서도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느낌을 주는 전체적인 인상이 너무나도 비슷하지만 이 영화의 이미지는 초콜렛공장의 그것보다 훨씬 더 선이 굵은, 그러니까 강렬한 느낌을 줍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다지 밝은 도시는 아닌 런던은 팀 버튼의 시각적인 체로 걸러진 뒤 더더욱 어둡고 불길한 느낌을 선사하니, 영화의 배경으로써는 아주 안성맞춤인 도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전체적으로 검정색의 도시에 복수심으로 가득차 음울한 얼굴을 하고 돌아온 전직 이발사 Sweeney Todd는 억울하게 살게 된 15년의 옥살이 때문인지 오른쪽 앞머리가 하얗게 바랬고, 이 하얗게 바랜 머리는 시체처럼 핏기 없이 하얀 얼굴이 연장된 느낌을 주며 한층 등장인물의 괴기스러움,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극의 불길함을 고조시키는 느낌이었습니다.
잠시 지루하고 별 매력도 없는 멜로디의 노래들이 몇 곡 대사와 함께 오간 후, 곧 영화는 참으로 쉴새없는 살육의 현장으로 돌변하게 되는데, 정말 Sweeney Todd는 팔이 아프도록 목을 그어대고 거기에 맞춰 피는 또 미친듯이 화면 전체로 솟구쳐 오릅니다. 그러나 이 피가 일단 너무나도 만화같이 뿜어져 나오는데다가 그 색깔마저 너무 밝고 진한 빨강이다 보니 계속해서 보고 있노라면 곧 현실감각을 잃어버리고 계속해서 벌어지는 잔인한 살인장면에 무감각해지게 됩니다. 그렇게 목을 긋는 장면을 계속 보다보니 비교적 최근에 보았던 Eastern Promises를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었는데, 베어진 목의 틈으로 줄줄 흘러져 나오는 검붉은 피가 소름끼치도록 현실적이었던 반면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Sin City에서의 그것이 생각날 정도였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살인 장면을 거듭 보고 있노라니 나중엔 그냥 웃기더군요. 멀쩡한 사람 목이 칼로 그어져서 피가 솟구치고 또 시체는 머리부터 근 10미터 아래의 지하실 벽돌바닥에 그야말로 철퍼덕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뭐 그게 혹시라도 카타르시스냐고 물으신다면 감히 그렇다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가 고기는 파이소로 쓴다는 이 기발한 아이디어! 런던 최악의 고기파이가 최고로 단숨에 환골탈태한 이유는 그 환골탈태라는 말처럼 뼈를 바꾼 정도가 아니라 아예 뼈에서 살을 발라내서 파이속으로 썼기 때문에…
아무래도 거듭되는 살인 장면을 보고 웃는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할 때, 영화 역시 계속해서 사람을 죽여댐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진지하게 절정을 향한 계단을 밟아 올라가며, 알고 보면 죽음이라는게 이렇게 보이면서 인육만두, 아니 파이를 만드는 것보다는 훨씬 심각하고 철학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복수가 복수를 낳듯이 살인이 살인을 낳고, 피가 넘쳐대던 영화가 역시 넘쳐대는 피로 마무리 지어지지 않으면 되려 허무한 법, 그러한 기대에 너무나도 딱 맞는 초강력 절정이 눈앞에 펼쳐지며 근작 중 최고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팀 버튼과 자니 뎁의 또 다른 합작 영화는 그 피샘물의 여정을 너무나도 장렬하게 마칩니다. 그리고 흘러주는 역시나 장렬한 음악…
…그러나 음악은, 위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그다지 귀를 잡아끌지 못하고 오히려 영화에 몰입하는데 방해를 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니, 뮤지컬인데 음악이 방해가 되다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거냐…라고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워낙 그런 영화다보니 멜로디 자체가 그렇게 친절하게 달라붙지도 않는데 반주는 오케스트라로 빵빵해서 귀는 아프고… 이거 혹시 일부러 불협화음으로 만들었을까 궁금해서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뭐 그레고리안 성가며 이것저것을 잔뜩 같아 붙여놓았지만 여기에 옮겨 놓기는 귀찮아서 넘어가겠습니다. 계속 듣다보면 그 불길 또는 괴기스러운 멜로디들을 어떻게 병치시켰는지는 대강 이해할 수 있었지만, 영국 억양의 영어와 그런 멜로디와 또… 하여간 듣다보면 굉장히 피곤해져서 차라리 그냥 대사로 된 게 더 낫겠다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마저 했습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다 보고 난 뒤의 충격을 생각하면 놓치지 마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 마지막 장면까지 가는 과정에서 풍기는 급박함, 그리고 바로 그 마지막 장면이 주는 시각적인 느낌…이런 것들은 그 예술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광기라는게 대체 무엇인지 저 같은 평범한 사람으로 하여금 느끼게 해 주는, 바로 정수와도 같은 것이었다고 생각되니까요.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던 몇 가지 것들.
1. 면도: 위에서 Eastern Promises까지 들먹이며 얘기했던 것처럼, 면도는 사실 살인의 최적기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날카로운 면도날에 아무 저항없이 목을 내어놓고 있으니 그냥 그어버리면 끝이니까요. 그래서 예전에 근 20년 가까이 왕노릇하며 시바스 리갈과 심수봉 노래를 좋아하셨다는 분은 면도를 직접하셨다는 믿거나 말거나한 얘기도 있습니다.
2. 인육만두: 읽은지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상하게도 불길한 느낌만은 찝찝한 뒷맛처럼 여전히 생생한 ‘아큐정전’의 작가 루쉰의 중단편집을 읽다보면 폐병과 같은 불치병에 시달리는 아들을 낫게 하기 위해 인육만두를 사오는 부모의 얘기가 나옵니다(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랬던 것으로 기억을…20년이 넘다보면 기억도 희미해지기 마련입니다). 그 인육은 아마도 사형수로부터 조달했던 것 같은데…만두라는 것 자체가 사람의 머리를 흉내내어 제물로 바치기 위해 처음 고안되었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뭐 인육만두라는게 그렇게 극악의 조합은 아닌 모양이죠. 물론 저는 먹을래, 죽을래 그러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하겠지만.
# by bluexmas | 2008/01/18 12:14 | Movie | 트랙백 | 덧글(7)
중국에 그런 애기가 많죠… ㄷㄷㄷ
런던판 인육만두… ㅇ_ㅇ 스위니 톳 보러가고 싶은데 살짝 두렵군요
blackout님: 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가시면 딱 좋을 것 같아요. 그냥 열심히 뿜어주거든요.
softdrink님: 저도 아무 사전 지식 없이 그 영화 봤어요! 보다가 말았죠. 찝찝해서…
궁극사악님: 그러나 저 음악이 Fantom of the Opera와 같은 음울한 분위기의 뮤지컬을 만드는데 기반을 닦았다고 하더라구요.